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섯 번째 계절 부서진 대지 3부작
N. K. 제미신 지음, 박슬라 옮김 / 황금가지 / 201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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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지가 꿈틀거릴 때마다 너는 그 부름을 듣게 될 거다. 신변에 위험이 처할 때마다 본능적으로 주위에서 움직임과 열(熱)을 찾아 흡수하겠지. 네 능력은 힘센 자의 주먹과도 같다. 눈앞에 위험이 닥쳤을 때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해 할 일을 하는 것을 뿐이지만 네가 그렇게 할 때마다 사람들이 죽을 거다.

p. 58

제미신의 사이언스 판타지 소설 [다섯 번째 계절] 에서는 나와 다른 사람들이 인정받지 못하고 배척당하고 있다.

대지의 힘을 느끼고 '흔들' 을 일으키거나 막을 수 있는 힘을 지닌 이들은 다른 사람들에게 있어서 중세 시대의 마녀나 다름없다.

혹은 영화 [엑스맨] 시리즈의 엑스맨들이기도 하다.

단순히 남들이 없는 힘을 가졌기때문에 배척당하는 것은 아니리라 생각한다.

그 힘이 크고 무섭고 때로는 크나큰 재앙을 불러일으킬 수 있기에 그렇다.

그리고 그런 일이 실제로 일어났었기 때문일 것이다.

주인공으로 나오는 세 명의 여인, 에쑨, 다마야, 그리고 시에나이트는 모두 초능력을 지닌 오로진이다.

이 셋은 기묘한 연결고리로 나중에 생각지도 못하게 합치점을 찾게 되는데, 그 이야기는 직접 책을 읽고 알아내길 바란다.

자기도 모르게 능력을 써서 아버지에게 죽임을 당한 아들에 대한 복수와 실종된 딸을 찾으려는 두 가지 목표를 가진 여인 에쑨,

오로진이라는 이유로 부모님에게서 누군가에게로 팔려가는 - 자신의 생각으로는 - 다마야,

그리고 이미 오로진들이 모인 훈련소에서 최고의 기량을 뽐내고 있는 시에나이트.

이 중 누가 가장 행복하고 불행한 지 가늠할 필요는 없다.

그럴 하등의 이유가 없다.

인간은 미지에 것에 대한 두려움을 지닌다.

그래서 당하기 전에 먼저 공격하려 한다.

이를 생존 본능이라 불러야 할 지도 모르겠다.

아무튼 소설 속 오로진들은 일반인들과 조화로운 삶을 사는데 버거움을 느끼게 된다.


다른 잔모래들이 왜 다마야를 괴롭히는지는 알 필요가 없다. 중요한 건 그들이 그녀를 괴롭히고 있다는 것이고, 이건 아이들끼리의 사소하고 무해한 장난이 아니다. 누군지는 몰라도 그들은 그녀를 얼려 버리고 싶어 한다. 갈레나의 말이 맞다. 다마야는 이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최대한 조속히.

다마야는 동맹이 필요하다는 판단을 내린다.

p. 271

만약 이 소설이 드라마나 영화로 각색되어 출시된다면 내가 가장 흥미를 가질 만한 장면이 다름아닌 오로진들의 훈련소인 펄크럼 부분이다.

마치 기숙 학교 같으면서도 영화 [다이버전트]나 [헝거게임] 시리즈에서 볼 법한 훈련소를 떠올리게 한다.

이들은 아이들이 아니라 희귀한, 그러나 한 편으로는 저주받을 능력을 지닌 오로진일 뿐이다.

펄크럼이 제시하는 목적에 따라 움직이는 병기로 재탄생해야 한다.

이 곳으로 새로 들어간 다마야는 당연히 왕따 비슷한 상황을 겪게 된다.

자신의 물건이 없어지는가 하면, 자기도 모르게 술을 왕창 마시게 된다.

하지만 여기에 굴복하고 좌절하면 한낱 '인간' 일 뿐이기에, 오로진인 다마야는 상황을 헤쳐나가려고 한다.

방법은 자신과 비슷한 처지의 동맹 - 그 때는 그렇게 생각했었다. - 을 찾아 자기 편을 만드는 것이다.

이 방법이 성공이든 실패든 오로진으로서 다마야의 판단은 힘 없는 인간의 판단보다는 훨씬 낫다.

언제까지 포기하고 당하고만 살 텐가.

아니면, 백마 탄 영웅이라도 와서 구해줄 때까지 기다릴 텐가.

그와 달리 나는 오로지 홀로 서서 모두를 이기는 어린 여성을 보았다.




날 보살펴 주는 사람은 아무도 없는데 말이죠.

시엔은 이가 부딪치는 소리가 날 정도로 입을 텁 다문다. 그런 말을 하려는 게 아니었는데.

이논이 부드럽게 미소 짓는다.

내가 해 주죠.

p. 473

영화 [매드맥스] 에서나 나올 듯한 황량한 배경.

흔들이 일어나고 정신없이 피해다니는 사람들.

강력한 힘과 이에 따르는 위험성.

숨어 사는 이들과 경계하는 이들.

이 와중에도 로맨스는 있다.

전혀 생각지도 못했는데 나와서 놀라고 말았다.

게다가 이미 시에나이트는 남자가 있었다.

아니, 없다고 해야 맞는 말일까?

펄크럼 내에서 오로진 자손을 번식하도록 짝 지어준 열반지 최고 등급의 나이 많은 알라배스터와 함께 도망 나와 살게 된 그녀이다.

그런데 그녀를 바라봐주는 이논이라는 진짜 사랑이 생기게 된다.

지금껏 딱딱하게 흐르던 문체 - 번역체의 문제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 가 갑자기 부드러워지기 시작한 부분이라 새삼 신기하다.

시에나이트에 대한 이논의 감정만큼이나 소설의 분위기와 어투가 말랑말랑해져서 내가 읽던 그 책이 맞나 싶은 생각이 들기도 한다.

물론 이들의 사랑은 현실의 것처럼 단순하진 않다.

단순히 둘만이 아니라 알라배스터라는 또 다른 남성이 있다.

이렇게 셋이다.



시에나이트는 몸을 돌려 다시 달리기 시작한다. 숨이 턱 끝까지 차오른다. 그녀는 수호자의 보호를 받는 로가가 장벽의 기틀을 공격하는 것을 눈으로 본다기보다 감각으로 보닌다. 곡선을 그리고 있는 메오브 항의 형태에 맞춰 벽이 휘어 있는 부분은 확실히 다른 곳보다 더 취약하다. 로가는 그곳을 노릴 작정이다.

p. 573

소설 속 텍스트가 영상으로 바뀔 때 가장 흥미진진한 장면이지 않을까.

'액션' 이라고 불릴 만한 부분은 군데군데 등장하지만, 가장 본격적으로 나타나는 건 소설 후반부에서이다.

상황은 주인공에게 큰 타격을 입히고 독자에겐 손에 땀을 쥐게 하는 긴장을 안기고 다소 짜증나게 만든 후 끝나버린다.

읽으려면 아직 몇 개월은 더 기다려야 할 후속편을 기다리게 만드는 것이리라.



그냥 판타지 소설이 아니라 사이언스 판타지라서 그런가 내게는 많이 무거웠다.

600페이지에 다다르는 분량이 문제가 아니라 분위기와 어투가 내내 그러했다.

처음 몇 장만 제외하고는 빨리 읽혔으니까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휴고상을 수상한 데에는 내가 모르는 이유가 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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