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얼굴의 무궁화 - 국가상징 바로잡기
강효백 지음, 김원웅 감수 / 이담북스 / 2020년 6월
평점 :
절판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사진> 무궁화(경기도)

 

1. 무궁화란?

 

무궁화는 아욱과 무궁화속의 낙엽 활엽 관목이다. 중국 남부 지방이 원산지로 온난한 기후를 선호하지만 보다 추운 기후의 지대에서도 적응을 잘하여 일찍이 유럽을 비롯하여 세계적으로 전파되었다. 식물분류학의 태두 칼 폰 린네(Carl von Linne, 1707~1778)도 유럽에서 무궁화를 보고 Hibiscus syriacus L.(1753)라는 학명을 부여하기도 하였다.

 

우리나라에서 무궁화는 중국에서 전래되어 원예종으로 재배하는 식물이다. 이는 일본도 마찬가지이었다.   

 

2. 무궁화에 대한 약사(略史)

 

(1) 잦은 이민족(異民族)의 침입을 받았기 때문에 옛 문헌이 남아 있는 경우가 드물고 기타 여러 원인으로 식물에 대한 기록이 충실하지 않아 무궁화가 한반도에 전래된 정확한 시기는 알 수 없다. 다만  중국명 槿花(근화)를 기록하면서 중국에서는 사용하지 않는 차자(借字) 표기인 '無窮'(무궁) 및 '無宮'(무궁)이라는 표현이 나타난 『동국이상국집』(1241)이 저술되기 이전에 이미 전래되어 토착화가 진행된 것으로 추정된다.

 

(2) 무궁화는 유학의 고전인 『시경(詩經)』에 '舜英'(순영)이라는 이름으로 기록된 식물이었고, 중국에서 『증류본초』(1082) 등에 약용식물로도 기록되었기 때문에 그러한 영향을 받아 고려 말 그리고 조선 초기의 문헌에서는 주로 문인들의 한시에서 그리고 『향약집성방』(1433) 등의 한의서에서 약재식물로 기록되었다. 이 시기에는 『향약집성방』(1433)에서 현재 사용하는 한글명칭 '무궁화나무'를 뜻하는 '無窮花木'(무궁화목)이 기록되어 고유 표현이 형성된 것이 뚜렷하게 나타난다.  조선 초기에 저술된『사성통해』(1517)에서 최초로 한글명칭으로 '무궁화'가 나타나고, 어린이용 한자 학습서인『훈몽자회』(1527)의 '花品'(화품) 부분에도 한글로 '무궁화'가 기록되어 주변에서 어렵지 않게 무궁화를 볼 수 있었다는 것을 추측케 하고 있다.

 

(3) 조선 중후기는 격량의 시대이었다. 대외적으로는 중국에서 명나라와 청나라의 교체가 있었고, 대내적으로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을 겪었다. 격량의 시기에 우리 자신을 새로이 인식하려는 움직임이 일어났고, 그 과정에서 중국 고대의 신화소설격인『山海經』(산해경)의 해외동경 부분에 있는 '君子之國'(군자지국)을 우리나라로 이해하려는 인식이 대두되었다. 중국 동진의 곽박(郭璞, 276 ~324)이 저술한 『山海經注』(산해경주)에서 해외동경 부분에 기록된 '薰華草'(훈화초)를 '菫'(근)으로 해석한 영향을 받아 이를 '槿花'(근화=무궁화)로 이해하는 경향이 이수광(1563~1628)이 저술한 『지봉유설』(1614)을 필두로 하여『부상록』과『오주연문장전산고』로 이어졌다. 『동사강목』와『해동역사』와 같은 역사서에서도 무궁화가 비슷한 취지로 규명되고 기록되었다. 곽박이 저술한 『玄中記』(현중기)를  『古今記』(고금기)로 이해하여, 그곳에 기록된 "君子之國 地方千里 多木槿花"(군자지국 지방천리 다목근화)라는 표현이 여러 문헌에서 회자되었다.  한편 농업과 화훼에 관한 내용 등을 전문적으로 다룬『산림경제』(1715)와『임원경제지』(1842)에는 무궁화에 대한 식재와 재배법이 소개되기도 했으며『화암수록』(18세기말)에는 원예용 식물로 무궁화를 기록하기도 했다. 사물의 명칭을 규명하는 물명류 문헌인 『광재물보』(19세기 초)와 『물명고』(1824)에는 한글명 '무궁화'가 그대로 기록되어 붉은색 계열뿐만 아니라 그것이 변이된 흰색의 꽃도 있었음을 기록했다.  외국어를 학습하기 위한 『역어유해』(1690)와 같은 사전류에서도 무궁화는 어김없이 등장하였다. 나아가 여러 개인문집과 역사서에서 통일신라 때에 최치원이 당나라에 보낸 외교문서(表詞)에 기록된 '槿花鄕'(근화향)이라는 표현이 재조명되었으며, 인조 이후의 외교문서를 집대성한『동문휘고』에는 한반도와 조선을 '무궁화의 나라'라는 뜻을 지닌 '槿域'(근역)으로 일컫었던 대내외 문서가 다수 수록되기도 했다. 이러한 과정에서 북방의 경흥부사를 지낸 홍양호(1724~1802)는 그의 시 '朔方風謠'(삭방풍요)에서 백두산을 바라보면서 '槿花三千里'(무궁화삼천리)라는 표현을 사용해 현재의 애국가의 후렴구에 있는 '무궁화삼천리 화려강산'의 원형이 되는 표현을 남기기도 했다.

