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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계 심장을 단 발레리나 1 - 깨어진 심장
아멜리아 카하니 지음, 진희경 옮김 / 황금가지 / 2017년 1월
평점 :
절판
칙릿 + Sci-fi + 스릴러 + 액션 = Girl 히어로물 (Heroine)
여기에 나의 취향을 제대로 저격한 소설이 하나 있다.
[기계 심장을 단 발레리나]
제목에서 모든 걸 말해주고 있다.
소녀소녀한 발레리나와 기계 심장이라는 공상 과학적인 요소가 결합된 소설이라는 사실을.
주인공 앤섬은 영화 '킥애스2' 의 힛걸처럼 타고난 신체 능력으로 악당들을 처치하고 다니지 않았고,
소설 '헝거게임' 의 캣니스나 '레드퀸' 의 메어처럼
하층민 출신이었다가 자신이 가진 특별한 능력을 깨닫고 스포트라이트를 받음과 동시에 신분이 상승하는 부류도 아니다.
앤섬은 처음부터 도시에서 가장 잘 사는 부류에 속해 있으며, 고층 빌딩 중에서도 꼭대기층에서 샹류층의 삶을 제대로 누리고 있다.
그녀는 공연 '지젤' 에서 프리 마돈나인 지젤이 되기 위해 학교와 발레 수업을 번갈아하는 생활을 반복한다.
그러다가 친구 자라와 간 단 한 번의 파티가 그녀의 삶을 송두리째 바꿔 놓고,
그녀는 도시 최대의 악惡 과 싸우는 여자 영웅이 되고 만다.
줄거리부터 스펙타클하지 않은가?
일단 부드럽고 소녀스러운 이미지의 발레리나를 깔아두고, 거기에 제멋대로인 톰보이 친구를 슬쩍 껴두었다가,
반전 (twist)이 두 번 들어가서 1편과 달리 2편부터는 완전히 액션 + 스릴러물로 장르가 변하게 된다.
앤섬의 소년들
윌 - 학급회장이자 토론 대회 우승자, 모든 학교 연극의 주연, 잘난체가 심하고 앤섬의 배경때문에 그녀와 사귐
개빈 - 빈민가 지역에 사는 고아, 잘 생긴 외모와 화려한 언변으로 앤섬의 마음을 한 번에 사로잡음
포드 - 빈민가 지역에 사는 권투를 좋아하는 소년, 솔직하고 체격이 좋으며, 결국 앤섬과 서로 좋아하게 됨
여기에 칙릿의 요소들이 잔뜩 흩뿌려져 있다.
도시가 위기에 처하고, 나의 생명이 위협에 빠진 상태에서도 결코 포기할 수 없는 단 한가지가 있으니 바로 로맨스이다.
현실에서라면 매우 그럴 법 하지 않은 상황에서도 주인공 앤섬은 연애를 한다.
"너도 알겠지만, 난 다른 애들도 있었어."
윌이 어깨를 으쓱하며 말했다.
"그런데 널 택했지. 그건 대단한 일이야."
1권 p. 63
소위 '왕재수' 의 상징인 듯한 부잣집 도련님 윌이 처음 앤섬에게 사귀자고 했을 때 그녀는 세상을 다 얻은 기분이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그의 거만한 성격이나 모든 것이 자신과 전혀 맞지 않는다는 걸 깨닫고 헤어지려한다.
그 때마다 윌은 앤섬을 진정으로 좋아하진 않지만 그녀와 자신의 집안이 맺어져야 한다는 식으로 질질 끌고 놓아주려하지 않는다.
나중에는 앤섬의 약점을 잡고 협박까지 하는 윌의 모습은 인간이 할 수 있는 끝을 보여주는 듯하다.
선생님께 전화로 내 발목의 상태를 알린 다음 개빈과 정한 약속 장소로 가는 일이 한 주 내내 반복되었다.
1권 p. 69
그러다가 파티에서 우연히 - 를 가장한 - 만난 빈민가 출신의 개빈은 앤섬의 마음을 사로잡기에 충분하다.
