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샤 꾸리 - 신의 땅으로 떠난 여인
장미란 지음 / 21세기북스 / 201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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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샤’ 라는 이름은 아랍권에서 무척 흔한 이름이라고 들었다. 하지만 뒤에 붙는 ‘꾸리’라는 말은...

사우디 아라비아 왕실 물리치료사였던 한국 여인이라는 특이한 이력 때문에 그녀의 이야기에 흥미가 생겼다. 국민의 10%가 회교도인 나라, 땅 속에 파묻힌 석유로 인해 세계 19위의 부를 자랑하는 나라, 내가 인터넷에서 찾아본 사우디아라비아는 대략 이런 나라였다. 하지만, 조남표 그녀가 이 곳을 방문했을 무렵에는 우리나라는 이제 막 후진국에서 벗어난 상황이었고, 사우디아라비아는 그 때도 부유한 나라였으니 그녀가 느낀 경제적 격차는 더 컸으리라고 생각된다. 그녀 이외에도 많은 한국인들이 건설 노동자 등으로 이 나라를 다녀갔었지만, 그녀는 왕실 주요 인사들의 신체를 직접 치료 하면서 사우디 아라비아의 상류층 인사들의 삶을 보다 잘 관찰 할 수 있었던 것 같다.

어떤 인생에서든 터닝포인트가 존재하고 그 시기를 어떻게 보내느냐가 다음 몇 년간의 삶에 호근 평생에 큰 영향을 미치게 된다. 아이샤의 인생에서는 20대에 그런 계기가 찾아왔다. 우연히 라디오 광고를 들었고, 아랍어를 배우기 시작했고, 그것이 곧 그녀가 사우디아라비아로 가게 된 계기를 제공했다. 그곳에서 그녀는 할례받은 여성들과 국가에 대한 자부심이 대단한 왕실 가족들, 맛있는 음식과 따뜻한 인정, 무시무시한 전쟁들을 경험하며 영혼의 성장을 경험한다. 한 사람이 평생동안 한 번도 겪기 힘든 일을 그녀는 그곳에 있는 6년동안 모두 경험했고, 그것을 바탕으로 풀어가는 이야기는 생소하면서도 흥미롭다.

뒷부분에는 그녀가 한곡으로 돌아온 후, 축음기 박물관에서 일하며, 해외에서 물건들을 들여오면서 생긴 몇가지 에피소드들과, 오만 등 중동 국가에 우리나라 회사를 소개하는 일을 하면서 생긴 일, 디스크에 걸리면서 투병하게 된 이야기 등이 간단하게 실려 있다.

책을 읽는 동안 사건을 사실적으로 기술하기 보다는 당시 그녀가 했던 생각, 느꼈던 것들이 치밀하게 묘사 되어 있어 이 책이 마치 그녀가 직접 쓴 이야기처럼 느껴지지만, 실은 작가로 활동하는 조카가 그녀에게서 하나 하나 이야기들을 이끌어 내어 반죽하고 구워내어 예쁘게 장식해 하나의 잘 만들어진 이야기가 된 것이다. 기행문으로 접하는 것보다 비록 시간은 오래 지났지만, 중동 국가에 대해 더 깊이있는 이해를 할 수 잇는 책이라고 생각한다. 때로는 인생이 길고 단조롭게 느껴지지만, 이렇게 한 권의 책으로 정리해 놓고 보니, 무척 짧고 파란만장하다. 이제 50대인 그녀가 앞으로 남은 인생을 살아가면서 다시 한권의 책으로 엮을 이야기를 많이 만들어 갔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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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군의 맛
명지현 지음 / 현대문학 / 201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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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으로 봐서는 예전에 한참 유행했던 요리 만화나 드라마 등을 연상하게 만들지만, 첫 장면은 의외로 살인으로 시작되어 조금 놀랐다. 배미란의 죽음은 교군의 맛과 그 역사에 숨겨진 비밀의 문을 여는 가장 첫 번째 열쇠이다. 양파처럼 수많은 껍질들로 둘러쌓인 교군의 이야기는 그래서 한겹 한겹 벗기면서 감탄하는 독특한 재미가 있다.

