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초
T. M. 로건 지음, 천화영 옮김 / arte(아르테) / 2019년 9월
평점 :
구판절판


조건은 세 가지였다.

72시간 안에 이름 하나를 말해야 한다.

거절하면, 제안은 사라질 것이다. 영원히.

p. 11

누군가 윤리와 제도, 그리고 법의 틀 밖에서 무언가를 해결해주겠다는 제안을 한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내가 관련되었다는 흔적은 없을 것이라 한다.

한마디로 소리소문없이 해결해준다는 것이다.

법의 틀 안에서 살아온 사람으로서 당연히 망설여지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꽤 끌리는 제안이 아닐 수 없다.

눈엣가시처럼 여겨지는 사람이 있는데, 백날 블랙리스트를 작성하고 데쓰노트를 써봤자 달라질 건 없다.

나의 삶을 윤택하게 만들고 큰 골칫거리 하나를 없애버리기위하여 기꺼이 제안을 받아들이고 싶다.

단, 어떤 상황에서도 내가 연루되었다는 건 밝혀지면 안 된다.

실제로 내가 한 건 아무것도 없고 제안을 받았을 뿐이고 OK 했을 뿐이다.

어떠한 행위도 취하지 않았다.

그런데 나중에 내가 작전모의에 가담했다는 식으로 나오면 아주 곤란해진다.

애초에 작전을 짠 적도 없으니.

규칙은 간단했다. 가능하면 그와 단둘이 있지 말 것. 그를 부추길 수 있는 어떤 말도 행동도 하지 말 것. 택시나 엘리베이터에 함께 타지 말 것.

p. 14

내가 일하는 공간에도 여성 직원들에게 무조건 집적거린다고 소문난 - 게다가 불륜은 기정사실이었다. - 사람이 온 적 있다.

그 때 내가 할 수 있었던 건 무조건 그의 옆에 가거나 둘만 있는 상황을 만들지 않는 거였다.

나보다 지위상으로 위에 위치한 사람이었던 데다가 어이없게도 직장내 성고충 위원회의 위원이기도 했다.

그저 직렬로 위원을 세워놓다보니 그런 블랙코미디가 일어난 거였다.

다행히 그가 있던 동안 큰 일은 발생하지 않았지만, 사소하게 넘겨보내기엔 엥?하고 의문을 가질 만한 몇몇 일들은 있었다.

그런데도 성고충 위원회에 말 할 수가 없다.

그가 바로 그 자리에 있었으니까.

세상은 이토록 엉터리다.

진정한 선행이란 조금의 사심도 없는 행위지요. 보상을 바라지도 기대하지도 않는 겁니다.

p. 133

이런 종류의 선행을 내가 한 적이 있던가.

아.. 있네~ ㅎ.ㅎ

어릴 적부터 지금까지 수년간 불우한 아이들을 조금이나마 도와주려 하고 있다.

요새는 아이티에 사는 남자아이를 돕고 있고, 긴 머리를 싹둑 잘라 소아암 환우를 위한 가발용으로 기부한 적도 있다.

사후 장기 기증 서약은 예전에 했고, 길거리에서 주운 신용카드나 지갑을 찾아준 적은 제법 많다.

이게 선행 맞겠지?!

나 살기도 힘든 게 맞지만 그래도 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어서 크지 않아도 서로 돕고 살고자 한다.

난 성격이 유하지도 않고 결코 착하지도 않지만 사심 없는 선행은 하면서 살고 있다.


세라는 맞서 싸우는 쪽을 택했다. 설령 그것이 상대와 밑바닥까지 내려가서 비열하게 싸우는 것을 의미할지라도.

p. 477

극한으로 몰려진 경우가 아니라면 이런 선택을 하는 게 결코 쉽진 않다.

내가 낮은 직급에 속하고, 상대가 직급의 상위에 속하는 데다가 사회적 명성이 있는 자라면 더욱 더.

그런데 '쥐도 궁지에 몰리면 고양이를 문다.' 는 말이 있지 않은가.

이러나 저러나 살기 힘들다면 적어도 복수라도 하고 힘들어야 할 것 아닌가.

전임강사가 되고 결과적으로 교수가 되고자 하는 세라에게는 자신의 모든 걸 걸고, 아니, 모든 걸 버리고 감내하는 셈이다.

자신과 자녀의 생계, 직업적 성과를 다 포기할 정도로 몰린 상황이기에 이제 남은 건 무는 것이다.

물어뜯어서 서로에게 상처를 내더라도 개의치 않게 된다.


대학에서 행해지는 TV스타이자 대학 간판 교수의 갑질과 노골적인 성적 요구, 이를 감내하면서 힘들어하는 계약직 강사.

현실이라면 대개의 경우 강사의 패이다.

물론, 최근 몇 년간 미투 현상으로 사회적 지지나 여론 형성이 가능할 수도 있겠지만,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러나 소설 속 세라에게는 뜻밖의 제안이 오게 되고, 이제는 선택의 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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