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땅의 야수들 - 2024 톨스토이 문학상 수상작
김주혜 지음, 박소현 옮김 / 다산책방 / 2022년 9월
평점 :
구판절판


이 책은 어떤 내용을 담고 있기에 "가장 한국적인 서사를 담은 소설"이라는 평가를 받는 걸까. 세계적인 흥행에 성공했던 <파친코>의 뒤를 잇는 작품이라니, 상점 시리즈처럼 흥행공식을 충실히 따른 클리셰 가득한 이야기는 아닐까. 호기심 반, 걱정 반 만나게 된 오늘의 책 <작은 땅의 야수들>
인천에서 태어나 9살에 미국 포틀랜드로 이주, 프리스턴 대학교에서 미술사 학을 전공한 한국계 미국인 김주혜작가의 장편소설 데뷔작입니다. 집필 기간만 무려 6년이 걸린 이 작품은 톨스토이 스타일이라는 극찬을 받으며 출간 직후 아마존 '이달의 책'에 올랐고, 다수의 매거진에서 '2021년 최고의 책'으로 꼽기도 했습니다.

줄거리(약간의 스포 포함)
1918년. 10살짜리 시골 소녀 옥희는 어머니의 손에 이끌려 평양 시내의 한 기방 앞에 도착합니다. 옥희의 값어치는 고작 50원. 평범했던 소녀는 남자들에게 웃음을 파는 기생이 되기 위해 견습 생활을 시작합니다.

아름다운 행수 '은실' 그리고 그녀의 두 딸 '월향'과'연화'.
은실이 순정을 바친 남자의 소생인 월향은 엄마를 닮아 아름답기 그지없지만, 손님과의 사이에서 원치 않은 임신으로 태어난 연화는 두 모녀와는 사뭇 다른 분위기를 가지고 있습니다.
옥희는 그런 연화와 마음을 주고받으며 둘도 없는 짝꿍이 됩니다.
춤과 노래, 그리고 글을 배우며 하루하루 아름다운 기생이 될 날을 기다리던 어느 날
소녀들의 앞에 나타난 끔찍한 일본인은 네 사람의 운명을 뒤흔들고,
세 소녀는 은실의 사촌동생 '단이'를 따라 경성으로 떠나게 됩니다.

그러니까, 약한 국가와 민족이 더 강한 국가와 민족에 흡수되고 통합된다는 건 불가피할 뿐만 아니라 바람직한 일이라는 거야 p.147

소설의 배경을 보면 알 수 있듯이 일제강점기를 지나 6.25까지의 조선인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이 소설은 주인공 옥희를 기생집에 억지로 팔려가는 비운의 여인으로 묘사하거나, 대단한 애국심을 가진 여인으로 그리지 않아요. 아름다운 자태의 은실에게 반해 기생이 되겠다 결심하는 철딱서니 없는 소녀이며, 자신의 친구에게 해악을 끼친 사람이 일본인이었기 때문에 일본 남자에게 날을 세우는 평범한 인물입니다.
자신의 조국이 누구의 손에 떨어지던 관심도 없고 그저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과 장밋빛 미래를 꿈꾸는 평범한 여인이에요. 저자의 말처럼 그저 100년 전 이 땅에 살았던 사람 중 한 명일 뿐입니다.
하지만 그래서 더욱 화가 났습니다. 평범하기 짝이 없는 옥희를 괴롭히는 모든 일들의 근원이 일본이었다는 걸 알고 있으니까요.
소설 속 옥희는 당연히 행복할 수 없어요. 옥희가 매 순간 다른 선택을 했어도 그녀는 결국 불행했을 겁니다. 100년 전 조선의 여인들은 언제라도 일본인들에게 강제로 범해질 수 있는 위치였고, 조선인이라는 이유만으로도 목숨을 잃을 수 있는 상황이었으니까요.
옥희는 스스로 가난 때문에, 재수가 없어서라고 생각하겠지만 그녀의 집이 왜 가난했는지, 재수 없는 그 일들이 왜 일어났는지 알려줄 수 없어 읽는 내내 가슴이 답답했습니다.

아무도 믿지 말고,
불필요하게 고통받지도 마.
사람들이 하는 말 뒤에 숨겨진 진실을 깨닫고, 언제나 살아남을 방법을 찾아.p.512

그렇다고 해서 무조건 다 일본인들 때문이다! 일본을 향한 원색적인 비난이 담긴 소설은 아닙니다.
옥희가 사랑했던 한철은 자신의 위신을 위해 연인과의 약속을 저버렸고, 옥희가 진정한 친구라고 생각했던 정호는 그녀의 사랑을 받을 수 없음에 분노하여 그녀를 버리고요.
반대로 말종 일본군 이토는 내내 옥희를 괴롭혔지만, 결국 그녀를 살아갈 힘이 되어줍니다. 그에겐 값싼 동정이었대도 말이죠.

죽어가는 사냥꾼을 살려준 일본인, 그를 호랑이에게서 구해낸 조선의 늙은 사냥꾼
그 일본인의 도움으로 목숨을 건진 독립군, 독립을 위해 평생을 바쳤음에도 이념이 달랐다는 이유로 빨갱이라는 오명을 쓰고 죽음에 이르는 독립운동가.
그 시절을 살아낸 인물들의 이야기를 그려냄에 있어 불필요한 치장은 하지 않았습니다.

흔한 말로 떡밥이라고 하죠. 프롤로그에서 등장한 작은 떡밥이 후반부에서 서서히 풀리고, 또 다른 복선으로 작용하는데 탄식이 절로 나왔습니다. 미국인들이 극찬을 한 이유가 뭔지 알 것 같았어요. 한국인에게는 매우 고통스러운 내용이지만 상관없는 제3자가 읽었다면 흥미진진하다고 느꼈을 겁니다.

저자의 외조부께서 실제로 독립운동을 하셨고, 어머니를 통해 그 이야기를 듣고 자랐다고 합니다. 미국에 사는 독립운동가 후손이라는 저자의 포지션 덕분인지 기존의 한국 문학 작품보다 한 발짝 물러서 관찰하는 느낌이었습니다.

과하지 않은 신파 때문에 에너지 소모가 적고, 잔잔하게 여운이 남는 책이었습니다. 할 말도 많고요. 스포가 될까 다 적어낼 수 없는 게 안타까울 정도입니다.
같이 이 책을 시작한 친구는 아직 반도 못 읽어서, 이 답답한 마음을 해소하려면 시간이 좀 더 걸릴듯해요.

일제 강점기부터 한국전쟁까지 긴 세월을 살아낸 여인 옥희의 이야기가 궁금하시다면 <작은 땅의 야수들> 읽어보시길 바랍니다. 저자의 다른 작품들처럼 TV 시리즈로 만날 수 있길 기대하며 오늘의 독서기록을 마칩니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지원받아 읽고 작성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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