맛에 대한 이야기를 영상도 그림도 아닌 글자로 어떻게 풀어갈지 궁금했었다. 막연히 ‘맛잇다’ 라고 하면 재미가 없을 것이고, ‘어떠어떠 한 무엇처럼 맛있다’라고 해도 이해가 부족할텐데, ‘처음엔 아무렇지 않다가 어느 순간부터 서서히 매워지는 맛’으로 교군의 맛을 정의내린 후부터 글자들이 살아서 음식이 된 듯한 생생한 감각을 가지고 책을 읽었다. 매운 음식을 유난히도 좋아하는 나 역시 매운음식에 대한 다양한 견해를 가지고 있는데 이 책의 저자 역시 나처럼 매운 음식을 좋아하는 사람은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책에서 매운 음식에 대해 묘사하는 부분은 가히 상상을 초월할만큼 섬세하다. 책을 읽는 내내 배가 고팠고, 교군의 매운 음식을 맛보고 싶은 생각에 사로잡혀 있다가 결국 다 읽고 난 후에는 매콤한 음식을 먹으며 교군의 맛을 다시 한 번 생각해 보지 않을 수 없게하는 그런 책...

손김이는 직장 상사와 다투고, 예전에 자기 발로 뛰쳐 나왔던 교군으로 돌아간다. 그곳에는 서태후라고 불리는 그녀의 할머니 이덕은이 있다. 그녀는 평생의 한과 열정을 교군의 매운 맛에 담았고, 그 맛은 가족들을 교군으로 돌아오게 하는 구심점 같은 역할을 한다. 가수가 되겠다고 이곳 저곳을 전전하다 결국 누구의 아이인지도 모르는 김이를 임신한 채, 세상 물정 모르는 손씨를 데리고 돌아온 딸 미란도 그렇고, 교군의 맛을 잊지 못해 교군으로 돌아와 가지와 사랑에 빠지는 김이 역시 그렇다. 이야기는 여러 사람의 시점에서 교군의 과거사와 미란의 어머니 이야기, 그녀의 몸종이었던 덕은이 교군의 안주인이 된 이야기, 미란과손씨의 행복했던 신혼 생활, 미란의 죽음의 비밀에 이르기까지 모든 이야기를 하나씩 하나씩 들려준다. 전개가 빠르지는 않지만, 음식을 음미하듯 한문장 한문장 꼭꼭 씹어 삼키다보면, 작가의 깊은 통찰력이 느껴진는 그런 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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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랄라랜드로 간다 - 제10회 푸른문학상 수상작 푸른도서관 54
김영리 지음 / 푸른책들 / 201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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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아이들의 심리나 고민 등에 관심이 많은 편인데청소는 소설들은 웬지 어른들이 아이들의 생각을 추측해 보는 내용 같아 잘 읽지 않았었다. 하지만, 최근에 읽었던, ‘키싱마이라이프’, ‘완득이’, 그리고 이번에 읽은 ‘나는 랄라랜드로 간다’까지 따뜻한 이야기 속에 아이들을 향한 사랑과 이해가 담겨 있는 책들인 것 같아 지인들에게 추천하는 책 목록에 포함시키게 된다.

주인공 용하는 요즈음의 많은 아이들처럼 불행하고, 상처가 있는 아이이다. 아버지의 빚 보증, 가족의 해체, 운 좋게도 간신히 다시 모인 가족이지만, 그 가족의 경제적 기반이 되는 게스트하우스의 소유주라고 주장하는 엄마 이종 사촌의 등장. 정말 머리 아픈 상황이 아닐 수 없다. 게다가 수시로 잠들어버리는 기면증이라는 흔하지 않은 병 때문에 같은 반의 불량한 아이들에게 괴롭힘을 당하기도 한다.

하지만, 용하에게는 가난하지만, 착하고 자상한 부모님이 계시고, 용하의 이야기를 묵묵히 들어주는 비트(비비밀 일기 노트)와 중요한 순간마다 나타나서 용하를 도와주는 친구 나은새와 잔소리꾼 같아 보이지만, 진심으로 용하를 걱정해주는 망할 고 할아버지, 그리고 무엇보다도 어떤 상황에서도 빛이 바래지 않는 용하만의 위트와 해학이 있다.

