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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왜 전쟁을 하는가 - 고고학으로 읽는 전쟁의 탄생
마쓰기 타케히코 지음, 천선행 옮김 / 생각과종이 / 202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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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학적 문제의식과 고고학적 분석 - 일본선사-고대시대에 관심이 있으시다면 휼륭한 개론서가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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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항해시대의 일본인 노예 - 기록으로 남은 16세기 아시아 노예무역 아시아 총서 41
루시오 데 소우사.오카 미호 지음, 신주현 옮김 / 산지니 / 202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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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와나미 역사에 기고하시는 분인 만큼 믿을 만한 학자이고 내용도 괜찮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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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항해시대의 일본인 노예 - 기록으로 남은 16세기 아시아 노예무역 아시아 총서 41
루시오 데 소우사.오카 미호 지음, 신주현 옮김 / 산지니 / 202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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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크게 3부분으로 구분될 수 있습니다.

1) 페레스 일가와 일본인 노예의 이야기

2) 아시아-중남미-유럽의 일본인 노예의 실태

3) 예수회와 노예 무역의 관계

'자애로운' 노예주, 루이 페레스

이 책은 기독교와 노예제라는 '모순'에 대해서 다루고 있습니다. 1)에서는 기독교로 개종한 유대인 '루이 페레스'와 그의 일가가 등장합니다. 당시 유럽인들은 어린 노예를 구매하는 것이 자신의 부와 관대함을 표현하는 하나의 방식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어린 노예에게는 혹독한 노동이 강제되지 않았고, 주인이 부끄러움을 겪지 않도록 충분한 음식과 의복이 제공되었습니다. 루이 페레스도 일본인 노예 '가스팔 페르난데스'를 가족처럼 대하였습니다. 페레스는 자신이 주인으로 취급되는 것을 불편하게 생각했고 하인과 노예를 학대하는 일도 없었습니다. 본인과 그의 가족들도 모두 타의 모범이 되는 생활을 하였습니다. 성매매를 하거나 첩을 두지 않고 일본인과 일본문화에 항상 경의를 표하였습니다.

합스부르크 왕조 스페인 국왕 카를로스의 왕녀 후안나의 초상화 - 어린 노예는 주인의 부와 자애로움을 보여주는 상징이었다.

그의 휼륭한 인격과 품행에도 불구하고 유대인이라는 출신이 그의 발목을 잡았습니다. 심지어 나가사키의 일본인 기독교도들도 그에게 혐오감을 가지고 있었고, 심지어 그를 예수회에 고발하기까지 합니다. 페레스 일가는 이단심문소의 압박을 피해서 필리핀까지 도망치지만 결국 고발되어 유죄 판결을 받고 재산은 몰수당합니다. 여기에는 가스팔의 증언과 그의 또 다른 조선인 노예 '가스팔 코레이아'의 증언이 중요한 역할을 하였습니다. 루이 페레스는 형무소로 가던 도중에 사망하였고, 그의 노예들은 고용 기한이 정해진 한시적 노예임에도 불구하고 종신 노예로 처리됩니다. 가스팔은 이후 2년간 혹독한 착취를 당하다가 1599년 자유민으로서의 신분이 입증됩니다. 루이 페레스의 장남 '안토니오 로드리게스'와 차남 '마누엘 페르난데스'가 신변의 위험을 감수하고 법정 증언을 하였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위에까지 읽으면 루이 페레스의 휼륭한 인품과 불행한 결말에 감정을 이입하게 됩니다. 그런데 왜 작가는 비극적인 노예제를 설명하기에 앞서 '자애로운' 루이 페레스 이야기를 먼저 꺼냈을까요? 여기에는 작가의 의도가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가스팔 페르난데스는 어린 시절 본래 자유민이었습니다. 그런데 같은 일본인에 의해 유괴를 당했고 나가사키로 끌려와 노예로 팔렸습니다. 그는 이 어린 일본인이 어떻게 노예가 되었는지에 관해서는 관심이 없었습니다. 페레스는 가스팔을 구매한 뒤에 곧바로 교회에 보내서 12년간 봉사하는 계약에 서명하게 합니다. 당시 증서를 발급해준 로페스 신부는 페레스가 위법하게 어린아이를 취득했다고 덧붙여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의 차남인 마누엘 페르난데스가 당시 일본인이 다른 곳에서 동포를 끌고 와서 포르투칼인에게 파는 것이 일상이었다고 증언한 것도 이를 뒷받침해주고 있습니다.