(4) 외세의 침입을 미리 대비하지 못한 조선은 급격히 쇠락의 길을 걸어갔다. 먼저 외래의 문물을 받아 들여 소화한 일본은 제국주의로 발돋움하였고 1894년 청일전쟁을 일으켜 승리하고 조선에 대한 국권 침탈에 한걸음 다가섰다. 그러나 러시아가 남하하여  조선의 국권에 개입하자 일본은 조선 국권 침탈을 미루어야 했다. 이러한 힘의 균형상태에서 1897년에 대한제국이 근대국가의 형태를 갖추어 출범하였다. 외세가 힘의 균형을 이루고 있었고 왕권도 약했던 대한제국은 앞서 조선 중후기에 논의되었던 무궁화에 대한 인식을 반영해 1900년에 문관대례복의 복식을 정하면서 무궁화 문양을 공식 채택하였다. 그러나 대한제국의 국권 침탈에 혈안이 되어 있었던 일본은 1904년에 다시 러일전쟁을 일으켜 러시아 세력을 한반도에서 몰아 내었으며, 1906년에는 고종으로 하여금 무궁화 문양을 폐기시키고 오얏꽃으로 복식 문양를 사용하도록 하였다. 그리고 1910년에는 대한제국을 일본에 공식 강제합병케 함으로써 국권을 완전히 찬탈하였다. 이러한 과정은 무궁화 문양을 일본이 강제적으로 말살한 것으로 이해되었고, 강제합병이 이루어지자 무궁화를 나라꽃으로 인식하는 경향이 조선인들 사이에서 강화되었다[이에 대해서는 목수현(서울대 규장각 한국연구원 연구교수), 「망국과 국가 표상의 의미 변화: 태극기, 오얏꽃, 무궁화를 중심으로」, 『한국문화』 53(2011) 참조].

(5) 일제의 강제 점령이 시작되자 많은 뜻있는 이들은 독립운동을 전개하였으며 대한제국의 멸망을 지켜보면서 무궁화를 국권의 상실해 버린 조국의 상징물로 보고 민족 단결의 매개체로 이해하였다. 무궁화 동산을 역설한 도산 안창호과 무궁화 보급 운동을 펼쳤던 한서 남궁억뿐만 아니라 단채 신채호의 소설, 만해 한용운의 시, 호암 문일평의 글이 그러했다. 3.1운동 결과 창립된 동아일보의 제호에 무궁화 문양이 새겨졌으며, 차미리사가 근화여학교를 설립하여 여성계몽과 독립운동을 펼쳤고, 주시경이 한글보급 운동을 벌이면서 무궁화 문양을 사용하였으며, 상해 임시정부의 국채증서에도 무궁화로 보이는 문양이 새겨졌다. 일제가 이미 한반도 곳곳에 식재된 무궁화를 체계적이고 조직적으로 제거하려한 뚜렷한 흔적은 발견하지 어렵다. 그러나  조선총독부경무국에서 발행한 『고등경찰용어사전』(1933)에는 '無窮花'(무궁화), '無窮花東山'(무궁화동산), '槿域'(근역) 등을 민족의식을 고취하는 불온한 용어로 보았다. 또한 일제는 이러한 시각에서 여러 출판물을 검열하여 무궁화가 기록된 다수의 문헌을 불허가하고 삭제했으며 금서화하였다(국사편찬위원회의 조선총독부 불허가 및 삭제 문서 등 참조). 이후 십자가당 사건으로 비화한 강원도 홍천에서 무궁화를 식재하여 보급운동을 펼쳤던 남궁억에 대한 검거와 구속은 이러한 시각을 반영하는 것이기도 했다. 중일전쟁이 발발한 1937년 이후 일제는 동아일보 제호에 있던 무궁화 문양마저 삭제 조처하였다.

