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이 서평은 네이버 부흥 카페의 서평단 이벤트에 참여해 출판사 협찬 도서를 받고 작성하는 주관적인 글입니다.
이미 다양한 방송과 매체를 통해 대중과 활발히 소통해 온 작가인 만큼 웬만하면 다 들어봤을 겁니다.
이 책의 가장 큰 매력은, 이집트 문명이라는 다소 생소한 주제를 지식의 유무와 상관없이 누구나 막힘없이 읽어내려갈 수 있게 풀어냈다는 점입니다. 이전에 쓴 글과 비교해 봐도, 대중에게 한 걸음 더 가까이 다가가기 위해 고심한 흔적이 역력히 느껴집니다.
이 책의 또 다른 특징이라면, 책 중간 중간에서 이집트 문명과 관련된 다양한 유물과 사료를 접할 수 있다는 점입니다. 최근에 세계 최대 규모의 이집트 박물관이 개장되어서 저처럼 이집트 유물에 관한 궁금증이 있으실 분이 있으신다면 이 책이 꽤나 도움이 되실겁니다. 예를 들어서, 아래 사진은 이집트를 하나로 통일한 '나르메르'와 관련된 석판 사진입니다(좌측). 하지만, 이집트 유물을 본 경험이 적기 때문에 글로만 읽어서는 이해하기 어려운 경우가 많습니다. 그래서 작가는 석판의 내용을 이해하기 쉽도록 우측 사진과 같이 삽화와 설명을 곁들였습니다.
이제 책의 내용으로 들어가보겠습니다. 만약, 이집트 역사를 자세히 알고 싶은 분이라면 실망하실 수 있지만, 이 책은 고대 이집트 문명을 소개하는 책입니다. 그래서 시간 순으로 쭉 따라가는 것이 아니라 주제별로 이야기가 진행됩니다.
제가 이 책에서 가장 흥미를 느꼈던 부분은 1장과 2장입니다. 1장 '고대문명, 그 빛나는 첫걸음'은 독특하게도 이집트 문명의 마지막 순간에서 시작합니다.
이시스 신전 한쪽 귀퉁이에는 조금은 엉성하게 쓰여진 글귀가 하나 있습니다. .... 이 글귀는 '만둘리스'라는 신을 위한 찬가입니다. 원래 이 만둘리스 신은 누비아 지역의 신으로, 이집트에서 전통적으로 믿던 신이 아니었습니다. 신왕국 시대 이후 누비아의 일부가 이집트화가 되었고, 그 과정에서 누비아 신들이 이집트 신화 체계 안으로 편입되면서, 만둘리스 신도 이집트 신전에 자리잡게 된 것이죠.
작가는 최후의 신성 문자 글귀를 소개하면서 이집트 문명 특유의 포용력을 보여줍니다. 이집트는 주변과의 관계 속에서 새로운 신화 체계를 만들어내거나 변화시켰습니다. 예를 들어, 알렉산드로스가 이집트를 정복하면서 그리스계로 왕조 교체가 되자 그리스신인 제우스와 이집트의 신 아멘을 합친 제우스 아멘 신화를 만들어냅니다(4장). 이런 유연한 사고 방식으로 인해 종교적 갈등이 거의 없었고, 서로 다른 문화와 믿음이 평화롭게 공존하도록 만들었습니다. 민족이라는 틀 내에서 사고하는 현대인에게는 꽤나 시사점을 주는 지점이 있을 것입니다.
고대 이집트라는 거울에 우리들 자신을 비추게 되고, 감정적이지 않는 그 비교를 통해 보다 객관적으로 우리들 자신의 문명사적 위치를 돌아볼 수 있죠. 저는 고대 이집트를 탐구하는 일이 단순한 옛날 이야기를 아는 차원을 넘어, 오늘을 사는 우리 자신을 이해하는 데에도 큰 도움이 된다고 믿습니다.
