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차려진 상에 모주만 올려보았다
마블로켓 편집부 지음 / 마블로켓 / 202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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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지역이나 자기네 음식에 대한 각별한 애정이 있겠지만, 전주 사람의 맛부심은 참 유별나다. 미식의 고장이라는 외부의 명성이 있는데, 사실 이건 전주 사람에게 별 의미가 없을지도 모른다. 전주피플에게 맛은 공기처럼 너무나 당연한 것이므로.


사실 나는 전주토박이는 아니고, 갓 10대가 되어 이사를 왔다. 부모님은 맛에 그다지 관심이 없는 부류였고 덕분에 나는 친구들을 사귀면서부터 아주 천천히 전주의 맛에 눈을 뜰 수 있었다. 고등학교 2학년에 전주 토박이 친구가 나를 삼백집과 삼일관에 데려가 주었는데, 그때 나는 사람들이 비빔밥이 아닌 콩나물국밥을 전주의 맛이라고 칭하는 이유를 깨달았다. 여전히 콩나물 국밥은 나의 소울푸드다. 그리고 콩나물국밥집에서 따끈하게 데운 모주는 전주의 맛의 한 켠에 있다.

<잘 차려진 상에 모주만 올려보았다>는 제목은 전주 사람에게 몹시 가슴을 뛰게 하는 문장이다. 그런데 솔직히 말하면, 한편으로 고개를 갸웃한 것이 사실이다. 모주는 늘 콩나물국밥과 같이 페어링되는 술이지, 다른 식으로 먹는다는 건 생각해 본 적이 없었으므로. 

하지만 본 책에서는 과감하게 전주의 온갖 맛있는 음식들에 모주를 곁들인다. 나는 페이지를 넘기며 따뜻한 화보 속에서 내가 좋아하던 전주 음식들을 만났다. 일품향의 군만두 그리고 물갈비(요즘은 갈비전골이라고들 한다), 욱일식당의 고구마순 감자탕과 반야돌솥밥. 전주 사람이라면 주기적으로 혀 끝에 맴도는 그 맛들 말이다.

심지어 이 책은 빙수나 파스타, 비빔밥 와플에 모주를 곁들여보기도 한다. 얼핏 경악할 만한 조합임에도 저자의 설명과 맛깔나는 화보를 보면 다음에 <외할머니 솜씨>에 모주 한 병을 들고가야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다시 말해 이 책은 전주 음식에 대한 새로운 발견이자 도전이다.

책 속의 재치있고 따뜻한 문장들은 자주 눈길을 잡아끈다. 콩나물국밥의 부제는 "그 밥에는 그 술"이다. 이것 외에 더 좋은 제목이 가능할까? 막걸리 한 상의 부제는 "살면서 이런 상은 받아봐야 한다"인데, 관광객들이며 방문객들의 입을 딱 벌어지게 만드는 즐거움이 있다. 사족을 붙이면 서신동이 아닌 삼천동 막걸리 골목을 꼽아준 것도 전주 사람으로서 왠지 흐뭇해진다.

모주는 술의 알싸한 맛을 반기지 않는 사람들도 계피맛에 즐겁게 술술 넘길 수 있는 술이다. 이 책에서는 "모주는 사람들을 가깝게 모아주는 술"이라고 언급하는데, 학창시절 고향에서 올라갈 때 모주를 사가면 동기들이 예쁜 커피색이 궁금해서 한 잔씩 얻어마시겠다고 했던 게 기억이 난다. 내가 냄비에 모주를 살짝 데워서 컵에 조금씩 따라주자 다들 진지하게 홀짝거렸다. 

사람들은 내가 전주에서 왔다고 하면 맛을 떠올렸다. 그리고 나 또한 전주를 생각하면 그곳의 맛들이 생각이 난다. 최근 천년고도를 캐치프라이즈로 밀고 있는 전주의 소울이 '맛'에 있다고 생각하면 다소 약한가 싶다가도, 맛보다 더 중요한 걸 찾으려면 쉽지 않다.

전주의 소울을 찾고 싶다면, 그리고 미식여행을 반긴다면 <잘 차려진 상에 모주만 올려보았다>가 좋은 지침서가 될 것이다. 실속있는 맛집과 함께 저자의 따뜻한 애정을 느낄 수 있다.


모두는 사람들을 가깝게 모아주는 술이다. - P1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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