 

(6) 이러한 역사성으로 인해 1945년 해방이 되자 화폐의 문양과 각급 국가기관의 상징 문양으로 무궁화가 자연스럽게 등장하였고, 애국가 후렴의 '무궁화삼천리' 등으로 인해 정식의 법률 규정으로 무궁화가 나라꽃(國花)로 인정된 적은 없지만, 사실상의 나라꽃(國花)로 인식되고 있기도 하다.     

      

3. 무지와 왜곡이 낳은 참사

 

『두 얼굴의 무궁화』는 무궁화=나라꽃이라는 등식이 정당한지 문제를 제기하는 것에서 출발하고 있다. 그런데 동시에『두 얼굴의 무궁화』는 무궁화=일본꽃(일제 군국주의의 꽃)이라는 또 다른 등식을 제기하고 있다. 즉 무궁화는 일본 군국주의의 꽃이기 때문에 우리의 나라꽃(國花)이 될 수 없고 되어서도 안된다는 것이 그 주장의 핵심이다.

 

중국 원산의 무궁화가 일본에도 전래되었고 일본도 재배식물로 이를 심고 키워온 역사가 별도로 있다. 일본의 문화를 '칼'과 '꽃'으로 특징지어 살피는 견해가 있듯이 일본은 수 없는 전쟁으로 얼룩진 곳이기도 하지만 그와 더불어 각종 꽃에 대한 원예와 식재 기록이 풍부한 나라이기도 하다. 예컨대 중국에서 전래된 나팔꽃에 대해 지금과 같은 원예학이 등장하기도 이전에 이미 1,000여종의 변이들을 인위적으로 만들어 낼만큼 꽃에 대한 문화가 풍부한 곳이기도 하다. 일본에서 무궁화는 그러한 여러 꽃 중의 하나일 뿐 우리 문화에서 등장하는 나라꽃의 의미나 벚꽃(사쿠라)에 대한 특별한 애정이 있지도 않다.

 

『두 얼굴의 무궁화』의 저자는 애국가 가사가 만들어질 때 독립협회 운동에 관여했다가 이후 친일파로 변절하는 윤치호가 개입되어 있다는 설(애국가 가사의 저자는 지금도 많은 논란이 있으며 정확히 특정되어 있지 않다. 소위 애국가의 친일 논쟁은 작곡가에 대한 것이지 작사가와 관련된 것도 아니다)과 일본의 무궁화에 대한 기록을 근거로, 실제 사실이 아닌, 무궁화를 일본 군국주의의 꽃으로 왜곡시키고 있다. 

 

- 제1장 : 그는 무궁화라는 이름은 『삼국사기』나 『고려사』등에 우리의 5대 사서(?)에는 일체 등장하지 않은 반면에 일본의 대표사서에는 수두룩하다고 말한다. 그러나 그가 예시하는 일본의 문헌에는 『고사기』와 『일본서기』와 같은 일본의 대표적 사서는 존재하지 않는다. 그가 언급하는 일본 문헌은 대부분은 화훼(식물)에 관한 서적들이다. 우리도 그런 성격의 문헌에는 무궁화에 대한 기록이 참고 넘친다.