“그런데 그래도 괜찮다는걸까? 그가 두 귀를 활짝 열어서 사람들의 다양한 면을 보고 더는 두려워하지 않게 된 것처럼 나도 그럴 수 있을까? 웬지 악어가 등 뒤를 따라ㅗ는 것처럼 째깍거리던 시계 소리가 좀 느슨해진 것 같았다. 나는 속으로 그에게 시인이라고 이름을 붙여 보았다. 세상을 보는 눈이 특별한 사람 같았기 때문이다. 우리집에 온 첫 손님이 시인이라니 출발이 좋았다.”

‘사람의 이야기를 주의깊게 듣다보면 그 사람이보이고, 그 사람이 보이면 두려움이 사라진다.’는 시인의 말이 마음을 울린다. 결국 용하를 괴롭히던 반 친구들도 피터 최도 다 같은 사람들이고 그들을 잘 알게 됬을 때 용하는 비로소 그들로부터 해방될 수 있었으니까...

많은 사람들이 대화의 단절 속에서, 그리고 서로에 대한 이해의 부재 속에서 살아간다. 서로를 더 잘 알기 위해서 서로를 경계하지 않기 위해서 용하와 주변 사람들처럼 부닥치고, 싸우면서라도 서로에게 길들여져 가야 하지 않을까? 각자가 지고 가야할 무거운 짐을 잠시 내려놓고 마음 가볍게 읽을 수 있는 책, 거기에다 훈훈해진 마음으로 가깝지만 먼 누군가를 한번 쯤 생각해 볼 수 있게 하는 그런 책 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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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백의 행성에서 - 구름이 가린 그림자를 밟다
최조은 지음 / 보민출판사 / 201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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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흑백으로만 본다는게 무슨 말일까? 컬러도 아니고, 아예 안 보이는 것도 아닌, 흑백으로만 본다는게 가능할까? 사실 책을 다 읽은 지금도 그 느낌이 어떤 것인지 정확히 이해되지는 않는다. 하지만, 저자는 책의 전반에 걸쳐 일체의 색에 대한 묘사를 배제하므로써 읽는 이로 하여금 상상의 나래를 펼칠 수 잇게 한다.

주인공 하수경은 칼럼니스트이다. 그런데 그녀에게는 세상의 사물을 흰색과 회색, 검은색으로 밖에 인지하지 못하는 심인성 질환이 있다. 어느 날, 그녀에게 한 사진전에 대한 칼럼을 써 달라는 의뢰가 들어오게 되고, 사진을 제대로 감상할 수 없는 그녀는 고민 끝에 정신과를 찾게 된다. 의사로부터 약간의 기억상실증이 잇을지도 모른다는 말을 전해 듣고, 세상의 모든 사물에 색을 입혀서 생각해 보는 훈련과 함께 차츰 차츰 과거를 더듬어 가던 그녀, 칼럼을 쓰기로 한 전시회 관련 자료집 속에서 한 장의 사진을 보고, 아련한 기분에 젖어 눈물을 흘리게 된다. 그런데 그 사진 속에서 그녀는 이제껏 보지 못했던 색을 보게 되고, 그 이유를 찾아 가는 과정이 이 소설의 큰 줄거리이다.

‘오후에 마시는 커피는 언제나 사랑스럽다. 마치 이제 곧 다가 올 밤을 몇 시간 앞서 마시는 듯 한 느낌. 어쩌면, 밤의 일부를 마셔 버렸기에 커피를 마신 뒤엔 잠이 안 오는 걸지도 모르겠어.“

소설 속에는 이렇게 톡톡 튀는 새로운 생각들이 가득하다. 마치 동양적인 색체의 서양화를 보는 느낌이랄까? 하수경의 생각을 따라 가다보면, 한 위축된 여성이 자아를 찾아가는 곧은 길이 오롯이 보인다. 그 길 위에 핀 꽃들까지도 아주 자세히... 그리고 그 길의 끝에 무엇이 있을지 소설의 중 후반부로 갈수록 궁금증은 커져만 간다.

