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중에
스티븐 킹 지음, 진서희 옮김 / 황금가지 / 202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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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이 선택에 달렸고 우리가 택한 길에 따라 삶이 결정된다는 말을 하는 이들도 있지만 그건 순 헛소리다. 이 일만 봐도 알 수 있다. 계단으로 올라가나 엘레베이터를 타고 가나 우리가 3층에 도착할 거란 사실은 달라지지 않는다. 가혹한 운명이 장난을 걸어오면 어느 길을 택하든 똑같은 곳에 다다르게 된다.


p. 15


 [식스센스]라는 영화를 떠올리지 않을 수가 없다. 아마 그 영화를 본 적이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그럴 것이다. 주인공 제이미는 죽은 자들을 볼 수 있고, 그들과 말도 할 수 있다. 그리고 남자아이다. 할 말 다 하지 않았는가?

 이 소설은 언급한 영화보단 반전이 덜하다 할 수 있겠다. 어쩌면 없다고도 할 수 있다. 그러나 스티븐 킹의 소설이 늘 그렇듯 스릴이 넘치는 건 여전하다. 2시간만에 독파할 수 있는 소설이 그리 많지는 않을 테니. 또한, 완전히 몰입되어 다 읽고 난 후 고개를 들면, 내가 소설 속에 있는 듯한 착각이 들어 주위를 살펴보게 된다. 뭔가 위협을 가할 수 있는 요소가 있지는 않은지 찾게 된다.

 제이미는 '나비효과'를 전면에서 부정하고 있다. 하나의 선택이 연쇄적인 효과를 낳아 결과적으로 큰 물결의 흐름이 달라지게 할 수 있다는 생각말이다. 나는 이도 저도 아니지만, 그렇다고 선택이 중요하지않다는 말에 동의하진 않는다. '이 선택을 하지 않았다면..' 이라는 가정은 그럴 수가 없기에 - 선택의 시점으로 되돌아 갈 수 없기에 - 이루어질 수 없는 가정이지만, 그래도 '이 선택으로 인해 이런 결과가 생겨났다.' 라는 말은 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죽은 이들은 진실말을 말해야 한다. 당신이 질문의 답을 알고 싶다면 상관없겠지만, 다시 말하건대 그 진실은 아주 엿 같을 때가 있다.


p. 24


 제이미가 죽은 자에게 무언가를 물어보면 그들은 항상 진실만을 답한다. 산 자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점에 대해서는 무관심하고 그들에게 예의를 갖출 필요도 없지만 어쨌든 그렇다. 그래서 제이미를 이용하려는 자가 생기기 마련이다. 죽은 자를 볼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아이를 통해 진실을 캐내려고 한다. 이는 미드에서 흔하게 본 내용이기도 하다. 물론 드라마에서는 아이가 아니라 성인 남성이고, 그는 자신이 주체가 되어 직접 사건 현장에 뛰어들곤 한다. 하지만 제이미는 어린 아이일 뿐이다. 




몇 년 뒤, 대학에 다닐 때, 룸메이트가 진판델 한 병을 우리가 사는 아파트 거실에 쏟은 적이 있다. 그 냄새를 맡는 순간, 나는 마치 널빤지로 얼굴을 얻어맞는 기분이 들었다. 리즈의 헝클어진 머리카락. 어머니의 초점 없는 시선. 내가 시리얼을 넣어놓는 찬장을 천천히 그리고 재빨리 닫는 법을 어떻게 터득하게 되었는가 하는 것까지 모든 기억이 한꺼번에 몰려왔다.


p. 108


 스티븐 킹의 소설을 읽다보면 항상 전해지는 감각이 있다. 그것은 알싸한 냄새이다. 책 냄새가 아니라 책 속에서, 아니 이야기 속에서 약품과도 같은 냄새가 전해진다. 비슷한 경험을 한 유일한 때는 파트리크 쥐스킨트의 소설 [향수]를 읽었을 때인데, 그건 내용 자체가 냄새와 관련되었기에 그런데, 스티븐 킹의 소설은 꼭 그렇지 않더라도 매캐한 화학공장이나 실험실의 냄새가 난다. 이번 소설에서는 죽은 자 주변의 냄새가 언급되어서 그 경험이 배가 된다. 




"너한테 말 안 해."

나는 놀라서 말문이 막혔다. 죽은 이들에게 그런 대답을 들은 건 처음이었다.


p. 151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죽은 자는 제이미에게 늘 진실만을 말한다. 그런데 그렇지 않은 자를 처음으로 만나게 된다. 심지어 거짓말도 한다. 제이미의 엄마가 병에 걸려 곧 돌아가신다고 말하면서. 나중에 잘 모르겠다며 둘러대기도 하지만, 죽은 자가 진실을 말하지 않는다는 사실은 그에게나 책을 읽고 있는 나에게나 다소 충격적이다. 그리고 이는 앞으로 진행될 제이미와 관련된 신변의 변화에 대한 암시이다. 이 '특별한' 유령은 계속해서 등장하여 제이미를 괴롭힌다.




교수님은 내게 아주 많은 것을 알려주었지만 그 전에 우선 내 이야기부터 경청했다. 누군가에게 모든 걸 다 털어놓고 싶었다는 말은 앞에서 이미 한 적이 있다. 하지만 정말로 실행에 옮기고 나서야 나는 그게 굉장히 위안이 되는 일임을 깨달았다.


p. 188


 제이미와 어머니는 돈독한 사이다. 어머니는 자식의 능력을 오롯이 좋아하진 않지만 그렇다고 부정하지도 않으면서 인정해준다. 다른 사람들에겐 말하지 말라면서 아들의 이야기를 들어준다. 하지만 어머니에 대한 사랑으로 말 못할 사정이 생기고 만다. 가족에게 말하지 못할 땐 차라리 관련없는 사람에게 털어놓는 게 낫다고 하는 걸 심리학 관련 글에서 본 적이 있다. 제이미에게 그런 존재는 이웃이었던 교수님이다. 아내를 잃고 살 만큼 산 노인이지만, 아직 명석하고 논리적으로 판단할 수 있기에 제이미의 말을 분석적으로 듣고 이해하려고 노력한다. 

 엄청 새로운 내용은 아니지만 내 시간을 빼앗기엔 충분한 책이다. OTT 서비스에서 영화로 나오면 비 내리는 주말, 집에서 보고싶은 생각이 들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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