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약 중독과 전쟁의 시대 - 20세기 제약 산업과 나치 독일의 은밀한 역사
노르만 올러 지음, 박종대 옮김 / 열린책들 / 202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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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신경 활성제는 마치 폭탄처럼 폭발적으로 인기를 끌었고, 바이러스처럼 넓게 퍼졌으며, 얇게 썬 빵처럼 순식간에 사라졌고, 얼마 안 가 한 잔의 커피처럼 자연스러워졌다.

 

마약 중독과 전쟁의 시대

20세기 제약산업과 나치 독일의 은밀한 역사

저자 노르만 올러

옮긴이 박종대

출판 열린책들

출간일 2022.12.25

 

세계 최초의 인터넷 소설 < 할당 기계>를 집필한 노르만 올러가 펼쳐낸 오늘의 책. 저자가 코블렌츠 연방 기록 보관소에서 발견한 한 의사의 진료 일지에서 출발했습니다.

아돌프 히틀러의 주치의였던 테오도르 모렐이 써 내려간 그날의 기록을 통해 1920년 독일 전역을 뒤흔든 제약산업의 부흥과 2차 세계 대전 사이의 유기적 연결을 조명하고 독재자의 자멸을 생생하게 그려냈습니다.

 

메이드 인 저머니

1920년대의 독일은 각성제가 필요한 사회였습니다. 패전 이후의 막대한 배상 책임을 지게 되었고, 몇 안 되는 식민지까지 모두 상실했으며, 국민들은 불안과 우울을 호소했습니다. 이 틈을 놓치지 않고 파고든 건 높은 기술력을 자랑하던 독일의 제약사들. 기업 간 합병을 불사하며 지쳐있던 독일인들에게 생기를 불어넣어 줄 코카인과 헤로인, 모르핀 등을 찍어냅니다. 이 순도 높은 마약은 독일 전역으로 그리고 제3국으로 불티나게 팔려나갑니다.

 

용기 알약과 아돌프 히틀러

빠른 속도로 퍼져나간 약물을 통해 고통스러운 현실을 벗어나 환각 세계로 도피하는 사람들이 늘어갔습니다. 아무런 죄책감 없이 코카인이 함유된 코카콜라를 마셨고, 처방전 없이도 마약을 구매할 수 있었으며, 베를린 의사의 40%가 모르핀에 중독되었습니다. 이처럼 모두가 쾌락을 추구하던 그때 한 남자가 혜성처럼 등장합니다. 마약은 물론 담배도, 술도 즐기지 않는 이 금욕적인 남자는 반 유대, 반 마약을 외치며 독일인들에게 희망을 선사합니다. 철저하게 계산된 제스처와 강단 있는 연설로 독일인들을 사로잡았습니다.

<그 남자가 이루지 못한 게 무엇인가?>

이는 당시의 시대적 구호였고, 많은 사람이 자신의 능력을 증명하고 싶어 했다. 노력만 하면 무엇이든 보상을 받을 수 있을 것 같은 분위기였다.

 

 

환자 A

완벽하게 독일인들을 속여낸 히틀러는 또다시 전쟁을 일으킵니다. 약물 퇴치를 주장하던 그는 주치의 모렐을 곁에 두고 끊임없이 약물의 힘을 빌리기 시작합니다. 또한 병사들에게 페르비틴(메스 암페타민)을 제공해가며 빠르게 유럽 전역을 휩쓸죠. 페르비틴의 강력한 각성효과로 인해 독일군은 지치지 않고 나아갑니다. 하지만 동시에 그들의 정신도 망가지고 있었습니다. 독재자의 상황 또한 다르지 않아요. 순간의 각성효과에 기대어 오판을 일삼는 아돌프 히틀러. 결국 망가진 육체는 약물조차 통하지 않고 전세는 역전됩니다.

2차 세계대전과 마약이라는 무거운 주제를 다루고 있지만 히틀러의 피폐해져가는 모습을 따라가다 보니 한편의 소설을 보는 듯 빠르게 읽을 수 있었습니다.

오늘날 제약산업에서 큰 파이를 차지하고 있는 글로벌 기업들 또한 죄책감 없이 마약을 생산했다는 점이 놀라웠어요. 그렇게 세계인의 안녕을 위하는 척하더니.

히틀러가 주치의 머렐에 의해 강제로 마약을 투약당했고 그 때문에 미치광이가 된 거라는 옹호의 뉘앙스를 내포한 콘텐츠들을 여럿 본 적 있습니다만, 이 책에서는 히틀러는 끝까지 제정신을 유지했으며, 자기 의지의 주인이었고, 자신이 무엇을 하는지 정확히 알고 있었으며, 온전히 깨어 있는 상태로 악행을 자행했다는 점을 강조한 게 매우 마음에 들었어요.

최근 들어 하루가 멀다 하고 유명인들의 마약 투약 기사를 접할 수 있습니다. 청소년들의 약물 중독 문제도 심각한 수준이라는 뉴스도 보았습니다. 마약으로 인한 사회문제가 더 이상 먼 나라의 이야기가 아님을 깨닫게 될 때마다 이 책이 떠오를 것 같습니다. 역사는 반복되고 있다고 하죠. 마약의 시대는 돌아왔고, 아돌프 히틀러는 어떠한 모습으로 우리 앞에 다시 모습을 드러낼까 문득 궁금해집니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읽고 작성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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