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는 것을 이야기하는 것에 대하여 한번 생각해 볼 필요가 있었던 것 같다. 과연 아는 척을 하는 것과 아는 것을 말하는 것에 대하여 우리는 구분을 하고 있었던 것이 였을까? 어떠한 의문에 대하여 질문을 던졌을 때 그것을 말로 직접하는 사람이 우리 주위에 얼마나 있을까? 그 많은 것들을 실현 시켜줄 하브루타에 대하여 장점과 단점을 말하면 자신의 공부하고 있는 분야의 지식이 어느 한 부분에 멈춰 있는지 자각 할수 있다는 것 이고 조금더 나아가 사회화라는 것에 장점이 있고 단점은 그 분야의 사람이 듣다보면 어떠한 부분에서 같은 의견을 내는 사람과 의견차이를 가지는 사람들이 있을 것이고 결국 그들만의 수업이 될수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것들에 대하여 생각해보지만 현재의 교육방식 보다는 낫다는 생각이 많이 들었다. 하브루타의 본질은 여기서 시작 되었다. 모든 사람은 완벽할수 없으며 그 부족한 부분을 서로 서로 매꿔 나가면서 발전하는 것이 사람이다.에서 말이다. 즉 우리가 하고 있는 것은 부족함을 숨기며 어떠한 빈틈도 보이지 않는 교육 방식이라고 할수 있다. 여기의 문제점은 딱 하브루타의 어떠한 특징과 정반대다. 예를 들어 a라는 것을 외우라고 한다. 우리는 외우기만 하지만 그 교육 방식 그것에 대하여 이해하고 있는지 자각하지 못한다 하브루타는 a라는 것을 외우고 거기에 더나아가 질문을 한다. 이 a가 왜 a일까?그리고 더나아가 b라는 것은 또 무엇일까? 라는 질문을 서로하게 하게 되면서 점점더 많은 부분의 영역의 지식을 습득할수 있을 것이다. 즉 이러한 순환이 진정한 교육이라고 생각한다. 닫힌 결말이 아닌 열린 결말인게 학문이고 그것에 대하여 하나의 생각만을 생각하는 것은 많은 문제를 가져 올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것을 극단적으로 활용하는 사람들이 생겨나면 또 문제가 하나 생각이 난다. 즉 a라는 질문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에 대한 남이 원하는 말을 하는 것이다.그것이 생겨날 원인은 아마 학부모에 있다고도 할수 있다. 학구열이 높다고 성적이 높다해서 인생의 다가 아니라고 하는 어른들은 하지만 그것이 인생의 절반은 차지 한다는 말은 해주지 않는다. 즉 하브루타식의 수업이 또 다른 주입식 교육이 될수 있다는 생각이 들어 걱정이 되었다 어느 한 쪽에 몰리지 않고 대화하는 것은 어찌보면 하브루타 말고 우리한테도 도입해야 될 시급한 문제라고 생각한다. 단절된 대화는 오해를 사고 그것에 더하여 상처를 주기 까지 한다. 하지만 그것을 옛날에 해왔던 것이라는 이유로 모든 것을 통제하고 말을 끊는 것은 정말 잘못된 사회가 가진 고질적인 문제라고 생각한다. 아기들한테 도입가능성이 많은 이 하브루타 수업의 의미를 정말로 이해하고 어떻게 해야하는지에 대하여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아 지면 많아 질수록 우리나라 사회의 질도 올라가지 않을까?라는 희망을 가지고 이책을 덮었던 것 같다. 그리고 하브루타와 비슷하지만 자신의 감정을 숨기는 연습도 중요하지만 표현하는 방식도 연습하는 것을 서로 도와주는 것에 대하여 도 생각해보게 되었다. 하브루타에서도 그러한 것들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지식의 위주 일뿐 그상대방의 감정에 대하여 이해하면 할수록 그것에 대한 조금더 많은 발전을 이룰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하며 이글을 마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