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금 당나귀 현대지성 클래식 22
루키우스 아풀레이우스 지음, 장 드 보쉐르 그림, 송병선 옮김 / 현대지성 / 201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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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그 전에 이 모든 것을 보고 있는 태양을 두고 맹세하는데, 내가 하는 말은 틀림없으며 검증된 것이오.
p. 13

고전소설이자 인류 최초의 장편소설인 [황금당나귀] 를 한 마디로 보여주는 구절이라고 할 수 있겠다.
세계 최초의 액자소설이자, 그리스로마신화가 녹아든 라틴어 소설인 [황금당나귀] 는
"누군가가 이랬다더라." 라는 말을 전해 듣고 1인칭 화자가 독자에게 전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져 있다.
문자나 인쇄술이 발달하기 전 이야기는 입에서 입으로, 즉 구전으로 전파되곤 했다.
그 과정에서 과감이 들어가서 일부는 새롭게 각색되고 또 일부는 허위로 바뀌거나 아예 다른 이야기로 변모하기도 했다.

"내가 하는 말은 틀림없으며 검증된 것이오."
누가 어떻게 어떠한 방식으로 검증했다는 말인지 그 자리에 있던 자들도, 그리고 읽고 있는 독자들도 확인할 수 없다.
그냥 그러려니 하고, 신화와 인간의 속세가 뒤섞인 스펙타클한 이야기를 들을 뿐이다.
고전소설이자 장편소설인 [황금당나귀] 만의 아이덴티티를 확인할 수 있는 부분이다.

누군가가 하는 말을 100% 신뢰할 수 있을까?
그럴 수 없다고 자신있게 말 할 수 있다.
심지어 나의 가족이, 아니 내 자신이 하는 말조차도, 더군다나 그게 기억에 의존한 것이라면 믿을 수가 없다.
기억에는 언제나 왜곡이라는 짓궃은 존재가 개입될 수 있기에 마냥 믿을 수만은 없다.

이 구절을 읽으면서 과거부터 현재까지 우리나라 전반에 깔려 있는 '가짜 뉴스' 가 떠올랐다.
지금은 인터넷, 유튜브, 카카오톡(특정 나이대를 대상으로 한) 을 중심으로 퍼지는 가짜 뉴스에서는
"내 말이 진리고 진짜다." 라든가, "다른 건 다 필요없고 우리 언론사에서 내보내는 기사만 보고 믿어라." 식의 메세지가 나오는데, 
많은 대중이 진위를 파악하지 못하고 만다

그러자 그녀는 나를 마음 깊이 동정하면서 공짜로 푸짐한 저녁 식사를 대접했어. 그러고 나서 그녀는 열정의 노예가 되어 나를 자기 침대로 끌고 갔네. p. 17


주인은 정직하고 순결한 자기 아내를 다른 방에 가두어 두고, 그 청년과 함께 잠자리에 들어 타락한 첫날밤을 보내며 한껏 즐겼다.
p. 290


너는 아마도 이것을 근친상간이라고 말할지도 몰라.
p. 312



만일 그녀가 이 여자와 같다면, 그녀는 자기의 애정을 황소에게 모두 바쳤을 테고, 그 결과 미노타우로스를 낳았을 것이 틀림없었다.
p. 331




그리스로마신화를 읽다보면 성적인 내용이 주를 이룬다.
생각해보면 고귀해야 할 신과 그들이 등장하는 신화에서
속세의 인간들의 것으로 여겨지는 방탕함과 음란함이 등장한다는 건 아이러니라고 할 수 있다.
결국 신화조차도 인간이 믿고 만들어 낸 유물에 불과하기때문에 사람들의 사상이 들어갈 수 밖에 없다.

고전소설 [황금당나귀]의 저자가 살던 당시의 상황과 그가 알고 있던 그리스로마신화가 접목되어 
여성, 육체적 아름다움을 위주로 육체적 쾌락이 소설 속에 고스란히 드러난다.
간음, 불륜, 동성애, 근친상간, 그리고 심지어 수간까지 역사 전반에 걸쳐서 대개의 문화권에서 금기시하는 일들이
이 소설이 쓰여질 당시에도 이슈화 되었을 테지만, 동시에 사회 전반에 알게 모르게 퍼져 있었다고 추측 할 수도 있겠다.

놀라운 건 성의 위계 관계에서는 남녀를 불문하지 않는다는 건데, 
오늘날의 미투 운동이 대개는 여성들이 피해자로 나타나는 것에 비하여, 
장편소설 [황금당나귀] 에서는 마녀라고 불리는 안주인, 계모, 여인숙 주인 등은 모두 여성이며, 이들은 가해자의 입장에 있다.
(물론, 남성 쪽에서도 관계를 원하는 경우가 있기는 하다.)
이 중, 여인숙 주인이 남성에게 관계를 강요하는 장면은, 
지금으로부터 몇 년 전 스페인 에어비앤비 숙소에서 투숙객으로 온 청년을 감금하고 성폭행한 
숙소 주인(엄밀히 말하면 그/그녀는 성전환자였다.)을 떠올리게 한다. 




