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의 사랑
쯔유싱쩌우 지음, 이선영 옮김 / 북폴리오 / 2015년 12월
평점 :
절판


북폴리오 서포터즈가 아니었다면 읽지 않았을 만한 부류의 책.

일단 절절하거나 갈등 구조가 많은 사랑이야기를 멀리하고, 중국 소설과 친해진 적이 결코 없었기에

집 근처 서점에 가서 평소 하지 않을 과감한 도전 정신으로 '제3의 사랑' 을 집어 들었다.


표지부터 한 떨기 사랑을 보여준다. 순백과 붉음이 적절히 섞인 사랑. 

순수하고 열정적이지만 어쩔 수 없는 고통도 감내해야 하는 사랑이 바로 주인공 추우와 임계정의 사랑이다.


작가는 어쩌면 한국드라마 '내 이름은 김삼순' 을 보고 깊은 감화를 받아서,

혹은 드라마 내용이 현실과는 맞지 않다고 생각하여 이 책을 집필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웃긴 게 뭐냐 하면, 이 소설 역시 그럴법 하면서도 그럴법하지 않다는 거다.


도시에 사는 90% 이상의 여성들로 하여금 사랑에 빠지게 만든 모든 게 완벽한 - 냉철한 분위기만 제외한다면 - 한 남성.

그리고 그런 그와 어긋난 사랑에 빠지는 아름다운 외모의 변호사.

선망의 대상인 남성을 바라보며 스스로 망상에 사로잡히다 자멸의 길로 빠지고 마는 어리석은 한 여성.


이 이야기가 있을 법한가?

외모 묘사부터 상당히 드라마틱하다.

현실의 남녀는 그렇게 잘 생기거나 아름답지 못하다.

재벌가의 후계자가 엄청난 외모를 자랑하는 경우를 드물게 접한다. 흔치 않다는 얘기다.


하지만 이 이야기는 있을 법하다.

재벌과 소시민의 이야기가 아니다.

재벌과 변호사의 이야기이며, 변호사는 결코 소시민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들의 논리적이면서도 이성적으로 때로는 지나칠정도로 냉철하며 분석적인 대화는 본인들의 직업에서 비롯된다.



남자 주인공 임계정의 매력은 하늘을 찌를 듯하다.


여기서 그의 매력이란 비단 엄청난 집안, 재산, 지위, 외모를 일컫는 게 아니라,

자신이 사랑하는 여자를 얻기 위해 하는 자연스러운 말과 행동을 말한다.


"그렇게 많은 사람이 도와줬는데, 왜 당신만 초대했을까요?"

"그건...... 그건......"

나는 잠시 아무런 대답도 떠오르지 않았다.

"그건......"

그가 내 말을 이었다.

"그건 당신이 보고 싶었으니까."

p.110


어쩔 수 없는 오글거림과 동시에 심쿵을 느끼게 하는 대목이다.

이렇게 솔직하게 내 마음을 뒤흔드는 남자를 거부하기란 쉽지 않다.

변호사의 이성을 가지지 않았다면 말이다.


나는 놀라서 꼼짝할 수가 없었다. 그렇게 잠시 시간이 지난 뒤 나는 그에게 사납게 쏘아붙였다.

"당신 정말 염치없군요!"

그가 고대를 끄덕였다.

"맞아요, 나 염치없어요. 추우, 너무 그렇게 펄쩍 뛸 것 없어요. 난 당심을 너무 오랫동안 참아왔으니까!"

p. 204


어떤 위기 상황도 말 한마디와 행동 하나로 넘어갈 수 있는 남자, 그러나 그게 처세술이 아니라 그저 마음에서 우러나올 뿐이라는 게 그 사람의 매력을 좌지우지한다.



임계정에 비해 여주인공 추우는 자신의 감정을 묵살하고 자꾸만 이성적으로만 행동하려 한다.

그 행동이 더욱 비이성적으로 느껴지는데도...