이런 점에 있어서는 당시의 유럽인들과 크게 다르지 않았습니다. 당시의 상인들은 비합적으로 '노예' 신분이 되어 강제 연행되었다는 사실을 알고도 그 상거래에 의문을 품지 않았습니다. 이들은 자신들이 노예를 구입하지 않았더라면 포획자들이 포획행위를 그만두기보다는 살해하고 말았을 것이라고 주장하거나, 결국 그리스도교도 상인의 소유물이 되는 순간 세례를 받게 된다고 하여 자신을 정당화하곤 했습니다.

예수회와 노예 무역

이러한 작가의 지적은 3)에서 더욱 분명해집니다. 예수회는 '정의로운 전쟁' 논리를 통해서 인신매매를 합리화하였습니다. 이를 근거로 기독교로 개종한 다이묘나 장수들이 생포한 사람들을 '합법적인 노예'로 간주합니다. 이를 비판하는 사람도 당시에 존재했습니다.

가장 큰 논쟁 거리가 바로 '히데요시의 조선 출병'이었습니다. 히데요시의 전쟁은 분명히 '정의로운 전쟁'이 아니지만, 여기에 고니시 유키나가를 비롯한 기독교 무장이 적지 않았고 이들이 조선인들을 '노예'로 외국인에게 팔아치우려는 행위는 아무리봐도 비도덕적입니다. 이에 대해 알칼라 대학의 신학자이자 예수회원인 가브리엘 바스케스는 "병사가 얻은 것을 위법이라고 생각할 수는 없다. 왜냐하면 그들은 주인에게 소집되었으며 그 전쟁 자체가 정의롭지 못하다고 할 명확한 근거가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예수회 신부는 적어도 이번 일에 대해서는 눈을 감아도 좋다"라고 정당화했습니다. 이에 대해 일본 주교 루이스 데세르케이라는 '조선 침략은 정의롭지 않으며 생포된 조선인을 노예로 삼는 것 또한 위법하다고' 강력하게 반발하기까지 합니다. 양심적인 이들의 격렬한 비판에도 불구하고 노예 매매는 성행하였습니다.

예수회는 노예 무역을 묵고했을 뿐만이 아니라 자신들도 노예를 구매하기도 했습니다. 17세기 초에는 대략 1200명의 일본인이 예수회에 종사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언급합니다.

조선인 노예

제목과는 다르게 이 책에는 일본인 노예만을 다루고 있지 않습니다. 아프리카인, 중국인, 조선인 다양한 노예들의 비극적인 운명이 2)에서 구체적으로 서술되어 있습니다. 조선인에 대해서는 짧게 다루고 있지만, 임진왜란 이후에 일본 시장에 "모든 연령대의 남성, 여성들이 수많은 노예로 몰려왔다. 그중에는 아름다운 여인들도 있었다. 누구나 아주 싼 값에" 판매되었습니다. 고라이초에 '조선인 유곽'이 생겼다는 짧은 대목에서 이들의 인생이 얼마나 비극적이었을지 쉽게 유추할 수 있습니다.