저기서 씨앗을 가려내고, 곡식 종류별로 분리해 놓도록 해.
p. 180



개미들은 자신들의 능력을 자랑하듯이 곡식더미에서 낱알을 하나씩 분리했다.
p. 181



독수리는 쿠피도가 카타미투스를 하늘로 데려가도록 도와준 것을 떠올리면서, 피로에 지친 쿠피도의 아내를 도와주어 자기가 입었던 은혜에 보답하고 싶었다.
p. 184




이솝 우화를 읽다보면 소소한 생활의 지혜를 얻게 된다.
고전소설 [황금당나귀] 를 읽다보면 우리가 흔히 아는 것들의 기원을 생각해보게 된다.
그렇다고해서 무조건 이 소설을 바탕으로 그것들이 왔다고 말 할 수도 없고, 애초에 이 소설이 기원이 아닐 수도 있지만,
그래도 과거와 현재의 공통점을 발견하는 기쁨을 무시할 순 없다.

인용한 위의 세 구절을 보다보면 떠오르는 이야기 두 개가 있을 것이다.
하나는 서양의 [신데렐라] 이고, 다른 하나는 동양이자 우리나라의 [콩쥐팥쥐] 이다.
마녀나 계모, 아니면 강력한 마법의 힘을 가진 신으로부터 
선한 주인공 - [황금당나귀] 의 경우에는 프쉬케에 해당한다. - 이 어려움을 겪고 있을 때 나타나는 건 다름아닌 동물이다.
가끔 탑(tower)과 같은 무생물이 말을 하며 도와주기도 한다.
[신데렐라] 에서는 쥐, 새 등이 그랬으며, [콩쥐팥쥐] 에서는 두꺼비, 참새, 황소 등이 그러했다.
그림형제 원작의 소설 [The Shoe Maker and the Elves] 에서 밤마다 구두장이를 도와주는 건 요정들이지만, 
이들 역시 사람은 아니기에 다른 이야기들에서 도움을 주는 역할로 나타나는 동물과 의미하는 바가 같다고 할 수 있다.




낮에 꾸는 꿈은 거짓이고, 밤에 꾸는 꿈은 대부분 반대의 사건을 예고하는 거야.
p. 130



남의 말을 옮기기 좋아하는 이 수다쟁이 새는 이런 말들을 베누스의 귀에 속삭이며 아들의 명성이 추락하고 있다고 평해 주었다.
p. 166




읽자마자 꽤나 친숙한 내용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는가?
우리가 사는 이 세상에서도 "꿈은 반대야." 라는 말을 종종 하며 위안을 삼는다.
내가 죽는 꿈을 꾸면 좋은 일이 생길 징조이니 반대로 좋게 해석하면 된다고 말한다.
라틴어를 사용했던 그 시절의 사람들도 꿈에 관해선 지금과 별반 다를 게 없었나보다.

한 편, ' 이 수다쟁이 새' 라는 부분에서 가장 먼저 뇌리를 스치는 단어는 사회적 연계망(SNS)으로 유명한 트위터twitter이다.
'Tweet' 이라는 단어는 '(새가) 짹짹 하고 우는 소리' 를 뜻하고, 
따라서 트위터에서는 새가 지저귀면서 서로 대화하듯 사람들이 짧은 글로 자신의 의사를 표현하고 댓글로 소통을 한다.

영미권 영화나 드라마를 보면 "A little bird told me." 라는 대사를 들을 수 있다.
우리말로 해석하자면 "어디서 들었어.", "누가 그러더라." 라는 뜻으로, 
누가 말했는지 알 수 없거나 중요하지 않지만, 아무튼 그런 소문을 들었다는 걸 의미한다.
옛 사람들도 새가 지저귀는 소리를 들으면 여기 저기로 말이 퍼진다고 파악했나보다.
우리 속담에도 '낮말은 새가 듣고 밤말은 쥐가 듣는다.' 가 있지 않은가.






우리가 세상을 조금 더 지혜롭게 살아갈 수 있는 방안 중 가장 쉽고 간편하면서 돈이 적게 드는 게 독서라고 생각한다.
현대소설도 물론 좋지만, 선인의 현안을 알 수 있는 고전소설을 가끔씩 읽는 것도 좋을 것이다.
그래서 장편소설 [황금당나귀 The Golden Ass] 를 추천하는 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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