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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잔의 칼럼 - 남무성, 볼륨 줄이고 세상과 소통하기
남무성 글.그림 / 북폴리오 / 2016년 8월
평점 :
품절
칼럼
칼럼을 모아둔 책을 읽어 본 적이 있던가, 아니 칼럼이라는 걸 읽어 본 적이 있던가.
생각해보면 일부러는 아닐 지라도, 우연히, 혹은 지나가듯 칼럼을 꽤나 읽어본 듯 싶다.
미용실에서 헤어 시술 받다가 남녀의 성차이에 관한 칼럼을 읽어 본 적도 있고,
개봉 예정 영화에 대한 검색을 하다가 시사회에서 미리 그 영화를 접한 평론가의 칼럼을 읽은 적도 있다.
칼럼은 결코 내가 선호하는 장르가 아니다.
나는 나 자신만의 주관이나 고집이 꽤나 강한 편이라서,
남들이 "내 생각은 이런데 좀 읽어볼래?" 라고 말하는 듯한 류의 글은 꺼려지는 게 사실이다.
그래서 지금까지도 그래왔고, 앞으로도 유일하게 선호하는 장르는 소설이다.
소설 중에서도 가볍게 읽히는 해피 엔딩의 칙릿과 요리와 추리가 섞인 퀴진 미스테리가 대부분이다.
그러나 『한잔의 칼럼』을 통해 한 가지 확실한 건 말할 수 있겠다.
머리가 복잡할 때, 여행지에서 30분~1시간 정도 시간 때울 만한 게 필요할 때,
움직이는 교통 수단 안에서 집중할 필요없이 읽을 게 필요할 때 칼럼만한 게 없다는 것이다.
이 책이 여러 단편의 칼럼을 모아 두어서 더욱 그런 것일 수도 있다.
한 가지 주제나 사건에 대한 길고도 지루한 의견이 아닌, 짤막짝막한 글들을 모아 두었다.
게다가 원래 그런 건지 의도인지는 모르겠으나, 글자가 굉장히 큼직큼직하다.
렌즈를 끼고도 크게 보일 정도인데, 렌즈를 벗으면 대체 얼마나 큰 것일까.
눈이 아프지 않고 한 면 안에 있는 글이 몇 초면 다 들어온다.
만화와 그림도 한 몫 단단히 하였다.
초등학생 때 자주 읽던 세계명작도서나 '소라는 OOO (예를 들면, 소라는 요리사, 소라의 맵시 등등.)' 시리즈 이후
실로 오랜만에 보는 그림이다.
최대한 실감나게 상상하기 위해 한 글자 한글자 심혈을 기울여 읽으며 머리 아파할 필요 없다.
각 제목과 소재에 해당하는 그림이 칼럼 하나당 하나씩 있어서 눈도 쉬고 동시에 머리도 쉰다.
그런가하면, 작가가 직접 그린 만화는 마치 중학생 때 풀던 문제집 속 '쉬어가는 페이지' 와도 같은 느낌을 준다.
이런 만화는 굳이 앞에서부터 순서대로 읽으려고 노력할 필요가 없다.
그냥 책을 덮은 상태에서 진한 색으로 보이는 만화 페이지 먼저 펴서 읽으면 그만이다.
아무튼 독서에 대한 만족도는 상당히 높다.
다 읽는데 겨우 30분이 소요되었으니 이만하면 공중화장실 변기 앞에 하나씩 비치해도 될 듯하다.
책의 무게는 모르겠으나, 크기는 비교적 작은 편이니 한 권 정도 휴대해서 여행가도 될 듯하다.
늘 이야기 속에 빠져버려서 주인공에 동화되어 감정이입하거나 함께 고뇌할 필요 없이,
stress-free 책읽기가 이 칼럼이라는 거다.
한 면을 채 다 채우지 않은 글자들이 넉넉하고도 여유로운 공간을 생산하여,
현대의 복잡한 매체 속에서 잠시간의 아날로그식 휴가를 갖는 기분이다.
음악 애호가
『한잔의 칼럼』은 크게 세 부분으로 나뉜다 : 음악, 과거와 오늘, 그리고 전원생활.
솔직히 말하자면 뒤의 두 부분은 전혀 내게 와닿지 않았고 - 특히나 전원생활 부분이 그랬다. - 기억에 남는 글이 없다.