나는 다른 것이 아닌, 그의 돈이나 권세가 아닌, 그저 그의 아름다운 얼굴만으로도 충분히 매료되었다. 그러나 그 순간, 이성이 대뇌를 지배했다. 나는 그를 밀치고 테이블로 걸어가 가방을 집어 들고 문을 나섰다.

p. 111


이 상황이 실제였다면 과연 얼마나 많은 여성들이 몸이 가는대로 행동하지 않을 수 있었을까?

어떤 의미에서 추우는 정말 대단한 여성이다. 



한 편, 사랑과 연애에 대해서 감정을 동하게 하고 공감하게 하는 부분들도 있다.

누구나 알다시피 사랑은, 그리고 연애는 결코 거창한 게 아니다. 


심요가 계산대에 돈을 지불하러 간 사이, 나는 문 앞에 서서 생각에 잠겼다. '사랑하는 사람에게 약을 사주며 그 사람에게 약을 먹으라고 명령할 수 있다는 것, 이것이야말로 행복 아닐까.'

p.167


옆에서 뭐라뭐라 명령조 - 그러나 애교섞인 말투로 - 로 남성에게 지시하는 여성과, 그런 여성의 말을 잘 듣고 그대로 따르는 남성. 우리네 연애사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장면이다.


나는 억지를 쓰며 그를 원망하는 척 연기를 했다. 연애 중인 여성만이 갖는 특권이다.

p. 267


진심이 아니면서 보이는 앙탈, 속이 빤히 보이는 귀여운 연기, 여자친구들에게는 그리 낯선 특성이 아니다.



하지만 '남자는 역시 다 똑같을까.' 라고 생각하게 되는 부분들도 등장한다.

결코 같지 않은 개개의 남자들인데, 그들이 하는 행동은 어찌 보면 일반화하거나 단순화시켜도 오류가 없을 정도로 범세계적이다.


"추우, 나에게 3년만 시간을 줘요. 그땐 모든 것을 정리하고 꼭 당신과 함께할 거니까."

p.277


재벌가 서열, 집안의 재산 등 특수한 요소가 뒤엉킨 임계정이라지만, 

이런 말을 듣는 여성에게는 답답함과 불안, 짜증이 동시다발적으로 밀려올 뿐이다.

3년 후에도 내 마음이 당신을 향하고 있을까?

글쎄......


"네 옆에서 기다릴게. 네가 나를 용서하는 그날까지 영원히."

나는 문득 웃고 싶어졌다. 남자들이란 이렇게 쉽게 영원을 말하는 구나. 고전기, 좌휘, 임계정까지 모두 마찬가지였다.

p.336


이 부분에서 어찌나 공감했던지.

진실된 남자는 쉽게 영원을 논하지 않는다. 그가 영원이라는 단어를 쓸 때는 몇 십번 되뇌인 후 사용한 진심이다.

가벼운 남자는 쉽게 영원을 논한다. 만난지 몇 번 되지도 않았는데 '영원히' 라고 말했던 그 애는 지금 '영원히' 내 곁을 떠나 있다.


이 소설 전체에서 나를 가장 화나게 한 인물은 그 누구도 아닌 좌휘이다.

그리고 좌휘를 옹호하는 추월을 포함한 주변 인물들 모두.

여러 성향 중에서도 특히나 이성에 관한 건 죽을 때까지 고칠 수 없는 그 사람만의 특성이다.

좌휘는 이미 한 번 바람을 폈다. 제발 이혼해달라고 빌었다.

그랬던 사람이 다시 돌아오려고 한다. 이번엔 제대로 하겠다고.

제대로 된 여성이라면 절대로 기회를 주지 않는다.

기회는 스스로 차버린 그 때 그 기회 한 번뿐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3의 사랑' 을 좋아하냐고?

글쎄..

소설 속에서 묘사되는 추우의 전문성과 외모, 임계정의 화려한 분위기, 그리고 강심요의 예쁘고 순수한 분위기는 맘에 든다.

그리고 그 뿐.

그들의 이야기는 나의 심장을 어루만지지도 다치게 하지도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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