총평

일본사 연구서가 부족한 한국에서는 꽤나 귀중한 책입니다. 저도 일본어 원서로 읽어본 적이 없기 때문에 구매했습니다. 2)에서는 개별적인 사례가 많이 나와서 조금 지루하긴 했습니다만, 1)과 3)의 내용이 재밌어서 하루만에 다 읽었습니다. 일본인 노예로 한정되지 않고 포르투칼/스페인의 광범위한 아시아 노예 무역을 다루고 있기 때문에 일본사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 아니더라도 흥미롭게 읽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이전에도 언급한 적이 있지만, 최근에 한국 커뮤니티를 돌아다니다보면 한국인만 자국민을 노예로 삼았다는 낭설을 보게 됩니다. 전공자들은 후지키 히사시의 <<잡병들의 전장 - 중세의 용병과 노예 사냥>>를 알고 있기 때문에 이 이야기가 얼마나 헛소리인가를 알 수 있습니다만, 한국에서는 이와 관련된 책이 전무하기에 이러한 이야기가 도는 것 같습니다. 굳이 전국시대까지 가지 않더라도 카마쿠라 시대에도 노예와 관련된 재판이 있으니 이 이야기가 얼마나 허무맹랑한지는 알 수 있겠죠. 위 책에서는 당시의 일본인 노예가 대부분 다른 일본인에 의해서 팔려왔다는 것을 분명하게 말하고 있습니다. 혼란한 국내 상황을 이용한 약탈과 인신매매가 성행하였고, 그 외에도 자신의 생활 기반을 잃은 사람들이 스스로 자신을 노예로 파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이렇게 노예가 된 사람들의 대부분은 비극적인 인생을 살았습니다.

아래 글은 김시덕 문헌학자의 글입니다. 아무래도 이번 번역의 계기가 된 것이 아닐까 생각됩니다. 당시 일본인 노예에 관한 대략적인 설명이 주를 이룹니다만 관심있는 분들은 보시는 것을 추천드립니다.

김시덕 문헌학자의 관련된 글 :

https://www.khan.co.kr/culture/culture-general/article/201910132046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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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무라이의 역사
다카하시 마사아키 지음, 박영철 옮김 / 한울(한울아카데미) / 202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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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사=예능인론으로 일본 중세사에 큰 반향을 일으킨 타카하시 마사아키가 쓴 대중서입니다. 무사에 대한 기존 통념을 깨기 위해 다양한 시각으로 무사를 다루고 있는 재밌는 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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칭기스의 교환 - 몽골 제국과 세계화의 시작
티모시 메이 지음, 권용철 옮김 / 사계절 / 202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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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이 책을 구매하시기 전에 고민하시는 분들을 위해서 간략히 정보를 드리겠습니다. 혹시 책이 어렵지 않을까 걱정되신다면 큰 문제는 없습니다. 일단, 번역은 국내 작가의 도서와 비교해도 큰 차이를 못 느낄 정도로 깔끔합니다. 다만, 1부에서 칭기스칸부터 현대 유라시아의 역사를 150페이지 안에 넣다보니, 한 페이지 마다 새로운 인물과 지명이 줄줄이 나와서 집중해서 읽어야할 필요는 있습니다. 유라시아의 지명이나 관직명, 인명 등은 생소한 부분이 많이 있습니다만, 책 뒷부분에 '용어 해설' 파트가 있어서 도움을 받을 수 있습니다. 주제와 관련된 다양한 삽화가 있어서 이해하는데 도움을 줍니다. 다만, 아쉬운 점이 하나 있다면, 1부에서 1장과 2장은 몽골의 정복 전쟁이 자주 나오는데 관련 지도가 나오지 않습니다. 34페이지에 유라시아 지도가 수록되어 있기는 하지만 아쉬운 부분입니다. 아틀라스 중앙유라시아사를 참고하면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또 다양한 주제를 담고 있는 만큼 흥미를 끌고 있습니다만, 보충 설명이 필요한 지점도 곳곳에 보입니다.

