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끼리는 아프다 - 인간보다 더 인간적인 코끼리에 대한 친밀한 관찰
G. A. 브래드쇼 지음, 구계원 옮김 / 현암사 / 2011년 5월
평점 :
절판


미주 빼고 460여 페이지에 이르는 이 책을 읽는 동안
줄곧 코끼리에 대해서 생각하며 살았다.
학대받는 코끼리 생각에 울면서 잠이 들기도 했다.
꿈속에서는 코끼리 떼가 나타났다.
덩치는 크지만 마음은 여린, ‘인간보다 더 인간적인’ 정서적인 동물…….

힘겹게 살고 있는 이웃의 모습이나 유기견·유기묘들의 삶,
좁은 우리에 갇혀 살다 인간의 먹이가 되는 동물들의 모습을 볼 때면
얼른 텔레비전 채널을 바꾸곤 했다.
내가 어찌해 줄 수 있는 문제도 아닌데 보고 나면 마음의 짐이 될 것 같아서.
세상의 부조리한 면을 따박따박 따져가며 살기에는 삶이 너무 버겁지 않나…….
그런데 인간이 코끼리에게 가하는 폭력 앞에서는 눈을 감아버릴 수가 없었다.
너무 많은 것들이 읽혔기 때문이다.
유년기의 트라우마가 한 생명체의 삶을 어떻게 파괴하는지
지속적인 감금과 폭력이 어떠한 결과를 불러오는지
그건 비단 코끼리만의 문제가 아니었다.
‘유럽의 홀로코스트, 르완다의 대학살, 아메리카 인디언들의 조직적인 살상과 예속’
고통 받는 코끼리에게서 고통 받는 인간을, 인간이 인간에게 가하는 폭력을 보았다.
“생명체에 자행하는 행위를 생각해보면 모든 인간은 나치다”라고 했든가……. 
옮긴이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심리학 용어가 잔뜩 등장하고 다양한 역사적·지리적 사실들이 넘치고
아프리카나 아시아에서 태어난 이국적인 코끼리의 이름이 가득 등장하지만
이 책은 동물학에 관한 책도, 심리학에 관한 책도, 역사학에 관한 책도,
심지어 코끼리에 관한 책도 아니다. 그보다는 우리 자신의 인간성에 대한 책이다.”

오늘도 코끼리가 난동을 부려 사람을 헤쳤다는 기사를 보았다.
이런 기사만 보면 ‘코끼리가 미쳤구나, 몹쓸 동물이구나.’ 이런 생각들을 하게 되는데
곰곰이 되짚어 보자.
초식 동물인 코끼리가 왜 인간을 공격하게 되었을까?
도대체 어떤 일들이 벌어졌기에 본성이 뒤틀릴 만한 행위를 하게 되었을까?

상처받은 코끼리 크룽제를 치료하는 다음과 같은 대목에서 나는 울어버렸다.
“결국 나는 시간을 두고 크룽제에게 다가가서 부드러운 빗자루로 쓸어주기 시작했다.
크룽제의 몸은 조금씩 부드러워졌고 깊이 숨을 들이마시며 한숨을 쉬었다.
눈은 반쯤 감겨 있었고 눈물이 흘러내렸다.
치료를 끝내자 크룽제는 코를 뒤쪽으로 올려 내 얼굴을 어루만졌다.
내 얼굴도 크룽제와 마찬가지로 눈물에 젖어 있었다.
몸의 접촉은 곧 영혼의 접촉이다.”
그리고 잔혹한 학대에도 불구하고 인간을 사랑하고, 용서하고, 보호하려 애쓰는
코끼리들의 모습에 가슴이 먹먹해졌다.

코끼리가 멸종한다면 인간에게도 미래는 없다,
라고 말하는 것은 지나친 비약일까.
“이 놀랍고도 똑똑하며 감성적인 코끼리들”이 지구상에서 사라진다면
그들보다 ‘더 놀랍고 똑똑하며 감성적’이라고 믿고 있는 인간의 삶은 과연 어떻게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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