매력적인 외모와 말투와 수업 중 학교에 찾아와서 오토바이에 그녀를 태워 데려가는 등의 과감한 행동은
'겉은 거칠어보이나 내 여자에게만은 따뜻한' 부드러운 터프가이를 연상하게 한다.
" 넌 내가 평생 기다렸던 사람이야."
그가 나를 꼭 껴안았다.
1권 p. 470
한 편, 마약에 중독되어 돌아가신 부모님 대신 삼촌 손에 길러진 포드는 그 누구보다도 솔직한 면모를 보인다.
부모님에 대한 아픔, 거기에 범죄 조직의 돈놀이에 지쳐 그만 두게 된 권투라는 쓰라림을 안고 사는 그는
소위 '운동을 한 사람' 답게 자신의 감정에 솔직하고 음흉하게 숨기는 게 없다.
앤섬의 절친인 자라가 탐 낼 만큼 훌륭한 체격까지 갖춘 포드를 마다할 사람이 누가 있겠는가?
죽다 살아난 앤섬은 잭스에게서부터 벌새의 심장을 갖게 된 이후로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된다.
사람이라면 할 수 없을 정도의 뛰어난 신체적 능력으로 남보다 훨씬 빠르게 달릴 수 있고, 강력한 힘을 낼 수 있다.
예전 심장보다 10배가 넘게 빨리 뛰는 괴물 같은 벌새 심장의 펄떡임이었다. 분당 600번을 뛰며 그 어떤 인간의 심장보다 신속하게 혈관으로 피를 뿜어 낼 수 있는, 인간의 심장은 할 수도 없지만 해서도 안 되는 일을 하는 심장이었다.
1권 p. 119
더불어 예뻐진 외모까지 덤으로 얻은 앤섬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
범죄 조직으로부터, 혹은 빈곤으로부터 도시를 구할 영웅으로 거듭 태어난다.
처음에는 사사로운 복수에서 시작된 일이 나중에는 공공의 대의를 위해 싸우게 된다.
"사람들이 네가 한 일에 대해서 이야기를 해, 앤섬. 네가 악순환의 꼬리를 끊는 것을 돕고 있다고. 호프가 했던 일과 크게 다를 게 없어."
1권 p. 375
앤섬은 개빈을 비롯하여 그녀를 이 지경으로 몰아넣은 일당을 한 명씩 처리한다.
그 후 자신들을 '보이지 않는 자들' 이라고 부르는 이들의 부름에 의해 앤섬은 서서히 히로인으로 성장해간다.
우리나라 막장 드라마에서나 나올 법한 소재인 '출생의 비밀' 이 이 소설 속에서도 등장한다.
그러나 막장이라기보다는 앤섬을 영웅으로 만들어 준 설명가능한 유전적 소스를 제공하는 셈이다.
시작은 아버지에 대한 의심에서부터였으나, 그 끝은 그녀가 상상할 수 있는 것 이상이었다.
"베들렘에서는 어떤 사업을 하든 다들 신디케이트에 돈을 낸단다. 우리도 그게 싫고 그자들이 싫어. 하지만 우린 그렇게 해. 모두 다."
2권 p. 76
문제는 아버지가 범죄 조직을 돕고 있다는 단순한 사실이 아니라, 그보다 훨씬 거슬러올라 앤섬이 태어나기 전부터 연관되어 있었다.
그녀의 죽은 언니인 줄로만 알았던 레지나는 사실 아버지로 알았던 사람 (=앤섬의 할아버지)이 죽인 자신의 친어머니였으며,
친아버지는 다름아닌 사람들의 희망이었던 호프였다.
이로서 앤섬의 엄청난 능력과 그녀가 영웅이 될 수 밖에 없었던 이유가 자연스럽게 형성된다.
그저 순종적으로 부모님의 뜻에 따라 세계 최고의 발레리나가 되기 위해 노력해왔던 소녀 앤섬.
그녀가 자신과 자신의 가족, 그리고 도시의 숨겨진 진실을 파헤치고 진실한 사랑을 찾는 과정을 응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