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라넬의 사이코패스적인 기질은 선천적으로 타고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물론 후천적으로 아버지와 고아원 생활도 영향을 끼쳤겠지만, 그녀의 유전자 속 무언가가 결핍되거나 과잉되었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다.
남들이 흔하게 느끼는 순전한 기쁨, 애완견이나 가족, 연인, 친구에 대한 사랑, 창피함 등을 오롯이 느끼지못하고,
대신 자신의 뜻이 이루어지지 않았을 때의 굴욕감, 성행위로 인해 상대를 정복했다는 성취감,
권력욕, 싸움이나 살인을 통해 상대방을 제압했을 때의 승리감 등을 느낀다.
그냥 싸이코패스나 사회부적응자, 아니면 정신병원의 장기 입원 환자로 살 수 있었던 삶은 콘스탄틴이라는 이와의 만남으로 바뀌게 된다.
그의 지시, 정확히 말하면 지령에 따라 빌라넬은 주어진 암호를 풀어 목표물을 언제나 효과적으로 제거한다.
그녀를 살인병기로 만들어준 혹독한 - 그녀 자신이 혹독하다고 생각했는지는 알 수 없지만 - 훈련은 모든 살인을 성공으로 이끌어준다.
여기에 빌라넬을 매력적으로 만들어주는 헤어, 의상, 악세사리와 말투, 그리고 고급 사교계의 정보 등을 통하여
모두가 원하는 여성으로 거듭 태어난다.
그녀는 모든 상황을 자신이 원하는대로 움직이기위하여 연기를 할 수 있다.
친구 비슷한 여성에게 '친구답게' 행동할 줄 알며, 성적 욕구를 해소하기위한 놀잇감을 위해 '사랑에 빠진 척' 연기 할 수 있다.
남자든 여자든 가리지않고 자신의 정복욕 아래 두어 결국에는 성취하고 만다.
심리치료사, 길거리에서 만난 자, 너나 할 거 없이 빌라넬의 지배 속으로 들어간다.
그녀의 성생활과 전문적인(?) 연쇄살인범이 되기 위한 훈련 과정을 보면서 영화 [레드 스패로] 가 떠올랐다.
주인공 둘 다 외모가 매력적인 여성으로 한 명은 우크라이나와 러시아, 다른 한 명은 러시아를 성장 배경으로 지니고 있으며,
자신의 성적 매력과 트레이닝을 바탕으로 킬러로 변신한다.
물론 빌라넬은 사이코패스이고 레드 스패로는 발레리나에서 스파이가 되었다는 차이가 있긴 하지만, 어쨌든 분위기가 비슷하다.
새러는 아주 살짝 안나 이바노브나 레오노바를 떠올리게 한다. 안나는 산업지구 중등학교 교사로 아버지를 빼고 빌라넬이 가짜가 아니라 진짜로 애착을 느낀 유일한 성인이다.
그런 굴욕 중 빌라넬이 지금까지도 가장 뼈아프게 느끼는 것은 프랑스어 교사인 안나 이바노브나 레오노바에게 거절당한 것이다.
빌라넬이 인생에서 쓰라린 실패의 경험을 해보지 못한 건 아니다.
고아원도 감옥의 창살도 나날이 이어지는 훈련도 그녀를 무너뜨리진 못했지만, 단 한 번 고통 비스무리한 감정을 느끼게 한 여성이 있다.
학창 시절 프랑스어 교사였던 안나 이바노브나 레오노바는 빌라넬의 언어적 천재성을 알고
그녀와 함께 소설을 읽고 대화를 하면서 많은 시간을 함께 보냈다.
이런 안나에게 빌라넬은 남다른 애착을 느껴서 그녀를 오감으로 느껴보고 싶다는 성적인 열망을 품게 되었다.
그러나 거절당하면서 좌절하였고 이는 지금까지도 여전히 떠올리는 기억이다.
빌라넬이 안나에게 느낀 감정은 어떤 것이었을까?
아버지에게 느꼈던 것과 같은 애증?
정복하고 정복당하고 싶은 성적인 매력?
그것도 아니면 사랑?
정신은 사악하고 현대 사회를 살아가는 다른 사람들과 어우러지지 않을지 몰라도, 그녀의 외모만큼은 부럽다.
누구든 무너뜨릴 수 있는 눈빛과 외모가 부럽다.
더불어 여러가지 언어로 꿈을 꾸고 생각하며 행동할 수 있는 언어적 천재성도 닮고 싶다.
루크 제닝스의 스릴러소설 [킬링 이브] 에서는 킬러 빌라넬을 중심으로 이야기가 펼쳐지고, 실제로 할애하는 양도 많다.
반면, 영국정보부 요원인 이브의 이야기는 상대적으로 잘 드러나지 않으며 묻힌다는 생각도 들게 된다.
그런데 골든글로브 시상식에서 여우주연상을 받은 산드라 오의 역할이 바로 이브이다.
그만큼 BBC 드라마에서는 중요한 부분을 차지한다는 것이기에 꼭 보고 싶다.
소설로 익힌 배경지식을 바탕으로 시각적 즐거움도 경험하고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