곰탕 1 - 미래에서 온 살인자, 김영탁 장편소설
김영탁 지음 / arte(아르테) / 2018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죽여도 전염병은 사라지지 않았기에 사람들은 모든 가축을 죽여 멸종시켰다. 그리고 새로이 먹을 동물을 만들어냈다. 기이한 생김새였지만, 사람들은 배를 채울 수 있는 것에 만족했다. 쥐와 닮았다.

p. 10-11




역겨운 모습의 무언가를 만든다는 설정이 영화 [설국열차] 를 연상시키기도 하고,
조류독감이 등장한다는 것이 우리가 흔히 보는 TV 뉴스를 떠올리게 하기도 한다.
미래의 부산을, 그리고 과거 - 하지만 지금 우리에게는 현재 - 의 부산을 그리는 이 미스터리 국내소설은
신선한 소재와 돋보이는 스토리 구성으로 만화가 강풀, 영화감독 이준익과 소설가 장강명으로부터
추천사를 받은 SF소설이기도 하다.

알고 보니, 작가는 [헬로우 고스트] 와 [슬로우 비디오] 를 만든 영화감독 김영탁이다.
CF 감독이 만든 가수의 뮤직비디오가 흥미진진한 만큼이나 영화감독이 쓴 소설은
새로운 소재와 다양한 캐릭터의 등장으로 독자의 시선을 사로잡기에 충분하다.
그래서 이미 카카오페이지에서 50만 독자가 열광하여 인기가 입증된 추천소설이다.

타임슬립 소설이라고 하면 너무 식상한 소재라고 질색하는 이도 있을 테고, 정반대로 매니아층도 있을 것이다.
나는 그 중간 정도의 독자로서, 내용이 어떨지 궁근하긴한데 살짝 지겨운 정도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나와 같은 사람들조차도 미스터리 SF소설 [곰탕_미래에서 온 살인자] 를 읽으면 생각이 달라질 수 있다.
마치 영화의 장면 장면을 보는 듯한 박진감 넘치는 전개는 뒷장을 알고 싶게 하는 궁금증 유발을 하기에 충분하다.


보통 키의 여학생이 책상에 앉아 고개를 숙이고 있을 경우, 입과 책상과의 거리는 25센티미터 정도다. 침은 15센티미터를 넘기면 급속도로 길어진다. 그래서 15센티미터를 유지하는 게 중요하다. 처음 두 번은 20센티미터를 넘기 직전 호로록, 회수했다. 하지만 결국 침은 20센티미터를 순식간에 넘기고 책상과 연결됐다.

p. 75




타임슬립 미스터리 소설인 [곰탕] 을 읽다보면 굳이 없어도 될 것 같은데 지나치게 디테일을 묘사한 부분이 눈에 들어오곤 한다.
그 중 하나가 수업 중 잠에 취해 침을 흘리는 여학생에 관한 묘사인데,
독자가 진지하게 몰입해서 읽고 있다가 갑자기 "엥?" 하는 순간이다.
생각해보면 저자인 김영탁 감독은 감동과 더불어 유머가 있는 영화를 만들기도 했다.
그 점을 고려해본다면 SF소설이라고 해서 코믹한 부분을 넣지 말라는 법은 없을 듯하다.

그래도 센티미터까지 설정하는 건 좀 과한가?
만약 이 부분이 영화화된다면 어떻게 될까??
여학생을 찍은 영상에 cm를 그래픽으로 입힐 것인가?
아니면 주인공 시점에서 나레이션이라도 깔 것인가?
누군가 이런 생각을 한다는 사실 자체도 놀라운데, 이 생각을 끄집어내어 글로 표현했다는 건 두 배로 놀랍다.



순희는 지금 진정한 사랑을 만나고 있는 것이다. 순희는 행복했다. 유치장에서의 며칠이 감사했다. 그 시간이 아니었으면 이 놀라운 사실을 알 수 없었을 것이다. 어떻게 알았겠나. 평생을 생각해도 몰랐을 거다.

