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백의 행성에서 - 구름이 가린 그림자를 밟다
최조은 지음 / 보민출판사 / 2012년 9월
평점 :
절판


세상을 흑백으로만 본다는게 무슨 말일까? 컬러도 아니고, 아예 안 보이는 것도 아닌, 흑백으로만 본다는게 가능할까? 사실 책을 다 읽은 지금도 그 느낌이 어떤 것인지 정확히 이해되지는 않는다. 하지만, 저자는 책의 전반에 걸쳐 일체의 색에 대한 묘사를 배제하므로써 읽는 이로 하여금 상상의 나래를 펼칠 수 잇게 한다.

주인공 하수경은 칼럼니스트이다. 그런데 그녀에게는 세상의 사물을 흰색과 회색, 검은색으로 밖에 인지하지 못하는 심인성 질환이 있다. 어느 날, 그녀에게 한 사진전에 대한 칼럼을 써 달라는 의뢰가 들어오게 되고, 사진을 제대로 감상할 수 없는 그녀는 고민 끝에 정신과를 찾게 된다. 의사로부터 약간의 기억상실증이 잇을지도 모른다는 말을 전해 듣고, 세상의 모든 사물에 색을 입혀서 생각해 보는 훈련과 함께 차츰 차츰 과거를 더듬어 가던 그녀, 칼럼을 쓰기로 한 전시회 관련 자료집 속에서 한 장의 사진을 보고, 아련한 기분에 젖어 눈물을 흘리게 된다. 그런데 그 사진 속에서 그녀는 이제껏 보지 못했던 색을 보게 되고, 그 이유를 찾아 가는 과정이 이 소설의 큰 줄거리이다.

‘오후에 마시는 커피는 언제나 사랑스럽다. 마치 이제 곧 다가 올 밤을 몇 시간 앞서 마시는 듯 한 느낌. 어쩌면, 밤의 일부를 마셔 버렸기에 커피를 마신 뒤엔 잠이 안 오는 걸지도 모르겠어.“

소설 속에는 이렇게 톡톡 튀는 새로운 생각들이 가득하다. 마치 동양적인 색체의 서양화를 보는 느낌이랄까? 하수경의 생각을 따라 가다보면, 한 위축된 여성이 자아를 찾아가는 곧은 길이 오롯이 보인다. 그 길 위에 핀 꽃들까지도 아주 자세히... 그리고 그 길의 끝에 무엇이 있을지 소설의 중 후반부로 갈수록 궁금증은 커져만 간다.

소재의 독특함에 비해 흔한 스토리 전개 방식을 택하고 잇지만, 책이 끝날 때까지 긴장감을 늦출 수 없게 하는 매력이 잇다. 더불어 곳곳에 깨알같이 숨어있는 톡톡 튀는 생각들 까지... 몸과 마음이 지쳤을 때, 다 내려 놓고 가볍게 읽기 좋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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