하루하루가 이별의 날
프레드릭 배크만 지음, 이은선 옮김 / 다산책방 / 201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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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에 억지 웃음과 억지스러운 슬픔을 쫙~ 빼고 진정성있는 감동만 담은 이야기가 있다.

작가는 소설로 낼 생각이 없었고 그저 사유하며 끄적이던 원고였는데 이제는 책으로 만들어져 있다.

소설의 서문에서 밝히는 이야기의 주제는 내가 평소 생각하던 것과 놀랍도록 잘 맞아 떨어진다.



이것은 거의 항상 한 쌍으로 움직이는 것처럼 보이는 사랑과 두려움에 관한 이야기다. 무엇보다 아직 우리 곁에 남아 있는 시간에 관한 이야기다.


p, 7



연애를 할 때는 사랑하면서도 헤어질 때를 생각하며 지레 겁먹는다.

나의 어린시절부터 유년기, 그리고 이제는 성인기를 함께 하고 있는 사랑하는 할머니, 할아버지.

그들이 떠날 때를 떠올리면 두렵기만 하다.

지금 내 앞에 있는 시간이 잡히지 않는 것만 같아 두렵다.

혹시라도 나와 함께 한 시간을 잊어버릴 그들의 모습은 상상하기도 싫다.

부모님보다 나를 더 자식처럼 기른 조부모님과 살고 있는 나이기에 [하루하루가 이별의 날] 은 더 마음에 와닿는다.

200페이지가 채 되지 않는 가벼운 무게의 책이지만 느껴지는 깊이는 남다르다.






아내를 먼저 하늘로 보내고 혼자 남은 할아버지. 

그에게 남은 건 오로지 수학과 손자 노아 뿐이다.

알 수 없는 혼란스러운 세상에서 그의 노여움을 잠재울 수 있는 건 그 둘 뿐이다.



평생 할아버지의 믿음을 저버린 적 없는 두 가지가 수학과 손자다.


p. 13



노인성 치매에 걸린 그는 자신의 기억 속 아내와 모든 것이 살아 숨쉬는 광장이 사라질까봐 두렵다.

하루가 다르게 자꾸만 작아지는 광장의 크기는 잊혀지는 기억과 반비례한다.



"내가 생각한 것들."

할아버지가 대답한다

"바람에 날아가고 있어요."

"오래전부터 계속 그러고 있단다."


p. 66



가끔씩 성을 내고 가지 말라는 배에서 다쳐 돌아오는 노인과 같이 사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들 테드는 자신의 아들이자 노인의 손자인 노아가 할아버지와 같이 있도록 하면서

 '치매' 라는 단어는 입에 올리지도 않는다.

이는 그 단어를 발음하면 그게 현실이 되어 더욱 가중될 것만 같은 기분 때문일 수도 있고, 노인과 노아에 대한 배려일 수도 있다.


그렇게 노인의 며느리에 대한 존재는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이 할아버지, 아들, 손자 이렇게 남자 셋의 모습이 보여진다.

아동 성장 소설을 보면 [피터팬] 이나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에서 어른들의 모습은 최소화되어 나타난다.

적어도 주인공의 부모는 거의 존재감이 없으며, 소설 속 비중이 작은 어른들은 악한 캐릭터로 등장한다.

[하루하루가 이별의 날] 은 조금 독특한 성장 소설이라고 볼 수 있겠다.

얼핏 보면 할아버지 위주의 이야기에 손자가 조연으로, 아버지가 카메오로 나오는 거 같지만, 

할아버지와 손자의 대화에서 손자가 느낄 감정과 깨달음을 생각해보면 노아의 성장 이야기이기도 하다.

결국 노아는 다른 누군가에게 자신의 지식과 삶의 지혜를 전달하는 교사가 되니 말이다.







아무렇지 않게 담담하게 써 내려간 듯한 글로부터 깊은 슬픔을 발견한다.

할아버지가 '집으로 돌아가는 길은 매일 아침 더 길어지고' 이는 그가 알던 세상과의 단절을 의미한다.

그가 매달릴 수 있는 건 자신의 곁을 지켜주는 노아와 기억 속 아내이다.



"우리, 작별하는 법을 배우러 온 거에요, 할아버지?"

마침내 아이가 묻는다.

노인은 턱을 긁으며 한참 동안 생각에 잠긴다.

"그래, 노아노아. 아무래도 그런 것 같다."

"작별은 힘든 것 같아요."


p. 74



소설을 읽으며 울컥하는 순간이 몇 번 있다.

감정이입이 심하게 되면 어느새 눈가에 눈물이 맺히고 만다.

운이 좋았다고 해야 할 지 아니면 그 반대일지 모르겠지만 여지껏 작별을 경험한 적이 없다.

흔한 사랑의 이별말고 누군가를 이 세상에서 영영 보내는 그런 작별 말이다.

장례식장에 가 보긴 했지만 떠난 이는 누군가의 가족이나 직장 동료의 가족이었고 나와 가까운 이는 아니었다.

그런 나는 작별에 대한 면역성이 전혀 없다.

그래서 때때로 마음이 너무 무거워지고 무서운 기분이 든다.

만약.. 만약...?? 

아무래도 견딜 수 없을 것만 같다.

도저히 이겨낼 자신이 없다.



"모든 게 사라지고 있어서, 노아노아야. 너는 가장 늦게까지 붙잡고 있고 싶거든."


p. 81








할아버지가 내게 슬픔만을 전달한 건 아니다.

그는 애잔하면서도 진실한 사랑이 무엇인지 보여준다.



"나랑 평생을 함께했잖아요. 내 평생을 가져갔으면서."

"그래도 부족했어."


p. 27



평생을 솔로로 살겠다고 다짐해 온 나는 요즘 들어 아주 이기적인 이유로 누군가와 같이 사는 것도 괜찮겠다고 느끼고 있다.

즉, 내가 외롭거나 힘들거나 아플 때 무조건 나를 지지할 사람과 평생을 같이 하는 것도 좋을 거 같다.

나와 다른 환경 속에서 자라온 타인과 반평생을 산다는 건 당연히 힘든 일일 거다.

특히나 지금처럼 불륜이 비일비재한 시대에는 진실한 사랑을 찾을 수나 있을까 하는 의구심마저 든다.

그래도.. 어딘가엔???



"견딜 수 없을 만큼 당신이 보고 싶어."


p. 101




내게 있어서 연애세포를 솟아나게 하는 건 스타들의 열애 소식이나 스캔들, 혹은 가상 결혼 모습이 아니다.

주름살 진 손과 젊은 시절 미모를 잃어버린 얼굴을 보면서도 예쁘다고, 잘생겼다고 말하면서 사랑하는 노부부이다.

내가 없을 때 나를 그리워해 줄 사람과 함께 하고 싶다.









언젠가는 반드시 겪게 될 그리움이 벌써부터 두렵다.

영원히 찾아오지않는 감정이었으면 좋겠다.

평범한 일상을 아무렇지 않게 살아가는 생활이 계속 되었으면 좋겠다.



"가장 평범했던 일들이 그리워. 베란다에서 아침을 먹었던 거. 화단에서 잡초를 뽑았던 거."


p. 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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