 

- 제2장 : 일본의 여러 신사에 무궁화가 식재되어 있다는 것이 그에게는 곧 무궁화=일본의 신화(神花)라는 주장으로 이어진다. 그 과정에서 부상(하와이무궁화)=목근(무궁화)이라거나, 일본 가문의  문양으로 활용된 모과문을 무궁화 문양이라거나 무궁화를 제사 지내는 무궁화천신궁이 있다거나 일장기가 무궁화를 형상화한 것이라는 따위의 전혀 사실과 다른 내용들이 왜곡되어 배치되어 있다. 절에 식재된 식물이라고 해서 다 부처님의 꽃이 아니고 교회에 식재되어 있다고 다 하나님의 꽃이 아니듯이, 일본의 신사에 심겨졌다고 다 일본의 신화(神花)는 아니다.

 

- 제3장 : 일제강점기에 일본이 그들의 속내(혼네)의 꽃이자 신화(神花)인 무궁화(?)를 우리에게 강요하여 우리가 무궁화를 나라꽃으로 인식하게 되었다는 주장이 설파된다. 이 과정에서 무궁화와 그 유사하지만 다른 종의 식물(하와이무궁화)가 또 다시 혼동스럽게 설명되며, 조선은행권의 벚꽃 문양을 무궁화라고 근거없이 우기거나, 남궁억 선생의 독립운동이 무궁화 보급에는 뜻이 없고 외형만 빈 것처럼 설명되기도 하고, 우리말 무궁화가 일본말 天壤無窮(천양무궁)을 잘못 번역한 것으로 설명하기도 한다. 무궁화를 인식하고 기록한 우리의 옛 문헌을 저술한 선조들과 독립운동에서 무궁화를 민족적 상징물로 이해한 무수한 독립운동가들은 졸지에 친일 앞잡이가 되어 버린다.

- 제4장  : 일본에서 흔히 벚꽃(사쿠라)을 나타내는 문양으로 사용되었고 현재에도 사용되고 있는 일본의 극우 보수단체인 '일본회의'의 뱃지가 마치 무궁화인 것처럼 설명되고, 그래서 무궁화는 일본 극우 보수단체를 나타내는 상징처럼 설명된다. 그가 좋아하는 방식대로 일본의 사이트(야후 저팬)에서 무궁화 관련 문양을 검색해 보라. 일본에서도 일본회의의 뱃지를 무궁화의 문양으로 인식하지는 않는다. 

- 제5장 : 일본의 국기인 일장기는 태양신을 숭배한 그들의 관습에서 유래한 것으로 설명되고 있다. 그러나 이장에서 『두 얼굴의 무궁화』의 저자는 일본 무궁화의 재배품종중에 일본 국기와 닮았다는 뜻에서 명명된 무쿠게 '히노마루'에서 거꾸로 일장기가 만들어졌다며 무궁화는 곧 일장기를 상징하는 것으로 설명한다. 그 말이 맞다면 무궁화를 기록한 우리의 옛 선조들은 모두 다 일장기를 숭배하기라도 했다는 말인가?

 

- 제6장 : 일본의 국화(왜국화)인 무궁화를 버리고 개나리와 진달래는 나라꽃(국화)로 삼자는 것으로 그의 주장의 대미를 장식한다. 그러나 개나리의 학명에 한국 특산종이라을 뜻하는 koreana가 있고 특산종으로 분류되고 있기는 하지만, Forsythia koreana (Rehder) Nakai(1926)라는 학명의 부여자가 일본인 나카이 다케노신(中井猛之進, 1882~1952)이며 국내에서 자생지가 발견되지 않고 있다거나 약재용으로 옛부터 중국에서 도입되기도 했으며, 식물분류학의 분류 방식의 차이로 특산종으로 인식될 뿐 일반인으로서는 육안으로 식별이 어려운 유사 종들이 일본과 중국에 널려 있거나, 그가 말하는 5대 사서에 개나리는 기록되지 않았다는 이야기는 하지 않는다. 진달래도 농경사회에서 풍습에서 급격히 도시화가 진행되고 있는 현대의 생활 내부로 들어 와 사람들 사이에서 식재되지 못하는 것과 그 이유에 대한 진지한 성찰 따위는 전혀 없다. 