소재의 독특함에 비해 흔한 스토리 전개 방식을 택하고 잇지만, 책이 끝날 때까지 긴장감을 늦출 수 없게 하는 매력이 잇다. 더불어 곳곳에 깨알같이 숨어있는 톡톡 튀는 생각들 까지... 몸과 마음이 지쳤을 때, 다 내려 놓고 가볍게 읽기 좋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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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업의 광채 블루칼라 화이트칼라 노칼라 2
줌파 라히리 외 지음, 리차드 포드 엮음, 이재경.강경이 옮김 / 홍시 / 201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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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루칼라, 화이트칼라, 노칼라'의 제 2권에 해당하는 책이다. 내가 알지 못했던 직업의 세계를 엿본다는 기분으로 읽기 시작했는데 직업보다는 인생에 초점이 맞춰진 작품들이 많았던 것 같다. 다 읽고 났을 때, 결국 ‘직업은 인간 삶의 일부이구나’ 라는 깨닳음이 왓다.

책에는 다양한 직업이 등장한다. 관광가이드, 열차 식당칸의 웨이터, 베이비시터, 약사, 카우보이, 외판원, 여러 직업을 전전하는 사람에 심지어는 실직자까지 등장한다. 다들 얼핏 보면 평범한 삶을 사는 사람들 같지만, 모두다 한가지씩 비밀을 간직하고 잇는 사람들, 그러고보면 우리들의 삶도 그런 것 같다.

‘닥터를 위한 솔로 송’에서 닥터는 그저 그런 식당차 웨이터이다. 하지만 그에게는 그 나름의 장인정신이라고 할 만한 것이 있다. 손님들은 무심히 지나쳐버리기 쉬운 넵킨의 위치, 음식을 올리는 순서 등 서빙의 사소한 부분 하나하나까지도 그에게는 전문적인 영역이 된다. 닥터는 결국 식당차에서 쫓겨나서 비참하게 생을 마감하게 되지만, 나에게 인상적이었던 부분은 얼핏 사소해 보이는 일이지만, 평생 자부심을 가지고 성실히 일하는 닥터의 모습이다.

‘어떤 여인들’에 장하는 록산느는 죽음의 그림자만이 가득한 집에 웃음을 가져다 주는 존재이다. 안마사이자 간호조무사라는 일이 즐겁지만은 않을텐데도 그녀는 가족들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알앗고, 결국 가족들의 마음을 얻게 된다. 아이러니하게도 그녀가 쫓겨나는 이유도 결국 그 때문이긴 하지만, 가족 구성원이 아닌 사람이 한 가족에게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는지를 잘 보여주는 소설인 것 같다.

‘거위’에서 디나는 돈을 벌기 위해 일본으로 가지만, 그곳에서 그녀가 만나서 교류하는 사람들은 같은 처지의 외국인들 뿐이다. 그들은 일본인들과 동화되지 못하고, 일자리를 찾아 헤매며, 하루하루를 의식주의 결핍 속에 살아가게 된다. 결국 직업을 구하지 못하고 매춘의 유혹에 굴복하게 되는 디나의 모습을 통해 한국 사회에도 만연한 이주노동자들의 문제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해 볼 수 있는 개기가 되었다.

직업이라는 것이 단순히 밥벌이의 수단이 되기도 하지만, 삶에 있어 얼마나 큰 비중을 차지하는 존재인지를 처음부터 끝까지 역살하고 있는 책이다. 우리가 살면서 만나게 되는 수많은 직업의 사람들 늘 웃는 얼굴이고, 기계적으로 같은 일을 반복하는 사람들 같지만, 그들도 각자가 하나의 이야기를 만들어가고 있는 중일 것이라는 사실 때문에 우연히 만나는 사람들 조차 예사롭지 않게 보인다. 몇 년이 더 지나면 나의 이야기로도 이 소설집에 등장할 법한 이야기 하나가 나올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도 동시에 하게 된다. 이 책을 읽은 많은 직장인들이 공감하고 힘을 얻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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