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삶, 나의 집 - 집을 헐어버리려는 건설감독관과 집을 지키려는 노부인의 아름다운 우정
필립 레먼.배리 마틴 지음, 김정희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4년 12월
평점 :
절판



표지만 보고 소설인 줄 알았던 이야기.

하지만 애니메이션 영화 'Up' 의 모티브가 되었던 믿기지 않는 실제 이야기.


나의 삶 나의 집. 영어원제는 Under One Roof.



에세이를 읽던 내내 생각했던 건데, 우리나라에서 이 이야기를 영화화한다면, 혹은 단편극으로 만든다면, 굉장히 짜증 잘 부리는 병든 할머니와 이를 참을성 있게 견뎌내는 한 남자의 이야기쯤으로 축약해버리지 않을까?

하지만 한 문장 한 문장 읽으면 글쓴이이자 주인공인 배리의 따뜻한 시선을 느낄 수 있었고, 언론과 대중의 편견어린 시선에 숨막혀 하며 힘들어 했다는 것도 알 수 있었다.


그를 힘들게 한 건 건설 그 자체도, 할머니 이디스도 아닌, 바로 주위의 따가운 눈총이었던 것이다.






화자인 '나' 의 이름은 배리. 쇼핑몰을 건설하는 건설 감독관이자 이디스가 죽기까지 3년간 보살핀 장본인이다. 


그는 이디스의 지식에 반했으며, 그녀의 믿기지 않는 과거에 홀렸고, 누가 시킨 것도 아닌데 이디스의 잔심부름에 새벽에 부르는 전화에 집까지 달려나가야 하고, 성질까지 다 받아주는 그런 사내가 되어 있었다. 그 자신도 사춘기 두 자녀를 둔 아빠이자, 아내가 있는 남편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건설현장에서 집을 사수하며 지키고 있는 이디스와 거의 하루하루를 같이 보내고 있었던 것이다.







또 하나의 중심 인물인 이디스.

그녀는 아는 게 많은 할머니로 왕년에 스파이였고, 27명의 아이들을 위해 고아원을 세웠으며, 베니 굿맨이 사촌이고 남편은 헝가리 테너였을 뿐만 아니라, 여러 유명 배우들과도 친분이 있었을 것이라 추정된다. 


게다가 '어제가 시작된 곳' 이라는 책도 쓰고 있었던 그런 사람.


사회복지사들이 시설로 보내려는 걸 완강히 거부하고, 집을 끝까지 지켰던 인물로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 만큼 괴팍한 늙은이는 아니었다. 집을 팔지 않으려는 이유도 단순히 '내 집' 이기 때문이었다. 


"그 사람들이 달리 어쩌겠어? 돈이 없는데, 돈 없이 어딜 가겠느냐고?"

나한테는 이 말이 이렇게 들렸다.

"그 사람들이 날 성가시게 하지만 않으면 나도 상관하지 않아."

상당히 철학적인 접근이었다. 나는 한참이 지나서야 누군가가 보여준 그 기사를 읽었는데 적잖이 놀랐다. 성질이 고약하고 신경질적이기로 유명한 할머니가 그런 문제를 그런 식으로 받아들인다는 게 상당히 의외여서였다.

사람들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과 다를 때가 많다.   (p. 20)



어머니가 바로 여기서 돌아가셨어, 배리. 그리고 이젠 나도 여기서 죽고 싶어. 여기 있는 내 집, 이 소파 위에서.  (p.54) 

자립심이 강했던 이디스. 하지만 그녀도 나이 앞에서는 조금씩 수그러들게 된다.


"부탁하고 싶은 게 있어." 마침내 그녀가 입을 뗐다. "오늘은 운전을 하기가 좀 불안해서 말인데, 미용실 예약을 해놨거든. 날 좀 태워다줄 수 있는지 궁금해서. 물론 곤란하다고 해도 다 이해해. 자네가 좀 바쁜 사람이어야지. 귀찮게 할 생각은 전혀 없어."

