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라시아 고려인, 디아스포라의 아픈 역사 150년
김호준 지음 / 주류성 / 2013년 1월
평점 :
구판절판


내가 지금 살고 있는 곳에서 이방인이 아니라는 사실에 감사하는 사람은 아마 없을 것이다. 그러나 이 책을 읽은 많은 사람들이 그 사실을 불현 듯 깨닫고 감사하게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우리가 잘 모르는 또 다른 우리의 역사가 이 책에 담겨 있다.

일제 강점기, 이웃나라 정부의 가혹한 수탈과 혼란스러운 국제정세 때문에 서민들의 삶이 피폐해져갈 때 수많은 사람들이 쫓기듯 혹은 더 나은 삶을 갈망하며 연해주로 이주하였다고 한다. 평생을 땅을 파서 먹고 살던 농투성이들이었던지라 물과 기운이 다른 그 땅에서도 밭을 갈아 씨를 뿌리고 연명하였는데 되물림되어 오던 근명성과 기술 덕택에 그냥 두었다면 그 땅을 새로운 고향으로 여기며 잘 살아갔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남에나라 남의 땅이었던지라 아무리 아등바등 노력해도 하루 세끼니 입에 풀칠하기도 힘든 삶이 이어졌다. 거기다 일제는 러시아 정부를 압박하여 도저히 고향에서 살아갈 수 없어 떠나온 그들을 핍박하였고, 소련 정부 역시 고려인들이 일본의 스파이 노릇을 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때문에 그들을 억압하였다. 설상가상으로 볼셰비키 혁명으로 정국이 불안정해졌고, 고려인들 사이에서도 의견 대립이 심화되는 가운데 몇몇 극단적인 공산주의자들은 신념대로 기꺼이 혁명에 동참했으나 이용만 당하고 슬픈 최후를 맞이하기도 하였다.

그 후 집권한 스탈린은 연해주에 있던 고려인들을 중앙아시아로 강제 이주시키는 황당한 발상을 하게 되는데 아무 것도 모르고 있다가 어느날 갑자기 화물차에 실려 척박한 땅에 버려진 고려인이 무려 수 만명ㅣ었다. 동물보다 못한 취급을 받으며 끌려가다가 아이가 죽고, 부모가 죽고, 기차가 멈추면 시체를 땅에 묻고 통곡하는 사람들의 곡성이 들판을 울리는 참혹한 관경이 서걱서걱 심장을 저며대는 것 같았다. 그렇게 해서 그들이 버려진 곳은 농사도 지을 수 없고, 살 집 조차도 변변히 없는 땅. 얼어 죽고, 습한 기운에 약해진 몸이 견디지 못해 죽고, 음식이나 물을 잘못먹어 죽는 사람이 끊이지 않았다고 하니 가히 전쟁터의 참상을 방불케한다. 게다가 무자비하고 막무가내식의 이주 정책 때문에 가족들이 여러 지역으로 뿔뿔이 흩어진 경우도 많았다고 하니 고향에 그대로 머물렀다면 겪어야 했을 6.25에 못지 않은 참극이다.

그래도 그들은 살아남았다. 그리고 그들의 2세, 3세들이 그곳에서 혹은, 다시 어딘가로 이동하여 살고 있다. 그들은 자신들이 고려인이라 여기고 있지만, 러시아어로 말하고, 생각하며 러시아 노래를 부르고 러시아 소설을 읽는다. 그들은 정서적으로 소련인에 가깝다. 그러던 어느날, 소련이 무너지고, 또 다른 혼란이 찾아왓다. 몸은 중앙아시아의 어누 소국에, 정신은 러시아에, 뿌리는 한반도에 있게된 수많은 디아스포라들이 탄생한 것이다. 그들은 대체 어느나라 사람일까? 저자는 유라시아의 새로운 민족으로 그들을 규정할 필요성을 역설한다. 왜냐하면, 그들은 지금의 모습 그대로 앞으로의 수많은 날들을 어딘가에서 살아가야 하며, 그들ㅢ 후손들도 같은 문제에서 자유로울 수 없기 때문이다.

책이 여러 장으로 일목요연하게 나누어져 있었고, 각 장 속에 또다시 신문 기사와 유사한 소제목들이 붙어 있어 내용이 쉽게 쉽게 머리에 들어왔다. 게다가 유라시아 고려인들의 역사를 총정리했다는 저자 스스로의 평가가 무색하지 않게 내용이 자세하고 방대하다. 거기다 각 나라에 거주하는 유라시아 고려인들의 인터뷰를 수록하여 최근의 동향을 전하고 있는 점도 인상적이었다. 다만, 유라시아 고려인 문제의 해결책을 나름대로 제시했더라면 더 좋았을 것이라는 아쉬움은 남는다. 같은 뿌리를 가진 한 민족으로서가 아니라 같은 하늘 아래에서 같은 공기로 숨 쉬는 한 지구인으로서 이 책을 읽어보기를 전 지구인에게 권하고 싶다. 유대인의 역사를 아는 것처럼 유라시아 고려인들의 삶을 알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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