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만큼은 아니었지만 이번 여름은 더웠다.
짧지만 강렬했다.
그리고 더위를 날려줄만한 스릴러 소설이 필요했다.
에어컨 바람 아래에서 읽으니 오히려 추위를 느낄 만큼 무서웠다.
그게 바로 이 소설.
총 4편의 중편으로 이루어진 스티븐 킹의 책은 확실히 빠져들게 만든다.
500페이지가 넘는데도 불구하고 3시간도 채 되지 않아 다 읽었다.
첫번째 이야기는 [해리건 씨의 전화기].
현대 문명의 이기인 휴대전화가 무덤 속에서도 몇 년간 작동한다는 플롯인데, 이런 공포스러운 측면이 눈을 떼지 못하게 만든 건 당연하며,
무뚝뚝하지만 소년과는 잘 통했던 돈 많은 노인과 착한 소년이라는 주인공 설정,
거기에 늘 아름답게 느껴지는 학창시절이라는 소재가 낭만적이다.
네 편 중 내가 가장 마음에 들어하는 이야기로, 짝사랑하는 선생님이라는 하이틴 소설에 나올 법한 일화가 나와서 좋다.
"찰스 크란츠는 뭔가 있어요." 그는 말했다. "분명해요."
"자네 생각이 맞을 수도 있지." 샘이 파이프 담배를 뻐끔거리며 말했다. "하지만 지구의 자전 속도가 늦춰진 것...... 그것보다 더 심각한 건 없다네. 친구."
두 번째 이야기는 [척의 일생].
넷 중에서 유일하게 공상과학 장르에 들어가는 이야기로, 잘은 모르겠지만 어쩌면 척이라는 남성은 우리네 지구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척의 죽음은 지구의 종말을 의미하는 것일 수도 있다.
이상기후와 재해가 생기고나서 거리 전역과 심지어 집의 TV 광고에서조차 척의 39년의 짧은 생애를 감사하는 글귀가 도배되고 있으니 말이다.
그래서 마치 나이트 샤말란의 영화를 보는 듯 초자연적이며 기이하게 느껴진다.
그런데 척은 누구인가?
평범하다면 평범할 수 있는 사람인데, 어린 시절 불우한 가족사를 제외하면 제법 행복하게 살았다고 할 수 있겠다.
어른이 다 되어서 다시 춰보는 학창 시절의 춤.
이 장면은 참 아름다웠다.
공상과학과 드라마, 그 다음엔 공포다.
영화 [더 룸] 과 같이 들어가서는 안 되는 방이 집에 존재한다.
하지만 주인공은 늘 선을 넘는 법.
기어이 방 안으로 들어가서는 공포의 실체를 확인한다.
조지의 얼굴이 달라진다. 체트 온도스키로 돌아가는 게 아니라 그 안에 숨어 있는 진짜 존재를 드러내며 잔인하게 비웃음을 짓는다.
세 번째 이야기는 [피가 흐르는 곳에].
이 책의 제목이기도 하며, 네 개의 이야기 중 가장 길다.
제이크 질렌할이 출연하는 영화 [나이트 크롤러] 도 살짝 생각난다.
장르는 미스터리, 스릴러 정도로 하면 맞는다고 본다.
한 나라를 뒤숭숭하게 만드는 초대형 사건 사고.
그 현장에 늘 먼저 나가 있는 기자.
매우 흥미를 동하게 하는 소재이다.
주인공은 그 기자에 대한 진실을 파헤치려고 할 뿐만 아니라 대범하게도 직접 맞서려고 한다.
주인공과 기자가 대면하는 장면은 마치 영화 속 장면을 보는 듯 자연스럽고 익숙하게 느껴진다.
"그래서 보답하는 차원에서 세 가지 소원을 들어주겠다는 거로군." 드류는 웃으며 말했다. 익숙한 영역이었다. 한스 크리스티안 안데르센. 돌느와 백작부인 그리고 그림 형제.
마지막은 [쥐].
최고의 작품을 만들기 위해 자신의 영혼을 파는 작가.
매우 친숙한 소재이다.
얼마 전 보았던 연극 [데스트랩]을 떠올리게 하는 이야기이다.
네 가지 이야기의 주인공 중 가장 정신적으로 불안한 상태의 인물이 등장한다.
작가란 그런 존재인가.
말 하는 쥐와 거래를 하는 작가라.
책을 펴면서부터 집중할 수 있었는데, 다 읽으니 어쩐지 머리가 아프다.
내가 그 상황 속에 들어간 듯 하다.
글로 이러한 흡입력을 불어일으킬 수 있다는 게 대단하게 느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