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즈키 선생님 9
다케토미 겐지 지음, 안은별 옮김 / 세미콜론 / 2016년 2월
평점 :
절판


대망의 마지막을 장식하는 스즈키 선생님 9~11권이다.

1권에서 시작해서 만화책치고 절대 긴편은 아니지만, 이야기가 있는 도서로 본다면 장편에 해당하겠지.

스즈키 선생님이 스스로 '모르는 사이에 성장했다.' 라고 느낀 것처럼 

도서 스즈키 선생님을 읽는 나의 속도도 성장하였다.

이제는 한 권에 30분 정도면 거뜬히 읽을 수 있을 정도이다.

만화책인데 당연하다고 볼 수도 있겠지만, 

스즈키 선생님은 대사가 많고 거의 '썰전' 에서 얘기하는 수준의 대화가 나와서 막 읽고 넘기기가 힘든 것들이 많다.





빅 이슈 셋 중 그 포문을 여는 첫번째는 학생회장선거이다.

역시 기대를 저버리지 않고 어마어마하다.

간다 마리는 말도 안 되는 인기투표 소동을 일으킨 주범이나, 제법 어른스럽게 연설을 한다.


나카무라는 학생회장 선거 연설에서 긴장했으나 인기는 많았고,

 나중에 자신의 반에 연극 '반짝이끼' 를 가져올 수 있도록 가위바위보 승리의 주역이 된다.

니시 가즈야는 단순히 투표율을 높이기 위한 진지한 의견없는 적당주의식 선거방식 자체에 의문을 품는다. 

그가 하는 말이 모두 옳고 이성적인가?

전교생 앞에서 공공연하게 오카다 선생님과 말다툼하는 니시의 모습에서 느껴지는 건 '말 꼬투리 잡고 늘어지기' 일 뿐이다.

 어불성설인 내용이 그만큼 많이 포함되어 있다는 것이다.

게다가 여기에 더해서, 학생회장 선거를 부정하는 니시조차도 오가와 소미에게는 한 표 선사하려한다는 거.

이러쿵 저러쿵 자신의 의견을 개진한다고 해봤자, 결국 미숙한 중학생이자 여자에게 끌리는 한 남자에 불과했던 것이다.


아이러니하게도 전교회장으로 니시가 당선되게 되고, 그는 또 그 역할을 맡는다.

여러 아이들과 선생님들의 격려와 지지가 있었지만, 그가 학생회장을 한다는 자체가 모순이지 않은가?





우리나라 학교의 풍경과 선거유세부분만 많이 닮은 - 선거 포스터 만들기, 점심시간에 각 반 돌아다니며 유세하기 등 - 

일본 학교의 학생회장 선거를 보고 있자니, 얼마남지 않은 우리나라의 국회의원선거가 생각난다.

만화책 속 히가시 초등학교에서는 기명투표를 실시하여 장난스러운 투표를 막으려고 했다.

그래서 그에 불만을 품은 학생들이 중학교 때 적당한 보복을 하려고 한다.

우스꽝스럽게도 보복의 중심인 아이가 자신이 반대하는 체제의 핵심이 되어버렸지만 말이다.


결코 기명투표가 옳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하지만 초등학생 때라면, 적어도 자신의 투표권 행사가 어떤 건지 가르쳐질 나이라면, 

한 번쯤은 당당하게 이름을 쓰고 투표해도 나쁘지 않다고 본다.

단, 선거개표위원이 학생 대신 모두 교사라는 조건 하에.


우리나라에서 투표 독려시 항상 나오는 말이 있다.

'국민의 정당한 권리를 행사하시오.'

'정치를 비판하려거든 먼저 투표하시오.'


투표로 나라의 법과 정치가 바뀌는 국회의원선거에서 기명투표는 말도 안 되는 것이다.

그렇다고 투표권을 포기하는 것도 말이 안 된다.

다만 자신의 소신껏, 혹여 맘에 드는 후보가 없다면 스즈키 선생님에서처럼 무효투표를 하면 된다.

물론 정당의 정책과 후보자의 공약을 보고 선택하는 게 정상적인 것이고 그렇게 하도록 노력해야한다.






학생선거 다음으로 나온 이슈는 문화제이고, 그 속에서의 연극 발표이다.

2-A반의 연극을 담당한 스즈키 선생님은 중학생을 상대로 거의 대학생급의 수업을 진행한다.

아이들에게 유재석을 연상시키는 말발로 자신의 의견을 피력하고 설득시키는 그는,

모두가 즐겁자고 하는 문화제 연극임에도 불구, 지나칠 정도로 진지하게 아이들을 겁준다.

처음에 아이들 배역을 정해놓지 않고 모든 내용을 숙지하게 한 후 오디션과 같은 테스트로 가장 적당한 배역을 배정하는가 하면, 

서로간의 신뢰훈련부터 발성훈련, 끝말잇기 놀이까지 연극 강사 자격증이 있나 싶을 정도로 전문적이다.

