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브리데이
데이비드 리바이선 지음, 서창렬 옮김 / 민음사 / 201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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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 매일 일어날 때마다 다른 사람이 된다면? 하지만 잠을 안 들 수는 없고, 찢겨지는 고통만 있을 뿐. 다행히도 나이는 '내' - 만약 '나' 라는 게 존재한다면 - 나이대로 흘러가고, 다만 나이를 제외한 성별, 인종, 몸매, 성격, 가족 모든 게 바뀌는 나날들.

한 번 들어간 몸에는 다시 들어가지 못하는 나.

매일 매일 . everyday


작가 데이비드 리바이선이 게이라 그런지 이 소설에서는 성에 무관한 A와 리애넌의 사랑을 그리고 있다. 물론 리애넌은 여자로서 여자아이와의 키스를 힘들어 하고, 잘 생긴 남자 아이를 좋아하긴 하지만, A는 자신의 마음대로 될 수 없어 성별도 그 날 그 날 다르다. 



"눈을 뜨고 내 팔의 피부가 옅은 색인지 짙은 색인지, 머리털이 긴지 짧은지, 뚱뚱한지 말랐는지, 남자인지 여자인지, 몸에 흉터가 있는지 매끄러운지 등등을 알아보아야 한다."

p. 9



소설을 읽으면서 내내 떨칠 수 없었던 원론적인 질문. 나의 몸은 어디에? 나는 존재하는 것인가? 몸은 껍데기인가? 영혼이란 있는가?


하지만 종교나 철학, 사상이나 과학이 뭐가 중요하겠는가. 그저 10대의 설레임과 사랑만 있으면 그만일 것을. 

소설 속에서 영원할 것만 같이 보이는 A와 리애넌 의 사랑도 10대들의 풋사랑일 가능성이 농후하다. 세상 끝날 것처럼 사랑하다가도 마음이 변하는 게 사람이니 말이다.






이런 삶 속에서 A는 나름의 규칙을 세운다. 그건 단 하루만 그 사람의 몸에 들어가는 것뿐이니, 그 사람의 생활을 송두리째 바꿀 일을 해서는 안 된다는 거. 기억에 '접속' 하여 일상적인 것을 하자. 

(물론 이런 규칙은 리애넌을 만나면서 180도 바뀐다.)



"과거에는 다른 사람들의 삶에 피해를 준 적이 있는데, 그런 실수를 할 때마다 그 일이 오랫동안 나를 괴롭힌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p. 10


이러한 태도는 리애넌을 처음 만났을 때는 어느 정도 유지되는 듯이 보였다.



"이것은 내 문제가 아니다. 나는 안다. 나는 하루 동안만 여기 있을 뿐이다. 내가 어떤 이의 남자 친구 문제를 해결해 줄 수는 없다. 내가 어떤 이의 삶을 바꾸어서는 안 된다."

p. 15


그리고 매일의 기억을 잊지 않으려 A 자신만의 이메일 계정으로 기록을 보내지만, 인터넷 사용 기록은 깨끗이 지움으로써 '몸을 빌려준' 이가 혼란스러워하지 않도록 한다. (하지만 단 한 번의 실수로 이야기 흐름이 바뀐다.)



"나 자신의 메일 계정을 열어서 그녀 이름과 전화번호, 이메일 주소를 입력한다. 저스틴의 이메일과 패스워드도 입력한다. 오늘 있었던 일에 대해 쓴다. 그리고 나에게 보낸다. 

 그 일을 모두 마치자마자 사용 기록을 깨끗이 지운다."

p. 42-43



하지만 리애넌을 만나고 다분히 감성적이 된 A는 때로는 자살 시도 소녀를 막아보려 하기도 하며, 혹은 과도 비만인 남학생을 도와줄까 생각하기도 한다. 이 중에 하나는 실행으로 이어졌고, 다른 하나는 생각에 그쳤다.



"자살은 뭐가 다른데?"

"그건 이 애 목숨이야. 다른 사람 목숨이 아니라."

"하지만 그것 역시 죽이는 거잖아."

