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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레오마가린 왕자 도난 사건
필립 스테드 지음, 에린 스테드 그림, 김경주 옮김, 마크 트웨인 원작 / arte(아르테) / 2019년 5월
평점 :
미합중국에는 사방에 길이 나 있다. 손대는 일마다 줄줄이 말아먹는 사람들이 떼를 지어 보트를 타고 몰려와 이 땅의 원래 주인들을 몰아낸 이후로, 숲을 파괴하고 강과 개울이 흐르는 황무지를 콘크리트로 모조리 덮어 버리는 일이야말로 우리의 신성한 임무였던 것이다.
p. 30
이 도서는 솔직히 이야기 자체보다는 이야기가 탄생하게 된 배경이 매우 흥미진진하다.
우선 원작 작가는 그 유명한 마크 트웨인이고, - 영문학 학도로서 원서를 읽어야 했던! - 그가 쓴 유일한 동화이다.
그런데 완성본이 아니고 부분 부분 있어서 필립 스테드와 에린 스테드가 자신들만의 방식으로 글과 그림을 채워 완성된 책이다.
그렇다면 마크 트웨인은 왜 동화를 지어냈을까?
자신의 딸들이 밤마다 잡지의 어느 한 페이지를 보여주고는 이야기를 만들어달라고 보채서이다.
그래서 탄생하게 된 이 동화와 주인공 조니는 해부학 도면에서 마크 트웨인만의 상상으로 만들어졌다.
이야기의 방식은 마크 트웨인이 이야기를 하고 그 이야기를 듣는 필립 스테드가 중간 중간 끼어드는 방식으로 이루어진다.
다른 이들은 어떨지 모르겠으나, 나에게는 그런 부분들이 길을 걷다 발에 걸리는 돌멩이처럼 매우 거슬려서 빨리 넘기게 되었다.
분명 한 작가가 그의 딸들에게 들려주었던 bedtime story인데, 중간 중간 '잉?' 하게 되는 글귀들이 등장한다.
그리고 그러한 글귀들이 나로 하여금 이 책은 그저 동화가 아닌 소설이나 어른들을 위한 동화라는 생각이 들게 한다.
[톰 소여의 모험] 이나 [허클베리 핀의 모험] 에도 드러나있는 당시 미국의 상황, 혹은 미국이라는 나라가 생성된 과정이 이 책에서도 나타난다.
유럽에서 온 백인들이 신대륙 발견과 정착이라는 목표 아래 죽였던 수많은 미국 원주민들.
또한 동부에서 서부로 이어지는 개척 길과 무식한 개발의 역사를 마크 트웨인은 아무렇지 않게 슬쩍 집어 넣고 있다.
과연 이 부분에서 그의 딸들이 어떠한 반응을 보였을 지 알 수 있는 길은 없지만,
적어도 그가 동화에서조차 사회적 비판의식을 포기하지 못했다는 것 정도는 알 수 있겠다.
하지만 그러기에 앞서, 이 특별한 가두 행렬에는 꼭 짚고 넘어가야 할 기묘한 점이 있었으니 행렬에 참여한 모든 사람이 길바닥에 아주 작고 중요한 무언가를 떨어뜨리기라도 한 것처럼 고개를 숙이고 몸을 구부린 채 걷고 있었다. 환호하는 군중들도 마찬가지로 몸을 구부정하게 웅크린 자세로 서 있었다. 어딜 보나 차렷 자세로 똑바로 서 있는 건 아이들과 동물들뿐이었다.
문제의 발단은 키가 작은 유전자를 갖고 태어나서 열등감이 심한 권력자 왕이었다.
그에게 자신보다 키가 큰 이들은 반역을 하는 것이거나, 아니면 거인이었다.
그래서 자신의 아들인 올레오 마가린 왕자를 거인들이 잡아갔다는 어이없는 주장을 펼치게 된 것이다.
이제 권력에 맞서 싸우느냐, 아니면 굴복하고 살아가느냐의 문제에 직면하게 된다.
이야기 속에서 권력에 맞서는 성인들은 하나도 보이지 않고, 그저 구부정하게 몸을 수그려서 지나가는 가두 행렬이 보일 뿐이다.
아니면 동굴 속에 숨어 있는 거인들.
그들은 심지어 무지몽매하기까지 하다.
턱수염 사내는 말한다.
"우리는 생각하지 않아!"
반대로 똑바로 서서 걷는 아이들이나 말을 할 줄 아는 동물들이 그나마 자신의 생각을 가지고 정신을 차린 채 살아가는 걸로 보인다.
생각해보건대, [피터팬] 과 같은 동화책을 통해 알 수 있는 사실은, 많은 동화에서 주인공은 어린이이고,
어른들은 아예 등장하지 않거나 설사 나온다 한들, 악인으로 나타날 뿐이다.
찰스 슐츠의 만화인 [스누피]도 그런 점에서 다르지 않다.
주인공은 장난꾸러기 비글인 스누피와 그와 함께 사는 찰리 브라운, 그리고 그의 친구들과 스누피가 만나는 친구들이다.
만화를 책이나 영상으로 보다보면 어른들이 나오는 장면에서 결코 그들의 얼굴이 나온 적이 없고, 제대로 된 목소리가 나온 적이 없다.
이 씨앗은 엄청 힘든 상황이 왔을 때에만 심어야 돼요. 심고 나서는 확신을 갖고 결과를 기다려요. 봄에 씨앗을 심고, 동이 틀 때와 밤 12시 정각에 물을 줘요. 항상 씨앗을 돌봐 주고 순수한 마음을 간직하고요. 불평하고 싶어도 참아야 합니다. 꽃이 피면, 그 꽃을 먹어요. 그 꽃이 당신을 배부르게 해 줄 거고, 당신은 두 번 다시 허기를 느끼지 않을 거에요.
읽자마자 잉글랜드의 민화인 [잭과 콩나무] 를 떠올리게 한 장면이다.
소를 팔러 나갔다가 씨앗과 교환한 잭과 닭을 팔러 나갔다가 역시 씨앗과 교환한 조니.
이 둘에게는 소년, 동물, 그리고 마법의 씨앗이라는 공통점이 존재한다.
자신도 힘든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남을 도우려는 이는 복을 받게 된다든가, 동물들과 대화하는 장면에서는
다시금 이 책이 동화라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주인공 조니의 가장 친한 친구는 닭이었고, 그 밖에 소, 당나귀, 스컹크. 산토끼를 만나서 말을 걸기도 하고 대화를 하기도 한다.
심지어 스컹크의 이름은 원작자인 마크 트웨인의 딸 이름과 같은 수지이다.
조니는 아무렇지도 않게 동물들의 일원으로 받아들여진다.
순수함이라든가 세상을 색안경을 끼지 않고 본다는 점에서는 동물과 아이들이 같은가 보다.
책 제목과는 달리 이야기 전체의 주는 왕자 '도난' 사건이 아니다.
그보다는 오히려 글에 전반적으로 흐르는 아이러니가 마크 트웨인 특유의 비판적 시선을 느낄 수 있게 한다.
한 편으로는, 같은 책을 읽고 미취학 아동들은 어떤 반응을 보일까 궁금하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