나는 약간 놀랐다.   (p.35)







그리고 책 속에서는 간간히 등장하지만 누구보다도 이디스와 배리관계가 형성되는 데 큰 공을 세웠다는 생각하는 인물, 바로 배리의 아내 에비이다.


중학생, 고등학생 두 아이의 반항을 받아가며, 그리고 거의 하루 종일 남편없이 혼자 살림을 해 나가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물론 남편이 부도덕한 일을 하는 건 절대 아니고, 오히려 칭찬받아 마땅한 선행을 베풀고 있었지만, 그건 타인이 봤을 때고, 가족의 입장에서는 3년이 30년처럼 힘들었음에 틀림없다. 그럼에도 그녀는 새벽에 잠 깨웠을 때 짜증부리는 정도 빼고는 그 어떤 아내가 할 수 있는 것보다도 더 훌륭하게 남편 배리를 지지하고, 자녀를 데리고 직접 이디스에 집에 가서 돕기까지 한다.





그 외에도 이디스의 진정한 친구는 아닌 걸로 밝혀진 찰리, 사업주 및 다른 인물들도 나오지만, 중요한 건 개개의 사건이 아닌 배리의 의식 변화라고 생각한다. 자신도 모르게 이디스를 알게 됨으로써 서서히 변해가고 - 물론 좋은 방향으로 - 있었던 것이다.



나는 그 순간 이후 일어난 모든 일을 빠짐없이 기억한다. 그것은 내가 나서서 도와야겠다거나 하는 그런 큰 결단이 아니었다. 그때는 그렇게 대단한 일 같아 보이지고 않았다. 하지만 그 때 그 순간, 배리 마틴과 이디스 윌슨 메이스필드의 삶이 얽혀 들어가기 시작했다.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방식이었다. 특히 내가 그랬다. (p. 80)



변화가 너무 서서히 진행되면 무엇이 어떻게 변하는지 알아채기가 쉽지 않다. 어느 순간 뒤를 돌아보고서야 '아하! 이만큼이나 왔구나.' 하고 깨닫게 된다. (p. 81)




그는 평소에 전혀 관심이 없었던 문학이나 음악 따위에 흥미를 보이기도 한다.



나는 그 모든 게 흥미진진했다. 어릴 적 학교 교실에 앉아 읽을 때는 그 시를 전혀 이해하지 못했다. 모든 시가 마찬가지였다. 그런데 지금 난생처음 그것들을 배우고 싶다는 욕구가 생겨났다. 처음으로 그 모든 것이 무엇에 관한 이야기인지 알고 싶었다. (p. 94) 



오로지 이디스를 위해 모든 것을 하는 배리. 유언장 일도 마찬가지다.



유언장에는 이디스가 금치산자로 판명될 경우 찰리가 그녀의 재산을 넘겨받게 되어 있었다. 

그 순간 모든 것이 명확해졌다. 찰리가 그렇게 화를 낸 이뉴는 이디스가 백만 달러를 받지 않았기 때문이다.

(중략)

내가 그렇게 두지 않을 것이다. 

나는 책임을 지기로 결심했다. (p. 112)



그는 병이 든 이디스와 마찬가지로 병이 든 자신의 아버지를 보면서 그들을 대하는 법도 새로이 익히게 된다.



내가 아이를 대하는 것처럼 그녀를 대한다는 사실을. 우리는 아이가 무언가 서툴게 하는 걸 보면 도와주겠다고 아이를 설득한다. 하지만 그건 아이를 위해서가 아니라 단지 하루 일과를 조금이라도 빨리 끝내기 위해서, 한마디로 나 자신을 위해서다. (p. 119)







책을 끝까지 읽고 나는 배리와 그의 가족에게 찬사를 보내고 싶었다. 

이디스는 자기 자신의 집을 지킬 뿐이었지만, 그들은 가정도, 한 사람도, 그리고 집도 함께 지켜냈다.

나라면 그럴 수 있었을까?

대답은 '아니오' 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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