그러면서 기시에게는 연극 '반짝이끼' 의 주인공 선장 대역을 거의 강요하다시피한다.

그 이유는 기시가 선장 배역에 타고났다는 것이고, 이에 대해 말도 안 되는 이유라고 한 학생에게 항의받지만,

언제나 그랬고 앞으로도 늘 그랬듯이 자신의 언변을 십분 활용하여 항의를 거뜬히 물리쳐 버린다.


연극으로 단단히 뭉쳐지고 하나가 된 2-A반 아이들은 

어느 사회 부적응자의 오가와 소미 강간/살해 위협 사건에서도 의외로 침착하게 대응한다. 

늘 감정과잉에 치닫은 모습만 보다가 정말 위급한 상황이 닥쳤을 때 차분한 태도를 보이니 어지러울 지경이다. 
이것이 연극으로 다져진 아이들의 내공이란 말인가?






마지막 이슈는 미쓰루의 어머니 폭행과 그와 연관해서 엉뚱한 곳에서 복수를 노리는 가쓰노 유지의 오가와 소미 강간/살해 위협 사건이다.

세계 어느 나라든 거동이 수상한 자는 수사를 받을 수도 있고, 시민이 이를 보고 신고할 수도 있다.

남자 둘이 늘 공원 벤치에 앉아 음울한 분위기로 있는데 이걸 보고 그냥 넘어간다고 해도 암묵적 방관이라고 욕할 거 아닌가.

자신과 미쓰루가 어떠했는지 전혀 생각하지 않고 피해를 보았다고만 느낀 후 (이거야말로 열폭)

 미쓰루에 대한 복수를 한답시고 자신의 욕망을 채우려 한다. 

왜 살인을 하려다가 여중생 강간으로 바뀌는 건데? 

그런데 결과적으로 드러난 이유가 참 어이없다.

미쓰루 사건과는 전혀 관계없이 그동안 자신이 가져 온 불만족스러운 여자 관계에 대한 보상으로 강간을 원했던 것이다.

여기에 가쓰노 유지가 평생 사회 부적응자로 살 수 밖에 없는 이유가 놓여 있다.

자신의 행동에 대한 합리화를 위해 인과관계가 없는 별개의 두 사건을 연결지으려 했던 그.

합리적이지도 않을 뿐더러 외부인의 시선으로 보기엔 웃음거리일 뿐이다.


트위터를 통해 강간/살해 장면을 실시간 중계하려고 하는 가쓰노 유지의 계획을 중단시킨 건 다름아닌 납치된 장본인 오가와 소미이다.

그녀가 전혀 중학생답지 않은 자세로 가쓰노 유지의 말을 모두 들어주고, 냉철한 비판의 말도 해 가며,

장기적으로 그의 갱생을 생각하여 일부러 살짝 목을 찔려 주어 피가 나게 하기도 하고, 

심지어는 날라차기 두 번으로 가쓰노 유지를 제압한 후 옥상에서 반대편으로 뛰어 탈출한다.

대. 단. 하. 다.

가능할 수도 있지만, 가능한가?








만화라서 그런가, 아니면 정말 일본에서는 그러한가?

학생회장선거 후보연설에서 그렇게 길고 진지하게 전교생 앞에서 말할 지 정말 궁금하다.


스즈키 선생님을 만든 다케토미 겐지의 프롤로그를 보면 

거의 미드 CSI급의 사건들이 줄줄이 터지는 만화책 속 이야기가 TV에서 나온 사건, 사고를 바탕으로 했음을 알 수 있다.

실제로 일어났던 학교에서의 사건들을 스즈키가 몸 담고 있는 학교로 모조리 옮긴 것이다.

그리고 그 상황에서 만약 이렇게 대응했다면... 이라는 가정을 바탕으로 이야기가 개진되었다.


또한 생각지도 못한 건, 그가 독자들에게 자극적이고 오락적인 즐거움을 주기 위해 노력했다는 것이다.

충분히 자극적이긴 했지만, 결코 유쾌한 자극은 아니었기에 일본 독자들에게 얼마나 오락적인 즐거움을 주었는지 모르겠다.

하지만 우리와 엄연히 가치관과 사고방식이 다른 그들이라면 일련의 사건들을 통해 '즐거워' 했을 수도 있겠다.





 





그래서 내게 스즈키 선생님은 

재미난 만화책과 진지한 만화책 둘 사이에서 어느 쪽으로 가야할 지 갈팡질팡했다는 느낌이다.


그리고 스즈키가 여학생을 보는 그런 음흉한 마음을 계속 품는다면, 

양심의 가책을 느끼고서라도 교사를 그만두었으면 한다.

만약 정상적인 현대인 수준의 양심을 지녔다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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