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냉면의 품격 - 맛의 원리로 안내하는 동시대 평양냉면 가이드
이용재 지음 / 반비 / 2018년 6월
평점 :
어떤 음식이 컬트적인 인기를 갖고 있는 경우를 찾기는 어렵지 않다. 대표적으로는 홍어, 과메기 같은 사례가 있는데, 이쪽은 사실은 지역이라는 요인과 맞물려 있기 때문에 순수하게 음식 그 자체로 나타나는 현상이라고 하긴 어렵겠다.
그런 경우를 제하고 나면 평양냉면처럼 확고한 지지층을 갖고 있는 음식도 드물 듯하다. 본래 실향민의 음식으로 출발했지만, 북한에서 월남한 세대가 거의 세상을 떠났거나, 일흔이 넘는 고령층이 된 지금 평양냉면이란 음식의 '매니아'라고 할 수 있는 사람들은 대부분 스스로 그 팬임을 자처한 이들일 것이다. 10년 전만 해도 서울에 평양냉면 전문점이라고 하면 손에 꼽을 정도였지만, 이제는 그 수가 수십 개 이상으로 늘어난 것만 봐도 그렇다. 향수로 먹는 음식의 차원은 넘어선 지 오래란 뜻이다.
하지만 팬덤이 흔히 그렇듯, 평양냉면에 자신을 과하게 이입하는 진상(?)들을 찾기가 어렵지 않다. 그러면 "빠가 까를 만든다"는 만고불변의 진리가 작동할 차례. 평양냉면을 스노비즘의 상징 정도로 여기고 비웃는 사람들도 생겨났다. 책에서도 언급되지만, 어떤 이들이 우상화했던 북한의 평양냉면이 그동안 평양냉면 팬들이 주워섬겼던 '이데아'와 다르다는 게 알려지면서 그런 경향은 한층 심해졌다. 그러면서 정작 평양냉면이란 음식의 미덕과 그 맛에 대해서는 "슴슴하다" "닝닝하다"와 같은 추상적이고 단편적인 표현만이 통용된다.(을밀대의 냉면을 먹으면서도 슴슴하다고들 하니, 참 신기한 노릇이다.) 폭발적으로 커져가는 평양냉면 바닥에도 어쩌면 조만간 성장통이 닥쳐올지 모르는 노릇이다.
그런 와중에 등장한 이 책이 참 반갑다. 수도권의 평양냉면 전문점(+메밀면 음식점?) 30여 곳에 대한, 길진 않지만 명료한 비평을 모아놓은 이 책을 보면 각 식당들의 개성과 한계가 뚜렷이 전달된다. 맛은 주관적, 상대적이라는 말이 마치 절대적인 명제인 양 통하는 우리나라에서 이런 시도는 흔치 않았고, 지금도 찾기 힘들다. 수많은 블로그들만 봐도 '제 평가는 주관적인 것입니다'라는 식의 문구를 마치 부적처럼 붙여두고 있지 않나. 주례사 비평이 문학에만 있는 게 아니다.
하지만 아쉬운 점도 있다. 이 책은 말하자면 각론이지, 총론은 아니다. 평양냉면이란 음식의 맛의 구성과 특징에 대해 총론격인 글은 이 책에 없고, 저자의 전작인 <한식의 품격>에 있다. 이 책만을 읽는 사람은 내용을 온전히 받아들이기가 힘들 수도 있다는 말이다. 물론 머리말을 보면 동어반복을 피하기 위해 이런 구성을 취했다는 말이 있고, 그 또한 이해는 간다. 개인적으로도 뻔뻔한 자기복제보다는 약간의 불친절함이 더 낫다.
또 하나는 분량이 너무 짧다는 것이다. 내가 이 책을 읽는 데는 딱 20분이 걸렸다. 요즘 출판시장의 경향을 보면 이 책이 딱히 내용이 빈약하다고 하기는 어렵고, 내용도 다른 책에서는 구할 수 없는 고유함이 있다고 하나 짚고 넘어가지 않을 순 없다.
하여간, <한식의 품격>의 보충자료로 생각하고 구매하고, 읽는다면 매우 만족스러운 선택이다.
여담 - 수도권 이외 지역의 평양냉면도 다룰 계힉이 있다는데, 그것으로 한 권의 책이 나올까? 아무래도 개정판이 나오는 형태를 취하게 되지 않을까 생각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