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토의 디테일 - 전통과 현대가 어우러지는 한 끗 디테일
생각노트 지음 / 북바이퍼블리 / 2020년 7월
평점 :
품절



먼저 수건을 조심스럽게 테이블 위에 깐 뒤, 그 위에 얼음이 들어 있는 물통을 올려놓더군요.

p. 152

이런 제 생각을 읽으셨는지 사장님이 어디에선가 '칸막이'를 들고 오시더니 저와 대가족 손님 사이에 놓아주었습니다. 이 높은 칸막이 덕분에 저는 다른 손님들과 더 이상 눈 마주치는 일 없이, 눈치 보지 않고 식사를 마쳤습니다.

p. 153

여러 명이 함께 식당에 가면 어느 물컵이 내 컵인지 헷갈릴 때가 있습니다. "이거 네 컵이야?"라고 물을 때도 많죠. 같은 디자인의 컵에 투명한 물이 담겨 있으니 구분하기가 힘듭니다. 하지만 가이카도에서는 그런 일이 거의 없습니다. 아예 디자인이 다른 물컵을 주기 때문입니다. 한 손님에게는 높이가 짧고 통이 넓은 컵을, 다른 손님에게는 높이가 길고 통이 좁은 컵을 주죠.

p. 202-203

몇 년 전 일본 여행을 갔을 때 그들의 세심함에 감탄하곤 했다.

아주 작은(?) 도로 공사를 하는데도 지나다니는 보행자들을 위한 안전요원이 반드시 있고,

공사장의 노동자들은 모두 다 정해진 복장을 하고 있었다.

그 장면을 보면서 나의 집 근처 신축 아파트 건설 현장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다.

공사장에 들어가는 커다란 트럭들과 모래, 거기에 물에 굳어버린 진흙탕. 그야말로 엉망이었다.

당연히 보행자를 위한 안전요원은 보이지 않았고, 복장은 여름에는 제각각의 나시 차림이었다.


하나부터 열까지 따져보건데 분명 그들의 그릇된 역사관, 교육 방식, 독재와 같은 정치, 뒤처진 결재 문화 등은 비판하거나 짚고 넘어갈 수 있다.

하지만 일본 영화나 그들의 생활을 통해서 비춰지는 디테일은 결코 무시할 만한 것이 못 된다.

'이런 거까지 다 신경 써?' 라고 생각할 정도로 꼼꼼한 구석은 그저 탄식을 자아낼 뿐이다.


교토는 나 역시 여행했던 곳이다.

그런데 어딜 여행 가도 숙소에 돌아와서 편하게 먹는 걸 좋아해서 현지 식당에 별로 가질 않기에 식당에서의 디테일을 느껴보지 못했다.

얼음물이 담긴 통에서 물기가 흘러나올까봐 밑에 수건을 까는 디테일, 친구와 나의 물컵을 헷갈리지않도록 애초에 다른 모양의 컵으로 주는 디테일, 그리고 혼석하는 손님과 단체석을 칸막이로 나눠주는 디테일까지.

이 정도 섬세함을 가진 식당을 찾게 되면 정말 칭찬할 거 같다.

원래 하나를 보면 열을 안 다고, 친절도에서 위생 상태와 음식 맛까지 연상되는 법이다.

아마도 음식이 담긴 그릇이 테이블 위에서 마구 움직인다는 김X천X 같은 곳과는 다르겠지.



N월 다이어리를 보면서 떠오른 키워드는 '발상의 전환' 이었습니다. 저 역시 다이어리는 연말연시에 사는 시즌 제품이라고만 생각해 왔거든요. 이런 고정관념이 구매 습관으로 굳어졌고, 이 때문에 N월 다이어리 같은 아이디어를 떠올릴 수 없었습니다. '1년은 당연히 1월부터 시작한다'는 사고에 갇혀 있던 스스로를 반성하는 순간이었습니다. 얼마든지 1년의 시작과 끝은 달라질 수 있는데 말이죠.

p. 164

사실 사람들의 행동에서 보여지는 디테일말고 시설 면에서는 교토라고 해서 우리나라 서울과 그리 다를 게 없더라.

그러다가 발견한 물건에서의 디테일이 바로 N월 다이어리이다.

보통 다이어리를 연말이나 연초에 구매해서 11월~3월이 다이어리에서 시작하는 첫 달이 된다.

물론 만년 다이어리라고 해서 연도에 상관없이 구매해서 쓸 수 있는 제품들도 있지만,

귀찮게 월과 일을 하나 하나 적어야 하는 불편함을 감수해야해서 별로 써 본 적이 없다.

이에 반해 N월 다이어리는 마치 월간 잡지와 같이 매 달 나오는 다이어리로, 그 달이 시작 달이 되는 셈이다.

정말 간단한 사고의 전환인데 이제껏 보지 못해서 신기하다.

물론 그에 따르는 수요가 있어야 가능할 것이고, 구매력이 없다면 이 마저도 사라질 수 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N월 다이어리는 내게 작지만 큰 충격을 가져다주었다.

어떤 계획이든 다이어리를 처음 쓰는 그 달부터 새로 시작하는 것이다.







한국 사회는 빠르게 변하며, 불편한 것을 싫어한다.

그래서 이 책에서 나온 디테일들이 몇 년전부터 이미 적용되어왔다.

대중교통의 USB는 기차나 KTX, 좌석버스에서 수년 전부터 봐왔고, 심지어 와이파이는 항상 이용 가능했다.

버스가 어디에서 오는지 보여주는 전광판은 일부 지자체에서 본 적 있고, 시각 장애인을 위해서 소리가 나는 신호등은 내가 어릴 적부터 있었다.

여행객들을 위한 짐 보관 서비스나 다양한 혜택은 명동에만 가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우리는 섬세함 없이도 역동성으로 그 모든 것을 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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