그런데 '최후의'라고 했듯이 고대 이집트 문화는 4세기에 종말을 고합니다. 그 이유는, 이집트를 정복한 로마가 기독교를 국교로 만들면서 이집트 문화를 재생산하던 신전이 폐쇄되었기 때문입니다. 이집트에게 있어서 종교와 문명이 얼마나 긴밀히 연결되었는지 알 수 있는 지점입니다.


2장에서는 다시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 이집트 문화의 핵심인 나일강에 대해 설명합니다. 나일강은 물을 공급하는 역할만이 아니라 이집트 전역을 연결하는 교통로로 기능했습니다. 도시 중심으로 발전한 메소포타미아와 인더스 문명 등과 다르게, 이집트 문명은 나일강을 통해서 하나로 통합된 거대한 영토형 국가로 시작했습니다. 또한 나일강은 매년 거의 일정한 시기에 일정한 정도로만 범람이 일어나 농사에 큰 도움을 줍니다. 적은 분쟁과 안정적이고 규칙적인 생활은 한 번 만들어진 문화적 요소들이 거의 변하지 않고 문명이 끝날 때까지 계속해서 사용하는 태도와 연결된다는 점을 지적합니다. 이런 '문화적 내구성'이 매우 강하다는 것이 이집트 문화의 특징입니다.
고대 이집트인들은 자신이 살던 땅을 '케메트(검은 땅)'이라고 불렀습니다. 검은 땅은 생명력을 뜻하고 죽음 이후에도 이어지는 삶 등의 긍정적인 의미를 가집니다. 이집트 유물에서 부활 이나 신을 묘사할 때에 검은색으로 칠한 것도 여기에 기인합니다. 그 외의 공간(붉은 땅)은 죽음의 공간으로 피라미드를 포함한 무덤이 이 곳에 묻히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독특한 것은, 이집트인은 스스로를 인종으로 구분하는 것이 아니라 살아가고 경험해온 공간을 중요시 여깁니다. 이집트인이라고 하더라도 나일강 인근을 벗어나 외국에서 오래 살면 외국인 취급한다는 의미이죠. 여러 면에서 현대인과 사고 방식에 큰 차이가 있어서 흥미로웠습니다.
그 외에도 6장 '고대 이집트인의 일상생활'도 흥미로웠습니다. 우리가 이집트 관련 매체를 접할 때 항상 지배층과 피지배층, 그 중에서도 지배층에만 주목해왔습니다. 피지배층은 지배층에 의해 희생되는 것만 그려졌죠. 그래서 실제 이집트인이 어떻게 생활하였는지 거의 알지 못합니다.
파라오의 명령 아래 동원된 백성들, 권력자의 죽음을 위해 희생된 사람들. 이런 이미지는 오랫동안 고대 이집트를 지배해 온 고정관념이었죠. 하지만 결론부터 말씀드리자면, 그런 이미지는 정확하지 않습니다. 실제의 고대 이집트인들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삶을 사랑하고, 그 삶을 즐겼던 사람들이었습니다.
엘-메디나 주민들이 급여 연체로 인해 파업을 행한 기록부터 시작해서 당시 이집트의 여성에 대한 이야기, 옷과 음식 등 평소에 접하기 힘들었던 정보를 얻을 수 있었습니다. 기존의 이집트와 메소포타미아 역사책에서도 이런 부분에서 잘 다루지 않는 부분이라 꽤나 흥미로웠습니다.
마지막으로, 이 책은 현대인에게 어떤 의미를 줄 수 있을까요? 중세 일본을 전문으로 공부하고 있는 저 스스로에게도 항상 하게 되는 질문입니다. 게다가 한국과 거의 관련이 없고 먼 시대를 다루는 것은 시간 낭비로 보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다른 사람을 이해한다는 것은 나를 이해하는 과정이기도 합니다. 낯선 것을 통해서만 내게 익숙한 것이 당연한 것이 아님을 알 수 있기 때문이죠. 이 책을 통해서 쉽고 익숙한 소재로 다른 문명을 이해해보는 경험을 해보는 좋은 계기가 되었으면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