p. 97




학교에서 친구들과 일진 놀이를 하며 늘 말썽만 일으키는 오토바이 폭주족 순희.
자신의 이름과는 정반대되는 행동으로 부모의 속을 썩이는 이 아이는 단순 과격하며 질풍노도의 시기를 겪는 청소년이다.
이 아이에게도 조용한 성찰의 순간이 필요했던 것일까.
유치장에 갇힌 채 복잡한 심경의 변화를 겪거나 아니면 짜증만 부릴 줄 알았던 순희는 오히려 참된 사랑의 의미를 깨닫는다.
참으로 아이러니하지 않은가.
사랑이 가장 어울리지 않을 법한 곳에서 사랑을 찾다니.
물론 처음부터 그럴려고 그런 건 아니고 유치장에 갇혀 할 게 없는 상태에서
자신을 딴 세계로 보낼 수 있는 이런 저런 상상을 해보다가 역시나 여자 생각이 제일 낫다는 걸 알게 된다.
자신과 사귄 여자, 그 중에서 관계를 가진 여자와 그렇지 않은 여자 등등을 상상하다가 뜻밖의 발견을 한다.
꽤나 오랜 기간 - 순희의 기준에서 - 사귀었으면서도 여지껏 관계를 갖지 않은 한 여성이 있고,
그 여성이 바로 현재 그의 여자친구이다.
유레카?!
그렇다면 그는 아랫도리의 참견 없이도 여자친구를 떠올릴 수 있다는 이야기이고, 이거야말로 진정한 사람인 셈이다.
좀 전에 언급한 여학생의 침과 더불어서 이 장면 또한 김영탁식 유머를 보여주는 부분이 아닐까 싶다.



다 씻은 내장들은 두어 시간 물에 담가뒀다. 양머리가 아니고 양지머리였다. 아롱사태처럼 소의 살이었다. 소의 목에서 가슴에 이르는, 오래 끓여야 고소한 맛이 나는 살덩이였다. 아롱사태와 양지머리, 살들도 물에 담가서 핏물을 뺐는데, 물을 수시로 갈아줘야 했다. 이것만 한나절을 했다.

p. 136



모든 것은 '곰탕' 으로 인해 시작된다.
이 미스터리 소설 속 등장인물들이 다 곰탕에 연루되어 있다는 건 아니고, 어쨌든 곰탕이 작은 나비의 날갯짓에 해당한다.
곰탕은 내 기억 속에 지겹고 끈질긴 음식으로 뇌리에 박혀 있다.
나로 말할 것 같으면, 어쩌다 할머니께서 곰탕이라도 끓이는 날에는 거의 한 달을 아침, 저녁식사 할 거 없이 그것만 먹어야 했다.
물론 맛이 없진 않았다.
뽀오얀 국물에 소금이나 후추로 간을 하면 거기에 밥만 말아먹어도 맛있었다.
하지만 아무리 맛있는 것도 일주일이면 질린다.
쳐다보기도 싫은 그것을 먹을 게 없어서 어쩔 수 없이 먹곤 했다.
우리나라 사람이라면 대개는 공감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렇게 친근하면서도 동시에 중요하게 여겨지지 않는 소재인 곰탕으로 SF소설이 탄생하다니, 대단하지 않은가.
그렇다 하더라도 그 와중에 곰탕을 끓이는 장면을 아주 소상히 나열하고 있다니,
순간 요리 만화나 요리 소설이라도 보고 있는 줄 알았다.
어떤 의미에서 대단하다.



전입신고를 한 사람들의 모든 부모가 병원에 있는 건 물론 아니었다. 하지만, 병원에 있는 노인들의 자식들은 모두 전입신고서를 작성한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이사 온 사람들이었다.

p. 201



청소년만 나오는 하이틴 소설은 물론 아니고 명색이 미스터리 소설이기에 형사가 등장한다.
형사들은 각기 다른 자신만의 방식으로 사건의 실마리를 풀어나가는데,
형사라 그런지 사소한 거 하나부터 놓치지 않고 포기할 줄 모르는 근성이 있으며,
두꺼운 자료들을 하나 하나 살펴보면서 지치지 않는다.
소설 속 양창근 형사를 보면서 어떤 배우가 이 역할을 맡으면 좋을까 생각하게 된다.
인천에서 부산으로 전근 온 형사, 오자마자 큰 사건을 맡게 되고 형사들 사이에서는 은근히 아웃사이더라는 인상을 주는 사람.
그는 홀로 사건을 파헤치다가 점점 깊은 그늘 속에 들어가게 된다.
이희준, 김민재, 김상경, 박희순, 강신일...
많은 배우들의 이름과 얼굴이 머릿 속에 맴돈다.






책 한권 자체로 영화 시나리오를 써도 될 정도이다.
그래서 2권을 하루 빨리 읽고 싶다.
미스터리 소설 좋아하는 분들, 앞을 예상할 수 없는 긴장감 넘치는 스릴러 소설 좋아하는 분들,
그리고 한국식 SF 액션영화를 좋아하는 분들이라면 [곰탕] 을 읽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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