반면 가장 첫 부분인 '음악 인생에, 한잔' 을 읽을 때에는 맞장구 치고 싶은 부분이 어느 정도 있었다.
아무래도 내가 초등학생 때부터 이어져 온 알아주는 음악 애호가라 그런 거라고 생각한다.
나는 '서태지와 아이들' 과 '룰라' 의 팬이었다.
카세트테이프를 마이마이에 넣고 테이프 속 필름이 늘어져라 듣곤 했다.
마이마이로는 라디오도 많이 들었다.
특히나 영화 음악을 소개하는 프로그램을 좋아해서, 눈을 감고 그 영화 속 장면을 상상하며 듣곤 했다.
그렇게 라디오를 벗 삼던 소년이 어느덧 중년의 나이가 되고 음악평론과 책을 쓰는 작가가 되었다.
p. 11
학창 시절에는 무언가를 '수집' 하는 걸 좋아했다.
그게 때로는 영화 포스터와 비디오, DVD 였으며, 때로는 H.O.T 관련 모든 물품들이었다.
그러니깐...
테이프, CD, 콘서트 비디오, 화보집, 향수, DNA 목걸이, 썬칩 과자, 미스터 해머 과자 등등이 있었다.
고등학교에 다니던 시절, 부모님 몰래 레코드판을 계속 사 모았다.
p. 31
요새는 CD는 구닥다리가 되어서 서랍 안을 몇 년동안 차지하기만 하거나, 진열장에서 먼지만 소복하게 쌓여 있다.
mp3 플레이어는 어디다 둿는지 모를 지경이고, 폰이나 컴퓨터, PMP로 듣는 음악이 전부이다.
LP 역시 판을 닦고 턴테이블을 올려서 바늘을 걸어야 하는 번거로움 때문에 CD의 출현 이후 찬란했던 시대의 종지부를 찍었다. 하물며 지금은 MP3가 등장했다. 아무데서나 스마트폰으로 음악을 들을 수 있으니, 휴대용 블루투스 스피커가 유행이다. 컴퓨터를 켜고 선곡 리스트를 돌리면 더 이상 신경 쓸 일이 없다.
p. 28
나는 멜로디가 밝은 분위기의 음악을 좋아한다.
때로는 그 음악이 아이돌의 댄스 음악이 되기도 하며, 때로는 클럽 음악, 때로는 R&B나 힙합, 때로는 재즈가 되기도 한다.
한 때는 재즈, 그 중에서도 acid jazz에 빠져서 끌로드 볼링과 일본 시부야계 음악을 주구장창 듣고, 직접 들으러 간 적도 있다.
그런데 관객석 맨 앞에서 들으려면 유명 재즈 뮤지션의 티켓 가격 15만원은 그냥 넘더라.
그때가 1994년, 해외 재즈 뮤지션들의 내한 공연이 가뭄에 콩 나듯하던 시절이었다. 별도의 관람 티켓을 끊고 지하로 내려갔는데 너무 작은 공간이어서 한 번 더 놀랐다.
공연장이라기보다는 연습실 같다고 할까. 구석에 무대가 있고, 서서 보는 스탠딩 공연이었다.
'아니, 세계적인 밴드가 이런 동네 지하실에서 공연을 하다니...'
(중략)
사실 세계 곳곳에서 라이브 클럽 문화가 자리 잡은 지 오래다. 우리의 경우는 이상하게 예술의전당이나 세종문화회관에서 이런 공연이 열린다. 당연히 관람료도 비싸다.
p. 41
이런 나도 음악 마니아라고 자칭하고 싶다.
오타쿠보다는 역시 마니아라는 말이 좋다.
마니아는 자신이 좋아하는 분야를 폭넓게 이해하고 전문적인 지식을 갖게 되는데 비해 오타쿠는 한 가지에 집착하며 시야를 좁힌다.
p. 115
『한잔의 칼럼』은 세 단어로 요약해서 말할 수 있겠다.
smooth
refreshing
familiar
글을 쭉쭉 읽어 내려가는데 무리없이 매끄러우며, 일상의 찌든 삶에서 벗어나 머리를 맑게 하고, 무엇보다도 내가 쓴 글인듯 친근하다.
'이런 글은 나도 쓸 수 있겠는데?' 라는 오만한 생각까지 들었으니 말 다 한 거 아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