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칭기스의 교환 - 몽골 제국과 세계화의 시작
티모시 메이 지음, 권용철 옮김 / 사계절 / 2020년 6월
평점 :
먼저, 이 책을 구매하시기 전에 고민하시는 분들을 위해서 간략히 정보를 드리겠습니다. 혹시 책이 어렵지 않을까 걱정되신다면 큰 문제는 없습니다. 일단, 번역은 국내 작가의 도서와 비교해도 큰 차이를 못 느낄 정도로 깔끔합니다. 다만, 1부에서 칭기스칸부터 현대 유라시아의 역사를 150페이지 안에 넣다보니, 한 페이지 마다 새로운 인물과 지명이 줄줄이 나와서 집중해서 읽어야할 필요는 있습니다. 유라시아의 지명이나 관직명, 인명 등은 생소한 부분이 많이 있습니다만, 책 뒷부분에 '용어 해설' 파트가 있어서 도움을 받을 수 있습니다. 주제와 관련된 다양한 삽화가 있어서 이해하는데 도움을 줍니다. 다만, 아쉬운 점이 하나 있다면, 1부에서 1장과 2장은 몽골의 정복 전쟁이 자주 나오는데 관련 지도가 나오지 않습니다. 34페이지에 유라시아 지도가 수록되어 있기는 하지만 아쉬운 부분입니다. 아틀라스 중앙유라시아사를 참고하면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또 다양한 주제를 담고 있는 만큼 흥미를 끌고 있습니다만, 보충 설명이 필요한 지점도 곳곳에 보입니다.
이 책은 크게 두 부분으로 나뉘는데 1부는 칭기스칸 이후의 유라시아의 역사를 다루고 있습니다. '칭기스의 교환'이라는 제목만 보시고 칭기스칸과 관련된 이야기가 많을 것이라 기대하시는 분들도 있으실 텐데, 칭기스칸의 분량은 30페이지 정도로 굉장히 짧습니다. '칭기스의 교환'이라는 제목은 '콜롬버스의 교환'을 패러디한 것으로, 칭기스칸은 몽골이 세계사에 영향을 끼치는 계기가 되었을 뿐이지, 그가 모든 변화를 준비하고 계획했다는 의미는 아닙니다. 1장과 2장은 몽골 제국의 등장과 분열을 다루고 있습니다. 몽골 제국의 연대기가 계속 이어져 지루함을 느낄 수 있습니다만, 칸 지위의 불안정한 계승이 제국을 어떻게 분열해나가는지를 중점으로 보시면 될 것 같습니다. 왕위 계승이 굉장히 안정적인 한반도 국가와 달리, 몽골은 칭기스칸의 후예라면 누구라도 칸을 선포할 수 있다는 점이나, 칸이 사망한 이후에도 칸을 선출하기 위한 쿠릴타이를 소집하지 않고 권력을 유지한 여성이 있다는 점 등 굉장히 흥미로운 부분이 많았습니다. 3장은 몽골 제국이 주변 국가들에게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 설명하고 있습니다. 몽골이 멸망시킨 국가는 물론 직접 타격을 받았지만, 몽골로 인해 다시 출현하거나 세력이 강화된 국가도 존재합니다. 또 몽골이 남긴 유산이 유라시아 세계에 어떻게 계승되는지를 서술한 흥미로운 대목이 많이 있습니다. 현대 유라시아사를 이해하는데 있어서 몽골 제국이 얼마나 중요한 지 알 수 있습니다. 마지막 부분에서는 현대에 이르기까지 칭기스칸과 몽골에 대한 이미지가 어떻게 바뀌는가도 다루고 있습니다.
2부는 이 책의 제목인 '칭기스의 교환'입니다. 유라시아 대륙에 끼친 몽골 제국의 영향을 다루고 있습니다. 1부가 좀 지겨웠던 분들도 2부는 다양한 주제를 다루고 있는 만큼 실망하지는 않으실 겁니다. 몽골 제국은 물리적으로 유라시아를 통합했을 뿐만 아니라 동서의 교류를 촉진시켜 본격적으로 '세계사'가 시작되는 계기를 마련합니다. 몽골 만큼 교역에 힘을 쓴 국가는 찾아보기 힘듭니다. 동서로 통합된 제국은 안전한 교역로를 제공했을 뿐만 아니라 통행료와 세금까지 줄여줬습니다. 칸을 비롯한 제국의 지도자들은 스스로 교역의 투자자이자 소비자가 되었습니다. 이에 힘입어 새로운 생산품과 상품이 동서로 이동했습니다. 심지어 몽골이 분열했을 때 조차 교역망은 여전히 유지되었습니다.
제가 가장 재미있게 읽었던 부분은 바로 7장 '종교와 몽골제국'입니다. '파괴'의 이미지와는 달리 몽골 제국은 네스토리우스파 기독교, 가톨릭, 불교, 밀교, 이슬람 등 어떤 종교도 탄압하지 않고 포용하는 모습이 인상깊었습니다. 저자가 텡게리즘과 몽골적 기질 등으로 이를 설명합니다. 몽골의 지배자들은 수많은 종교의 후원자가 되면서 철학적인 토론의 장을 만들기도 했습니다. 가톨릭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왜 몽골에 기독교가 침투하기 어려웠는지에 대한 설명도 눈길을 끕니다.
그 외에도 흥미로운 주제가 많이 있습니다. 몽골 제국은 흑사병, 장인, 기술자, 예능인 등의 이동을 야기시켰습니다. 한편으로는 서유럽이 흑사병으로 큰 타격을 입기도 하지만, 한편에서는 문화 교류로 인한 융합이 활발히 진행되었습니다. 이 시기에 의학 지식, 역사학, 지리학, 천문학 다양한 학문이 새로운 지식과 만나면서 빠르게 발전합니다. 이렇게 다양한 근거를 나열하며 작가는 몽골 제국 이후 세계는 상호 연관성이 훨씬 커졌고, 진정한 의미의 세계화가 시작되었음을 강조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