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피치, 마음에도 엉덩이가 필요해 카카오프렌즈 시리즈
서귤 지음 / arte(아르테) / 2019년 6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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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는 방 안에 붙여놓은 아이돌 포스터 앞에서는 옷을 갈아입지 않는다. E는 푹 빠진 드라마가 생기면 마지막 회를 보지 않는데 그러면

이야기가 끝나지 않고 등장인물이 계속 살아 숨쉴 거라는 이유에서다.

p. 16


​비슷한 예로는 국가대표 축구팀의 A매치나 리버풀FC의 경기를 보지 않는 내가 있다.

내가 보면 어쩐지 긴장되고 왠지 상대편이 골을 넣을 것만 같다.

내가 응원하는 팀이 이기기 위해서는 나중에 휴대전화로 결과만 확인하면 된다.

나는 호그와트 그리핀도르 학생이니까 나의 염원이 마법이 되어 팀을 응원해 줄 것이다.

가끔씩 배나 머리가 너무 아플 때가 있다.

그런데, 이건 진짜 가끔이라 1~2년에 한 번 정도이다.

이럴 때면 어디엔가 있을지 모르는 어떤 존재에게 - 본인은 종교가 없다. - 그동안 나의 잘못을 사죄하며 아프지 않게 해달라고 한다.

그렇게 몇 시간 정도 지나면 신기하게 복통이나 두통이 씻은 듯이 나아져있다.


​우리 모두는 세상을 나 중심으로 보면서 살아간다.

'내가 이렇게 생각하면 상황이 이렇게 변하겠지.' 라는 생각은 논리적으로도 과학적으로도 전혀 말이 되지 않지만,

그런 희망에 찬(?) 소소한 믿음으로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게 우리다.

마음을 다치지 않도록, 마음이 행복해질 수 있도록 스스로 엉덩이를 만드는 행위라고 할 수 있다.



너무 귀엽거나 사랑스러운 걸 보면 왜 아파트나 지구를 부수고 싶어질까? 그건 귀여운 공격성이라고 불리는 심리 때문인데 이걸 증명하는 실험도 있어. ( 중     략) 그러니까 누가 나에게 쓸데없이 공격적이거나 삐딱하게 굴면 내가 너무 귀여워서 그렇다고 생각하자. 귀여운 것도 참 피곤행. 똑땅해.

p. 21


​나는 귀여운 강아지나 귀여운 인형을 좋아한다.

하지만 귀여운 무언가를 보았을 때, 다른 어떤 것을 부수고 싶어지는 공격성은 전혀 생기지 않는다.

그저 귀여운 대상을 한없이 보고 싶은 마음뿐이다.

내가 이상한 걸까?

내게 있어 세상에서 가장 귀여운 존재는 다름아닌 나와 함께 하는 토끼인형 헤니이다.

생일은 나와 같은 날짜로, 어릴 적 친구가 생일 기념으로 직접 만들어준 인형이다.

헤니가 세탁기에 넣어져 목욕(세탁)을 당한 후(?) 분홍색 실로 만들어진 입이 망가졌을 때 그야말로 망연자실했다.

할머니께서 임시로 입 모양을 만들었지만 여전히 이상했다.

결국, 소위 '인형병원' 이라고 불리는 인형 수선 전문샵에 보내지고, 일주일 넘게 헤니와 함께 하지 못했다.

십여일 가까이 지나고, 인형병원으로부터 사진 카톡이 왔다.

헤니의 입술은 전처럼 예쁘게 자리 잡아있었는데, 왠일인지 통통해져 있었다.

인형병원 의사, 간호사 선생님들로부터 귀염받고 잘 먹어서일까?

그게 아니라 서비스로 솜을 잔뜩 넣어줘서이다.

오랜만에 집에 돌아온 헤니의 변한 외모가 살짝 낯설었으나, 한두달이 지나고 다시 원래대로 돌아왔다.

솜을 이용한 시술은 영구적인 게 아니었다보다.



내가 제일 좋아하는 색 분홍.

p. 33

내가 가장 좋아하는 색깔은 바로 베이비 핑크이다.

핫핑크는 넘나 눈 아프고, 베이비 핑크는 소녀소녀하면서 여리여리해서 예쁘다.

그래서 손톱에 네일아트를 받을 때면 베이비 핑크 컬러를 많이 선택한다.

어떤 캐릭터를 그리건, 어떤 무늬를 넣건, 바탕색은 베이비 핑크이다.

가끔씩 딸기우유색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내게 둘은 다 똑같은 색이다.


​어쩌다보니 옷도 딸기우유색이 많다.

그렇다고 촌스러울 정도로 분홍분홍하게 입고 다니는 건 아니다.

윗도리가 분홍이면 아랫도리는 하양, 이렇게 최소한의 패션을 따라갈 줄은 안다.

만약 위, 아래, 신발까지 모두 핑크로 무장할 때면 소재와 컬러의 정도를 조화시켜서 어울리게 한다.

토끼인형 헤니도 베이비 핑크 컬러를 띄고 있다.

그래서 더욱 더 사랑할 수 밖에 없나 보다.

귀여워~


어두운 술집에서 일행 중 한 명이 립밤을 떨어뜨리자 모두가 핸드폰 플래시를 켜고 바닥을 비췄다. 배터리가 남아 있는 한 우리가 

언제 어디서든 서로의 빛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이 위로가 되는 날이었다.

[어피치, 마음에도 엉덩이가 필요해]

지하철에서 내리기도 전에 타려는 사람에게 치일 때, 길을 걷다가 사이비 종교인이 전도하려고 말을 걸 때, 

체중계의 숫자가 올라간 걸 볼 때, 갑자기 예정에 없던 비가 후두둑 내릴 때 등, 작게 크게 마음에 스크래치가 생기는 순간들이 있다.

그럴 땐 따뜻한 한 사람, 따뜻한 한 마디, 따뜻한 하나의 행동이 큰 힘이 되고 기분전환이 된다.

나에게 그렇듯이 남에게도 그렇겠지.

나도 누군가의 엉덩이가 되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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