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의 동물원
진 필립스 지음, 강동혁 옮김 / 문학동네 / 2018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통로가 구부러진다. 그녀는 긴팔원숭이와 타마린원숭이를 지난다. 바닥에는 탄산음료를 엎지른 것처럼 짙게 젖은 부분이 있다. 이어서 바로 여우원숭이가 나타난다.

p. 190




 배경은 동물원이지만 행동의 주체는 동물이 아니라 사람이다.
동물은 어머니인 조앤과 아들인 링컨의 시선에 따라서만 비춰진다.
동물들은 말이 없다. 움직임이 없다. 그들은 이제 배경의 하나가 되어 있다.
코끼리, 원숭이, 호저, 거북이...

동물원은 인간이 만들어 낸 잔인한 공간이다.
야생에서 자유롭게 살아가던 동물들을 좁은 우리에 가둬 놓은 다음 인간의 구미에 맞게 꾸며 구경하고 감상한다.
단순히 감상의 목적일 수도 있겠지만, 인간의 안전에 위협을 가할 까봐 잡아두는 것도 있다.
가끔 동물원에 가보면 커다란 북극곰이 제자리에서 앞뒤로 왔다갔다하는 행동을 반복하는 걸 본 적이 있다.
알려진 바로는 정신 이상 증세, 심하면 치매 증상이라고 한다.
자신의 덩치와 행동 반경에 전혀 맞지 않는 기후와 답답한 우리에서 할 수 있는 게 없을 때 자포자기한 동물의 모습이다.

동물원은 더 이상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들리는 밝은 공간이 아니다.
이러한 이중적인 면 때문에 범인들이 이 곳을 범죄의 장소로 고른 게 아닐까?
자신들과 다를 바 없는 생물을 가둔 채 하하호호 웃으며 가식적인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 사람들에게 질린 게 아닐까?



그 잠깐의 고요한 순간, 아기의 비명이 들려온다. 처음에는 원숭이라고 생각하지만 이어진 비명에는 중간중간 꿀꺽 삼키는 호흡이 있다. 그녀는 동물소리가 아니라는 걸 안다. 꾸르륵대는 맹렬한 울음소리가 가까이에 있다. 너무 가깝다.

p. 205



문학동네에서 나온 진 필립스의 스릴러소설 [밤의 동물원]은 청각적 심상에 매우 민감하다.
시끄럽고 왁자지껄하다는 말이 아니다.
오히려 적막만이 가득하고, 아수라장이 된 소음보다 더 긴장감을 유발한다.
독자가 경험하는 건 조앤이 보고 듣는 장면으로, 그녀와 아들의 말소리 숨소리 하나 하나가 귓가에 느껴지는 듯하다.

한 때 영어회화학원을 다닌 적이 있다.
당시 원어민 강사가 가장 무서운 소리가 뭔 지 의견을 적어보라 하기에 "footsteps behind you" 라고 적었다.
아무런 소리가 들리지 않는 적막함, 귀를 찢는 시끄러움, 이 둘보다 더 두렵게 만드는 건 다름아닌 적막 속에서 들리는 무언가이다.

만약 외국소설 추천하는 [밤의 동물원] 이 영화로 만들어진다면 극도의 긴장감으로 이루어진 서스펜스 영화가 될 것이다.
영화관의 스크린은 어둡고 주인공이 속삭이는 몇 마디 외에는 별다른 음향효과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관람객들은 잠들 수 없다.
오히려 씹고 있던 팝콘이나 마시던 콜라마저도 내려놓고 눈 앞에 펼쳐진 화면에만 집중할 것이다.



그녀는 액션 피규어들의 난장판인 핸드백 밑바닥을 손가락으로 훑는다. 열쇠 몇 개와 펜 몇 자루, 손톱 밑을 파고드는 뭔가 찐득찐득한 것과 작고 단단한 팔다리며 투구들이 느껴진다. 그녀는 그중 하나를 꺼낸다. 아니, 원더우먼이다. 그녀는 원더우먼을 떨어뜨리고 다시 뒤지기 시작한다.

p. 124




링컨은 소설 속에서 긴장감을 한층 올리는 역할을 하는 캐릭터이다.
갑자기 볼 일을 보고 싶고 배가 고픈데 자신이 먹고 싶은 음식은 따로 있는가 하면,
조앤에게 끊임없이 질문하며 자신이 처한 상황을 이해하려고 애쓴다.
이에 조앤은 아이를 진정시키고 조용하게 그리고 안전하게 숨어있기위하여 아이가 피규어를 갖고 놀도록 한다.
링컨은 프레데터 피규어를 가지고 놀면서 잠시나마 주변에 대해 잊고 놀이에 집중한다.
공포와 범죄로 휩싸인 동물원의 분위기와는 정반대인 아이의 놀이, 이 둘은 매우 역설적으로 보인다.
그러나 절대로 이상하거나 특이한 장면은 아니고 아이라서 가능하고 자연스러운 행동이라고 여겨진다.
어른이 아니라서 침착할 수도 없고 머릿 속으로 이성적인 판단을 내릴 수도 없으며 노련한 계획으로 최선의 시나리오를 짤 수도 없다.
아이는 그저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할 뿐이다.



"여기 누가 있어." 다른 목소리가 말한다."
"숨어 있나보지?"

p. 139



공포영화나 스릴러 액션영화를 보면 빠지지않고 늘 등장하는 장면이다.
숨어있는 주인공, 그러다가 우연한 실수로 인하여 그가 있는 것을 알게 되고 주변을 배회하며 찾는 범인.
관객들은 마음 속으로 실수를 한 주인공을 질타한다.
나 역시도 소설 [밤의 동물원] 속 조앤을 보며 답답했다.
그렇게 아들을 챙기는 사람이! 왜! 그 따위 실수를!!

소설의 초반부에는 주로 희생자에 속하는 조앤과 링컨을 보여주다가, 중반 이후로는 범인들이 등장하기 시작한다.
그들의 대화를 보면 마치 미국에서 종종 등장하는 뉴스 속 범인들을 보는 듯하다.
사실, 너무나도 흡사해서 소설이라기보다는 특정 사건 하나를 모델로 삼아서 글로 옮긴 다큐나 에세이 같기도 하다.
그러나 그들이 한 대화나 행동은 스포가 될 소지가 많기에 이쯤에서 접어둔다.



매우 사실적인 분위기와 플롯의 범죄소설을 찾는 분들, 습도 높은 여름 날씨에 가볍게 읽을 수 있는 킬링소설 찾는 분들은
2시간만에 독파할 수 있는 [밤의 동물원] 읽어보길~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