이 책은 크게 두 부분으로 나뉘는데 1부는 칭기스칸 이후의 유라시아의 역사를 다루고 있습니다. '칭기스의 교환'이라는 제목만 보시고 칭기스칸과 관련된 이야기가 많을 것이라 기대하시는 분들도 있으실 텐데, 칭기스칸의 분량은 30페이지 정도로 굉장히 짧습니다. '칭기스의 교환'이라는 제목은 '콜롬버스의 교환'을 패러디한 것으로, 칭기스칸은 몽골이 세계사에 영향을 끼치는 계기가 되었을 뿐이지, 그가 모든 변화를 준비하고 계획했다는 의미는 아닙니다. 1장과 2장은 몽골 제국의 등장과 분열을 다루고 있습니다. 몽골 제국의 연대기가 계속 이어져 지루함을 느낄 수 있습니다만, 칸 지위의 불안정한 계승이 제국을 어떻게 분열해나가는지를 중점으로 보시면 될 것 같습니다. 왕위 계승이 굉장히 안정적인 한반도 국가와 달리, 몽골은 칭기스칸의 후예라면 누구라도 칸을 선포할 수 있다는 점이나, 칸이 사망한 이후에도 칸을 선출하기 위한 쿠릴타이를 소집하지 않고 권력을 유지한 여성이 있다는 점 등 굉장히 흥미로운 부분이 많았습니다. 3장은 몽골 제국이 주변 국가들에게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 설명하고 있습니다. 몽골이 멸망시킨 국가는 물론 직접 타격을 받았지만, 몽골로 인해 다시 출현하거나 세력이 강화된 국가도 존재합니다. 또 몽골이 남긴 유산이 유라시아 세계에 어떻게 계승되는지를 서술한 흥미로운 대목이 많이 있습니다. 현대 유라시아사를 이해하는데 있어서 몽골 제국이 얼마나 중요한 지 알 수 있습니다. 마지막 부분에서는 현대에 이르기까지 칭기스칸과 몽골에 대한 이미지가 어떻게 바뀌는가도 다루고 있습니다.

2부는 이 책의 제목인 '칭기스의 교환'입니다. 유라시아 대륙에 끼친 몽골 제국의 영향을 다루고 있습니다. 1부가 좀 지겨웠던 분들도 2부는 다양한 주제를 다루고 있는 만큼 실망하지는 않으실 겁니다. 몽골 제국은 물리적으로 유라시아를 통합했을 뿐만 아니라 동서의 교류를 촉진시켜 본격적으로 '세계사'가 시작되는 계기를 마련합니다. 몽골 만큼 교역에 힘을 쓴 국가는 찾아보기 힘듭니다. 동서로 통합된 제국은 안전한 교역로를 제공했을 뿐만 아니라 통행료와 세금까지 줄여줬습니다. 칸을 비롯한 제국의 지도자들은 스스로 교역의 투자자이자 소비자가 되었습니다. 이에 힘입어 새로운 생산품과 상품이 동서로 이동했습니다. 심지어 몽골이 분열했을 때 조차 교역망은 여전히 유지되었습니다.

제가 가장 재미있게 읽었던 부분은 바로 7장 '종교와 몽골제국'입니다. '파괴'의 이미지와는 달리 몽골 제국은 네스토리우스파 기독교, 가톨릭, 불교, 밀교, 이슬람 등 어떤 종교도 탄압하지 않고 포용하는 모습이 인상깊었습니다. 저자가 텡게리즘과 몽골적 기질 등으로 이를 설명합니다. 몽골의 지배자들은 수많은 종교의 후원자가 되면서 철학적인 토론의 장을 만들기도 했습니다. 가톨릭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왜 몽골에 기독교가 침투하기 어려웠는지에 대한 설명도 눈길을 끕니다.

그 외에도 흥미로운 주제가 많이 있습니다. 몽골 제국은 흑사병, 장인, 기술자, 예능인 등의 이동을 야기시켰습니다. 한편으로는 서유럽이 흑사병으로 큰 타격을 입기도 하지만, 한편에서는 문화 교류로 인한 융합이 활발히 진행되었습니다. 이 시기에 의학 지식, 역사학, 지리학, 천문학 다양한 학문이 새로운 지식과 만나면서 빠르게 발전합니다. 이렇게 다양한 근거를 나열하며 작가는 몽골 제국 이후 세계는 상호 연관성이 훨씬 커졌고, 진정한 의미의 세계화가 시작되었음을 강조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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