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되어가는 기분이다 창비시선 439
이영재 지음 / 창비 / 202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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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 이영재 시인의 첫 시집 <나는 되어가는 기분이다>을 감상하고 써재끼는 아무말이다. 시집은 전체적으로 '깨지기 직전의 유리컵'과도 같은 분위기다. 건드리는 순간 의미가 왜곡되어 버리는 언어의 세계와도 같다. 그런데 시인은 <상태>라는 시에서 무언가가 되어가는 중의 상태를 어찌할 수 없고, 어찌하고 싶지 않고, 어찌하지 않기로 했고, 어쩌겠나 싶고, 어찌하지 말자고, 어찌할 수 없다고 말한다. 그러니 '서평을 하는 중의 아무말'을 어찌하지 말자고.


"아름다움이란 것은 대단해서 아름다움에 처하면 누구나 안쪽으로 휘말릴 수밖에 없다 너무 밝은 날, 밝음이 밝음에 육박한 날이었는데 아름다움을 넉 없이 보다가 문득,

궁금해졌다 저 희고 아름다운 것이 분명 아름답지 않았을 텐데 어쩌다

아름다워졌을까 왜 굳이,

미화된 거지?"

- 이영재, 「나는 되어가는 기분이다」 中, 『캐러멜라이즈』 부분 (창비, 2020) -


1. 그러게나 말이다. 저것들이 왜 굳이 아름다워졌을까? 왜 미화된 것일까? '저 희고 아름다운 것이 분명 아름답지 않았을 텐데' 말이다. 아름다움이란 것이 어찌하여 이 세상에 탄생하게 된 것일까? 왜 굳이? 왜 굳이...


“아름다운 것에서 느끼는 미학적 즐거움은, 상당 정도는, 우리가 순수 관조의 상태에 들어설 때 잠시 모든 의욕함, 모든 욕망과 관심들의 너머로 고양된다는 사실에 있다. 다시 말하면 우리에게서 우리 자신이 제거된다. 우리는 더 이상 끊임없는 의욕함을 위하여 인식하는 개인들이 아니다.”

- Schopenhauer, Arthur, The World as Will and Representation Vols I & II, trans. by E.F.J Payne (New York: Dover Publications, Inc., 1969), §68, p. 390; 김주휘(2008)에서 재인용 -


2. 그러고나니 갑자기 아름다움과 관련된 몇몇 이야기를 해보고 싶어졌다. 일단 쇼펜하우어는 위와 같이 말했다. 그는 우리가 미적 경험의 절정을 경험할 때 순수 관조의 상태에 들어서게 된다고 한다. 일시적이지만 모든 의욕함과 모든 욕망과 관심들의 너머로 정신이 고양된다. 또한 일시적이지만 무아(無我)의 경지와 유사한 상태에 이르게 된다. 쇼펜하우어가 말하는 아름다움의 목적은 '의지로부터의 해방'에 있다. 물론 그것은 잠시동안 맛보기처럼 느끼는 것일 뿐이다. 그의 철학은 불교로부터 영향을 받은 요소가 많은데, 그렇기 때문에 그가 말하는 구원의 길은 오로지 삶에의 의지의 부정에 있다. 이는 불교적 용어로 보면 '해탈(解脫)'에 가깝다. 아무튼 그가 말하는 아름다움은 이러한 해탈을 일시적으로라도 경험하게 하는 데에 그 의의가 있다.


3. 그런데 정말로 그러한가? 우리가 미적 경험을 할 때 정말로 쇼펜하우어가 말하는 것처럼 관조의 상태에 빠지게 되는 것인가? 여기에 대한 재미난 설명('익스플레인 : 세계를 해설하다') 한 가지가 있다. 바로 'DMN(Default Mode Network)'에 대한 이야기이다. DMN이 켜지는 것은 우리가 아무 일도 하지 않거나 몽상에 빠져 있을 때다. 쉽게 말해서 '멍때릴 때'다. 그런데 우리가 아름다운 미술 작품을 감상할 때에도 이러한 DMN이 켜진다고 한다. 관조까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멍 때리는 상태와 유사한 뇌 상태가 아름다운 미술 작품을 감상할 때에도 발현된다는 것이다.



4. 우리가 이렇게 아름다움을 느끼고 DMN이 켜지는 것은 무엇을 말해주는가? 미적 경험을 하고 감동하게 되는 것은 각자 자기 자신의 자아를 돌아보게 해준다. 그리고 온갖 연상과 생각을 뇌 속에서 일으키게 한다. 다양한 생각들이 내 마음 속에서 붐비게 된다. 상상력이 한껏 발휘가 되어서 이러저러한 생각의 여정을 떠나는 것이다. 그나저나 마음챙김 명상을 하게 되면 DMN이 반대로 덜 켜지게 되고 이와 반대의 현상이 나타나게 된다. 온갖 연상과 생각은 가라앉아서 점점 줄어들게 되고 마음은 차분하게 된다. 그래서 마음챙김 명상은 우울증이나 불안장애로 고생하고 있는 이들에게 큰 도움이 된다. 그렇다면 이와 반대되는 현상을 많이 겪는 이들은 예술작품을 보면서 감동을 많이 하는 이들일 텐데, 예술가들중에서 무언가에 미쳐있는 듯이 심리적으로 불안한 사람이 많은 이유를 말해주기도 하는 것일까? 여기에 대해서는 자세히 알아본 바가 없어서 잘 모르겠다.

5. 아무튼 우리가 아름다운 작품을 감상할 때 일시적인 '해탈'의 경지를 느끼는지에 대해서는 잘 모르겠다. 이와 관련해서는 신경미학이나 관련 학문들에 대해서 조금 더 공부를 해봐야 할 것 같다. 아마도 에릭 캔델같은 신경과학자가 이런 쪽에도 관심을 가지고 책을 몇 권 쓴 것 같긴 하다. 우리가 미술 작품을 볼 때 뇌에서는 무엇이 벌어지고 있는지 궁금하다면 관심을 기울일만 하다. 내가 알기로는 <어쩐지 미술관에서 뇌과학이 보인다>라는 책을 참고할 수 있을 것이다. 사놓고 아직 읽어보지 않은 책이다. 조만간 읽어봐야지.

6. 아무튼간에 이영재 시인의 첫 시집은 참 난해한 언어들로 이루어져있다. 나도 읽으면서 이게 대체 무슨 소리인지 하면서 몇 번을 다시 읽어본 시들이 대부분이다. 현대 문예작품이라는 것이 이런 것일까? 그래도 그중에서도 나름 괜찮게 읽은 것들이 있어서 블로그에 공유하기도 했다. 그리고 조금 다른 말을 하자면, 표지가 참 예쁘다. 아마도 한정판으로 나온 표지 디자인인 것 같은데, 연분홍과 하얀색의 절묘한 꽃무늬 조화가 잘 어울리는 표지였다. 책장에 꽂아놓고 전시하기에는 참 예쁘고 괜찮은 시집같긴 하다. 시를 좋아하는 친구가 생긴다면 이 시집을 같이 낭송해본 다음에 한 번 물어보고 싶긴 하다. 너는 어떻게 생각하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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