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지금, 한국의 종교 - 가톨릭.개신교.불교, 위기의 시대를 진단하다
김근수 외 지음 / 메디치미디어 / 2016년 11월
평점 :
절판
특정한 종교는 없지만 여름 성경학교도 다녀봤고 절밥도 먹어봤다. 어렸을 때 교회와 절에는 나쁜 인상이 없었다. 교회하면 활기차고 경쾌한 찬송가가 떠올랐고 절하면 맑은 물소리와 고즈넉이 울리는 목탁소리가 떠올랐다. 그런데 언제부터 교회를 생각하면 ‘예수천당 불신지옥’ 같은 불쾌한 외침을, 절하면 소란스럽고 요란한 연등행사 마이크 소리를 떠올리게 되었을까?
요즘 종교는 사람들에게 구원과 희망의 메시지를 주지 못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종교 자체가 사회적 정의의 실현과 화합에 걸림돌이 되고 있다. 이러한 현실을 부끄러워하고 걱정하는 그리스도인과 불교인이 만나서 대화했다. 이 책은 한국을 대표하는 세 종교, 가톨릭, 개신교, 불교가 가진 문제점은 무엇이고 어떻게 해야 하면 좋을지에 관하여 9차례에 걸쳐 열린 종교 포럼의 내용을 정리한 대담집이다.
불교는 ‘깨달음’을 출가 스님의 특수한 심적 체험으로 환원하여 불자들을 ‘관중’으로 만드는 깨달음의 권위주의를 지적한다. 깨달음을 신비화하는 도인불교를 지향해온 결과, 지혜만 추구할 뿐 실천하지 않는 종교가 되었다. 반대조차 하지 않는 방관주의, 또는 말로써 행동으로써 옮기지 않고 침묵으로 대신하는 냉소주의로 일관하고 있다.
그러나 도인불교에서 도인의 원조인 석가모니 부처님은 사실 ‘명행족(明行足)’, 지혜(明와) 실천(行을) 두루 갖춘 실천가였다. 불교는 깨달음을 ‘추구’하는 종교가 아니라 깨달음을 ‘실천’하는 종교로 거듭나야 한다. 역사와 사회 밖에서 안으로 들어가야 한다.
개신교는 적그리스도의 색출, 즉 타자의 악마화를 통해 ‘증오의 종교’로 자리 잡은 배타성이 가장 큰 문제다. 그 배타성의 배후는 무엇인가. ‘현실의 몸’을 부정하고 ‘이상적 몸’을 추구하는 의지와 행위다. 이상적인 몸의 추구는 더 강한 권력에의 욕구와 다름 아닌 것이 되었다. 그것이 가장 적나라하게 드러난 것이 대형교회다.
개신교의 해결 방법으로 ‘사회적 영성’을 들었다. 영성은 타자인 신과의 만남이며 두 존재의 유착이다. 두 존재가 하나로 붙어 서로 형질이 변화하는 상호적 자기초월의 체험이다. 사회적 영성은 타자됨의 영성이다. 나와 우리가 바뀌고 배제된 타자의 변화를 추구한다. 우리와 타자가 함께 체험하는 구원이고 해방인 것이다.
가톨릭교는 가톨릭교회가 최고라는 교회 권위주의와 가톨릭교회의 핵심은 성직자라는 성직자 권위주의를 지적했다. “생선은 머리부터 썩는다.”는 터키 속담처럼 권력과 권위주의가 있는 곳에 부패도 있다. 자신을 최고로 내세우는 가짜 권위주의를 버리고 가난한 사람에게 봉사하는 진짜 ‘권위’를 되찾아야 한다.
가톨릭에서 추구하는 신앙과 정의의 관계에서 자유와 해방은 핵심 주제다. 부패를 버리고, 희생자를 기억하며, 희생자들의 곁으로 다가가야 한다. 또 종교가 서로 진리를 강요하지 말고 서로 배울 것을 제안한다. 자유와 해방으로 가는 단 하나의 길은 없다. 어느 그릇에 담겨 있든지 진리의 물을 마시면 되며 그러려면 종교 간 협조가 필요하다.
포럼의 횟수와 시간이 제한되어 있는 만큼 다양한 내용을 다루지는 않지만, 그만큼 가장 관심이 갈만한 주제에 집중되어 무척 흥미롭다. 특히 불교가 나아갈 방향으로 제시한 원효의 ‘화쟁’이 인상적이었다. 장님 코끼리 만지기 일화로 ‘모두 옳고 모두 그르다는 개시개비(皆是皆非)’를 설명한다. 나의 옳음이 저들의 틀림을 증명하는 것도 아니고 저들이 옳다고 해서 반드시 내가 틀린 것은 아니다. 다만 나의 옮음과 저들의 옮음이 다를 뿐이다. ‘온전한 코끼리’라는 새로운 패러다임을 상정함으로써 갈등이라고 하는 모순적 상황을 더 큰 그림을 위한 전환의 에너지로 제시한다.
그러나 화쟁이 정치 갈등에서도 도움이 되는지, 사회적 강자와 약자 중에 누구에게 유리한 논리인가 하는 반문과 과연 화쟁이 논리적 허상이 아닌 실질적인 방법론인지 곧바로 의문이 제기된다. 이렇듯 다양한 의견을 동시에 접하여 독자 스스로 새로운 의문을 품을 수 있다는 점이 커다란 장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