 

 

4. 짧은 서평

 

​근대 국가가 성립된 이후 각 국가별로 문양이나 휘장 등을 사용하여 자신을 나타내는 것은 보편화된 방법이다. 국가 간에 서로를 식별하는 대외적 역할은 대개 국기(national flag)를 통해 이루어지므로 나라꽃(national flower)이 필요하다면 그것은 내부의 공동체가 경험을 공유하고 같은 인식을 통해 서로의 연대의식을 제고하는 것이  주된 역할일 것이다. 공동체는 머물러 있지 않고 나아가고 있으며 계속 변화하고 있으므로 과거의 것을 살펴 성찰하고 새로운 것을 모색하는 일은 언제나 필요하다. 그러나 우리의 옛 것은 무지하여 보지 않고, 남의 나라 일본의 것은 왜곡하여 사실이 아닌 것을 사실로 받아 들여 우리의 것을 졸지에 일본의 것으로 만들어 버린다면 그것은 앞으로 나아가는 것도, 공동체의 인식을 성숙시키는 것도 아닐 것이다.

책 전체를 통틀어 책에서 논의하고 있는 주제인 식물과 역사에 관한 내용에 저자가 전문성이 있다거나 전문가에 준하는 방법으로 검토했다는 내용은 어디에도 보이지 않는다. 검수자 및 추천자도 그러한 경험이나 그러한 내용을 다루었다는 내용은 발견되지 않는다. 출판사가 이에 대한 제대로 된 교정과 검증을 거쳤다는 흔적도 보이지 않는다. 식물학과 역사학에 대한 진지한 점검은 어디에도 살펴볼 수가 없다. 근래에 등장한 문헌 중에 검증되지 않은 왜곡된 내용으로 채워진 최악의 참사가 되지 않을까 하는 우려가 앞선다.

 

독자가 다루고 있는 주제에 대한 직접적 전문성은 없을지라도 구체적 내용에서 잘못된 정보를 걸러 받아 들이지 못할 때 독자는 새로운 정보와 인식을 공유하는 주체가 아니라 특정한 목적을 위하여 지지되고 동원되고는 선동의 대상자로 전락하기 십상이다. 저자 스스로 독일 히틀러 정권의 선전장관 괴벨스를  인용하며 "사람​들은 한번 말한 거짓말은 부정하고, 두번 말하면 의심하게 되고, 세번 말하면 이내 그것을 믿게 된다. 100%의 거짓말보다는 99%의 거짓말과 1%의 진실의 배합이 더 나은 결과를 보여준다"고 말한다(『두 얼굴의 무궁화』, p.78). 그런 하나의 책에서 같은 말을 수없이 곳곳에서 조금씩 표현을 바꾸어 가며 반복하고 있다.

 

이 책의 독자들이여! 아래에서 제시하는 요소들 중에 단 하나에라도 걸린다면 충분히 스스로가 살펴 이 책의 내용의 진위 여부를  검증하기 어려울 수 있으며 그리하여 당신은 선동의 대상에 노출된 것일 수 있다. 여기에 포함 된다면 지금이라도 이 책에 내용에 반대로 설명하는 자료를 살피고 검증하는 작업을 해보시라. 그렇지 않으면 당신이 알게 된 정보가 당신을 속일 수도 있으니 말이다.

 

- 나는『동의보감』 탕액편을 읽어 보지 못하였으며 그 곳에 식물에 대한 한글명칭이 있다는 것을 알지 못한다.

- 나는 일본의 꽃 문화에 대한 번역서나 일본어 서적을 읽어 본 경험이 없으며 그 내용을 잘 알지 못한다.  

- 나는 일본어를 자세히 알지 못하고  책의 내용 중 일본에 관한 내용이 사실인지 진위를 여부를 스스로 일본 사이트나 문헌 검색을 통하여 확인하지 못한다.

- 나는 화훼, 약용, 식용 또는 기타 목적(염료)에 관해 한자로 표기된 우리의 옛 문헌을 직접 읽었거나 그러한 문헌의 번역본을 살펴 보지 않았다.

- 나는 무궁화를 스스로 식재하거나 키우면서 자세히 살펴본 적이 없다.

 

▶ 주의 : 이글은 이 책의 서평자 모집에 참가하여 당선되어 작성되었습니다. 그러나 이 서평의 내용은 출판사의 의도 또는 목적과는 전혀 관련이 없으며, 개인적으로 보고 읽고 느낀 그대로를 기술하였음을 알려 드립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8)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