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링 미 백
B. A. 패리스 지음, 황금진 옮김 / arte(아르테) / 2019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이게 내가 프랑스 A1 고속도로 부근 어딘가에 있는 경찰서에 앉아 경찰에 한 진술이었다. 진실이었다. 온전한 진실이 아니었을 뿐.

p. 13

 

인형을 다시 갖다 놓았다는 건 엘런이 내 말을 절대 어기지 않고, 내 말을 거스르지 않는다는 증거이기 때문이다. 그 덕에 갈등 없는 생활이 가능하긴 하지만 (후략)

p. 38-39

 

엘런은 내가 즐기는 이런 은밀한 즐거움을 모르고 있다. 수년간 주식을 사고팔며 쌓은 부에 대해서 내가 함구했기 때문이다. 모르긴 몰라도 내심 떳떳하지 못하니 말을 안 한 것 같다.

p. 68-69

 

사랑하는 사람이, 자동차 안에서 자고 있던 사람이, 잠시 볼 일을 보고 온 사이 사라졌다.

이게 B.A. 패리스의 스릴러소설 [브링 미 백] 의 주요 사건이다.

그런데 생각해보건대, 아무런 이유 없는 실종이 있기란 쉽지 않다.

핀의 연인 레일라 역시 어떠한 연유로 사라졌고, 이제 12년이나 지났건만 그 이유는 아직도 밝혀지지 않았다.

 

하지만 소설을 읽다 보면 중간 중간 그 원인이 핀에게 있을 수 있다고 추측하게 된다.

그렇다고해서 레일라가 완전무결한 사람이라는 뜻은 아니다.

다만 그녀의 실종에 있어서 핀이 지대한 영향을 미쳤을 거라는 거다.

 

핀은 애시당초 연인의 실종 당일날 일에 대해서도 경찰에게 완전한 진실을 숨긴 채 진술한다.

현재 같이 살고 있는 레일라의 언니 엘런과 생활을 유지할 수 있는 이유는 엘런의 순한(?) 성격 탓이라고 할 수 있다.

때로 의아한 일이 생기거나 핀이 평소와 다른 행동을 해도 굳이 따져 묻거나 크게 궁금해하지 않는다.

과연 핀에게 필요한 건 그의 말을 따르는 순종적인 여성이었을까?

레일라가 순종과는 거리가 먼 자유로운 여성이라서 실종, 혹은 타살된 것일까?

 

핀은 여성의 외모를 많이 따진다.

무조건 예쁜 여성만 본다는 말이 아니라, 여성들의 의상과 분위기, 머리 색깔, 눈동자 색깔까지 꼼꼼하게 들여다 본다.

거인같은 덩치를 가진 사람에게서 흔히 찾아볼 수 있을 거라 기대하기 힘든 꼼꼼한 탐색이자 취향이다.

 

 

사람을 잃는다는 건 바로 그런 거다. 그저 웃자고 무심코 던졌던 말도 잊지 않고 기억하게 된다는 것.

p. 84

이 책을 킬링타임용으로 시간 가는 줄 모르게 신나게 페이지를 젖히며 읽어가다가 갑작스럽게 감성적으로 변하는 나를 발견하게 된다.

위의 문장.

저 글귀가 유일하게 나를 순간적인 감상에 젖어들게 만들었다.

 

여지껏 누군가를 진정으로 잃어본 적 없다는 건 축복일까 아니면 저주일까.

헤어진 적은 많지만, 가까운 이의 죽음을 경험해 본 적은 없다.

장례식장에 가본 적은 있지만, 친구의 조부, 친구의 아버지 정도였지, 나의 가족이나 나의 친구, 연인은 아니었다.

차라리 어렸을 때 상실을 겪어봤다면 앞으로의 상실에 대비할 수 있지 않을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공감하게 된 건, 많지 않았던 남자친구들과의 이별에서 느꼈던 감정이기 때문이다.

그와 함께 했던 시간, 밤마다 노래를 불러주었던 기억, 함께 갔던 곳들, 그가 좋아하던 노래, 그 모든 게 헤어진 후에는 고통으로 다가온다.

작은 이별조차도 이 정도인데, 만약 이별을 넘어서는 거라면 어느 정도일지 상상이 잘 가지 않는다.

그렇다고해서 핀이 레일라 실종 사건으로 그녀를 잃어버린 후 극심한 고통에 시달렸을 거라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엄청나게 힘들어서 몇 달간 식음을 전패하거나 거의 먹지 않는다든가, 혹은 술에 절은 채 방 안에 틀어 박히진 않는 것 같다.

핀은 그런 남자다.

 

 

엘런을 진심으로 사랑했기 때문에 그녀와 함께했던 게 아니다. 엘런이 레일라의 언니가 아니었다면 애초에 그녀와 사랑에 빠지지도 않았을 것이다. 엘런에게서 레일라의 모습을 찾으려 한다던 루비의 말이 옳았다.

p. 225-226

핀을 옹호하려든다면 이렇게 말 할 수 있다.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엘런은 애초에 레일라의 언니였으니까."

그러나 그런 변명을 대려거든 핀이 엘런을 진심으로 사랑한다는 가정이 필요하다.

안타깝게 실종된 전 연인의 언니라는 관계가 성립되긴 하지만, 어찌됐든 사랑해서 만나 온거고 지금도 무지 사랑하고 있다고.

그런데 그렇게 보이지 않고, 핀조차도 진심이 아니라고 말한다.

왜 동거하고 약혼했을까?

순간적으로 사랑에 빠져서?

이 여자라면 평생 함께 해도 되겠다는 그런 결심이 섰던 것일까?

평생 레일라의 그림자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당연한 진실을 몰랐을까?

어떤 방식으로든 상실을 경험한 사람은 그것을 견뎌내는데 많은 시간이 필요하고, 

상실의 대상과 깊은 연관이 있는 사람과 계속 있게 되는 건 아픈 기억을 지우는데 그리 좋지 못하다고 본다.

가령 형제가 있는데, 첫째가 사고를 당해 어린 나이에 죽었다.

이에 부모는 둘째에게서 자꾸만 첫째의 모습을 찾으려 들고, 첫째만큼 혼자서 일을 척척 해내지 못하는 둘째를 보며 비난한다.

아니면, 여기에 세 살 배기의 자식을 잃은 한 여성이 있다.

남편과 상의 끝에 입양을 하지만, 입양한 아이에게 만족하지 못하고 점점 슬픔에 빠져든다.

한 사람은 다른 한 사람을 결코 대체할 수 없다.

 

 

요즘처럼 스트레스 받는 일 많을 때 괜히 욕하거나 화내거나 분을 삭이지 말고 스릴러소설을 읽는 게 좋다고 생각한다.

B.A. 패리스의 [브링 미 백] 으로 복잡한 마음 상태를 가볍게 다스려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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