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아무 생각 없이 페달을 밟습니다 - 58일간의 좌충우돌 자전거 미국 횡단기
엘리너 데이비스 지음, 임슬애 옮김 / 밝은세상 / 2020년 6월
평점 :
절판


녹음의 터널을 관통하는 중, 곤충과 새의 울음소리 때문에 귀가 따갑다.

밀밭, 투명한 시냇물, 피어나는 모든 것.

메스키트 옆에서 자라나는 커다란 참나무.

이 책은 전체가 일러스트레이션 그 자체이다.

표지부터 속지, 내용은 기본이고, 저자 정보부터 책의 기본 정보를 담은 부분까지 마치 저자가 직접 손글씨로 쓴 듯한 착각이 들게 한다.

대체 우리말로 옮기기 전 저자의 원래 글씨체는 어떤지 궁금해서 원작을 온라인으로 찾아보았다.

한국어 글씨가 세로로 조금 더 길다는 점은 다르지만, 전체적으로 부드럽고 캐쥬얼하다는 느낌은 비슷하다.

우리가 자전거 여행자가 쓴 그림에세이에서 바라는 점은 무엇일까.

단연코 그나 그녀가 자전거를 타면서 마주치게되는 아름다운 풍경일 것이다.

아쉽게도 컬러는 표지뿐이지만, 대충 그린 듯 아닌 듯한 그림들이 정겹게 다가온다.

미국이라고 하면 서부 지역 두 번과 하와이 여행이 전부인 나이지만 말이다.

사실 생각처럼 낭만적이거나 아름다운 자연이 가득한 에세이는 아니다.

그보다는 더, 작가가 그 날 그 날 느낀 점을 요약해서 담은 SNS 일기장에 가깝다.

어느 지역에 대한 요긴한 여행 정보도 담겨있지않다.

그래서 더욱 자전거 여행 중인 친구에게서 매일 받는 문자 메세지를 보는 기분이 든다.

 

그 여자가 내게 피스 사인을 해보이며 소리치기를 "언니 쩐다!"

감동으로 울컥했다.

"저 지금 너무 속상해요!"

"저런, 다 털어놔요! 내가 전에는 사회 복지사였어요. 상담치료사 훈련도 받았죠! 아는 사람 중에 스포츠 마사지사가 있어요. 걔한테 무릎 이야기를 해볼게요."

이쯤 되니 내가 죽어서 천국에 온 건가 싶었다.

누구나 상상할 수 있는 그런 장면들도 당연히 포함되어 있다.

책을 읽기 전 저자의 이름이나 간략한 프로필을 건너뛰고 바로 본문부터 들어갔는데,

"언니 쩐다!" 라는 부분에 살짝 충격받았다.

그림만 보고는 당연히 남자일 거라고 생각했기때문이다.

저자의 얼굴을 보여주는 사진이 단 한 장도 실려있지않아서 더했다.

그림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여성의 신체적 특징이 보이긴 하지만, 전반적인 신체 라인이나 선이 남성을 연상시킨다.

미국은 개인주의 인간들이 모인 국가이다.

물론 이는 이기주의와는 전혀 다른 개념이다.

'나' 라는 개인이 소중한 만큼, '너' 라는 개인도 소중하고 그만큼 존중받아야 한다.

그래도 미국이 싱가포르, 일본, 한국과 같이 치안이 좋기로 유명한 나라는 아니기에 그 곳에서의 라이더는 어떨지 궁금하기는 했다.

역시 사람사는 곳은 다 같은지, 누군가는 도와주려고 한다.

식사도 주고 잠자리도 내어주고 이야기를 다 들어주며, 마사지까지 해주는 그런 사람들.

노인들이 남의 일에 상대적으로 관심이 많긴 하지만, 우연히 만난 10대들도 자신들의 이야기를 한다.

내가 아닌 사람에 관해 조금 더 관심이 있는가 없는가는 국가나 국민의 차이라기보다는 개개인의 차이인가보다.

 

하지만 외국인을 싸잡아 '불법체류자'라고 부르는 사람 말은 듣지 않기로 한다.

그는 걷는다.

물살을 뚫고.

국경 순찰대와 보안관보, 구급대원이 둑을 따라 그와 함께 걷는다.

책을 읽는 내내 가장 많이 나온 단어이면서 나를 사로잡은 건 '무릎'과 '국경 순찰대' 이다.

저자가 라이딩을 하고 다니던 곳이 국경에 가까워서그런지, 불법으로 국경을 넘으려는 사람들을 감시하는 국경 순찰대가 계속해서 나타난다.

이민자나 난민에 대한 무분별한 반감이나 편견에 반대하는 그녀는,

미국 이민자/난민 권리 네트워크&인간 권리 연합에 대한 정보를 마지막에 담고 있다.

그런 그녀가 '화이트 파워' 동영상을 자신의 SNS 올렸다가 삭제한 지금의 미국 대통령을 보면서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까.

이 책은 낭만적이지 않다.

책장을 넘기는 내내 저자의 무릎이 말썽이고, 국경 순찰대가 가끔씩 등장하여 평화로운 분위기를 깬다.

그리고 이것이 미국을 횡단하여 자전거를 타는 자들의 현실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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