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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다를 수 없는 나라
크리스토프 바타이유 지음, 김화영 옮김 / 문학동네 / 2006년 10월
평점 :
시간도, 공간도 사라져버린 것 같다.
습기에 축축하게 젖어 삭아버리고 남은 것은 본질,
그저 본질.
"카뮈의 <이방인> 이후 최고의 처녀작"이란 찬사를 받은 소설이라는데
<이방인>에 작렬하는 태양빛이 있다면
이 소설에는 습기가 있다.
"어느 것 하나 습기에 젖지 않은 것이 없었다.
습기는 그들의 고독한 몸을 적셨다."
-p. 110
후텁지근한 바람이 불고, 공기 중에 습기가 가득한 여름 같은 소설.
읽기 힘들다는 이야기를 많이 들어서 어렵사리 책장을 펼쳤는데
빨려들어가듯이 읽어버렸다.
읽고 나서도 잔상이 많이 남아 한동안 멍하니 앉아 있었다.
이런 소설은 줄거리를 나열하는 게 그다지 의미가 있을 것 같지 않다.
제목은 <다다를 수 없는 나라>인데
읽다 보면 아주 먼 곳으로 여행을 다녀 온 기분이 든다.
옮긴이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나는 책을 사들고 기차에 오르는 즉시 문장은 짧고 여운은 긴
이 소설의 매혹에 빨려들고 말았다.
책을 다 읽고, 그후 몇 번이나 다시 읽고, 그리고 번역을 하고
마침내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도 나는 그 짧은 문장들 사이에서 배어나오는
기이한 적요함, 거의 희열에 가까울 만큼 해맑은 슬픔의 위력으로부터
완전히 놓여나지 못하고 있다."
책장을 넘기며 "짧은 문장들 사이에서 배어나오는 기이한 적요함,
거의 희열에 가까울 만큼 해맑은 슬픔의 위력"을 느껴보길.
그속에서 아직 헤어나지 못한 나는 다시 책을 펼치며
<다다를 수 없는 나라>로 여행을 떠난다.
이상한 일이다.
헤르타 뮐러의 <숨그네>나 코맥 메카시의 <로드>는 버겁게 읽었는데
<숨그네>나 <로드> 못지않게 친절하지 않은 크리스토프 바타유의 문장에 매혹되는 걸 보면.
이 또한 취향의 문제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