"만약 이 애가 정말로 죽으려 한다면 내가 그걸 막기 위해 할 수 있는 건 없어."

p. 174



"수건으로 몸을 닦으면서 나는 핀의 뇌에 정신적 외상을 심을 수 있을지 궁금해한다. 아주 충격적인 어떤 기억을 심어서 너무 많이 먹는 것을 그만두게 할 수는 없는지 궁금한 것이다. 그러다가 문득 그런 생각까지 하는 나 자신에게 소름이 끼친다. 나는 핀이 무얼 해야 하는지 알려 주는 것은 내 일이 아니라고 나 자신을 일깨워 준다."

p. 350




이 소설을 단지 공상적인 청소년 로맨스물이라고 치부하기에는 작가의 글 속에서 깊이가 느껴진다. 감정 묘사나 감정이 들어간 배경 묘사가 상당히 서정적이며, 동시에 '매일 몸이 바뀌는 사람의 엄청난 이야기!' 라는 느낌의 블록버스터가 아니라, '그래서 '나' 는 누구인가? '나' 란 존재하는가? '나' 란 괴물인가? 자아란 무엇인가?' 등의 매우 철학적인 질문과, 때로는 '빌린' 몸에게 느끼는 동정 sympathy , 감정이입 empathy 에서부터 동화 identification 까지도 볼 수 있다. 



"지금 그녀는, 낮 같지 않은 낮이 밤 같지 않은 밤으로 바뀌면서 수평선에 넓게 펼쳐 놓은 따뜻한 오렌지색에 자신이 물들어 있다는 것을 알고 있을까?"

p. 36


사랑에 빠진 자신의 감정 묘사를 16살짜리가 이렇게 쉽사리 할 수 있는 것일까? 하지만 이 아이는 그냥 한 사람이 아니라, 365명의 다른 사람들 x 16년간을 살아온 아이라는 점을 생각한다면, 그 사색의 범위가 남다른 것도 충분히 이해된다.



"사랑에 빠지는 순간 우리는 그 이면에 수 세기가, 수 세대가 있는 것처럼 느낀다. 그 정밀하고 놀라운 교감이 일어날 수 있도록 그 모든 세기와 세대가 스스로 자리를 바꾸는 듯 싶다. 모든 것이 이 사랑을 향해 달려왔고, 모든 비밀의 화살이 여기를 가리키고, 우주와 시간 자체가 오래전에 그 사랑을 공들여 만들었다고, 참으로 바보 같은 생각이라는 걸 잘 알면서도 우리 심장 속에서, 뼛속에서 느낀다."

p. 37


여자가 된 A, 거대 비만 소년이 된 A를 꺼리는 리애넌과 달리, A에게 몸은 예쁘고 잘 생기고를 결정해주는 것 이상이다.



"몸이 일종의 그릇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착각이다. 몸은 마음처럼, 영혼처럼 능동적이다. 자기 자신을 몸에 더 많이 내주면 내줄수록 우리 인생은 더 어렵고 힘들어질 것이다."

p. 89 








그래서 결론은?

사랑.


모든 사유와 고민, 내일에 대한 걱정, 오늘에 대한 걱정은 모두 집어 치운 채, A의 리애넌에 대한 사랑으로 귀결된다.



"내가 리애넌의 사물함이 있는 곳을 정확히 기억한다는 사실이 특별한 - 그러나 놀랍지는 않은 - 이유가 바로 그것이다."

p. 74



아직은 불안하고, 주위의 시선이 두려우며, 자신의 마음에 자신이 없는 리애넌에 비해 A는 생물학적 -이라고 말할 수 있다면 - 나이에 비해서 훨씬 성숙한 사고방식을 지니고 있으며, 그가 마침내 리애넌을 위해 택한 방법도 지극히 희생적이다. (이는 결말에 해당하므로 도서 구입과 독서 장려를 위해 적지 않는다.)


개인적으로 나는 A의 리애넌과의 관계 해결 과정은 모르겠지만, 마지막 순간이 매우 마음에 들었다. 




이 소설을 '미드' (늘 미디어에 사로잡힌 나~) 로 만든다면 정말 좋겠다.

여자 주인공은 소설 속 묘사에서보다 훨씬 예쁜 Mackenzie Foy ( 영화 '트와일라잇' 시리즈에서 무서울 정도로 예쁜 딸 르네즈미 역할을 맡았던 배우) 가 하면 나이도, 외모도 딱 이겠다. 

A역은 매일 매일 다양하게~ 가끔 까메오로 재미도 더하면서.

재미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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