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서 종이우산을 쓰고 가다
에쿠니 가오리 지음, 신유희 옮김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2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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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수성이 폭발하던 중학생 시절, 친구들을 따라 일본 문화에 심취한 적이 있습니다. 독서를 즐기는 친구들의 모습이 멋있어 보여 작가가 누구인지도 모르고 무작정 뺏어 읽어 보았어요. 순식간에 저의 마음을 훔쳐 갔던 부드러운 문체와 군더더기 없는 묘사. 바로 <냉정과 열정 사이>의 작가 에쿠니 가오리입니다. 그녀의 신작이 출간되었다고 해서 냉큼 읽어보았습니다. 그 시절에도,이번에도 소담출판사를 통해 만나볼 수 있었습니다.

📚혼자서 종이우산을 쓰고 가다📚

이 책은
일본의 3대 여류작가이자 <냉정과 열정 사이>, <반짝반짝 빛나는>,<호텔 선인장>,<낙하하는 저녁>,<울 준비는 되어있다>등 감성을 자극하는 소박하고 세밀한 문체로 한국에서도 오래도록 사랑받는 일본 문학의 대표 주자인 에쿠니 가오리의 신작입니다.

줄거리
새해를 하루 앞둔 섣달그믐. 호텔에 모인 세 노인 시노다 간지, 시게모리 츠토무, 미야시타 치사코
1950년 말, 작은 출판사의 동료로 만나 오래도록 우정을 나눈 세 노인은 동반 자살이라는 충격적인 방법으로 삶을 마감하고, 그들의 죽음으로 인해 남겨진 이들은 혼란에 빠지게 됩니다.

"이미 충분히 살았습니다"

감당하기 힘든 고통이라던가, 과도한 삶의 무게라던가, 치유 방법이 남아있지 않은 불치병이라던가
'동반자살'이란 단어를 들으면 으레 생각하는 이유들입니다. 하지만 책 속의 세 노인은 담담하고 용기 있게 자신들의 삶의 마지막을 선택했습니다. 갖고 싶은 것도, 가고 싶은 곳도. 보고 싶은 사람도, 이곳엔 이제 하나도 없다고 말하는 그들. 가끔은 슬프고, 가끔은 외롭고, 또 가끔은 행복했을 그들이 충분히 삶을 즐기고 떠나는 모습은 조금 당황스럽기는 하지만 자극적으로 느껴지지 않았습니다.

"초여름, 세상이 아무리 뒤숭숭하다 한들 바깥에서는 작은 새들이 지저귀고 있는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니 든든한 마음이 들었다"

보통 누군가의 죽음을 통해 전개되는 이야기들은 '죽음'자체에 초점을 맞춰 이야기가 진행되지만, 이 책은 남겨진 사람들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습니다. 어린 시절 자신을 버리고 떠난 어머니의 어머니, 잠시 동안 같이 일한 회사의 사장님, 조금은 소원했던 가족 등 다양한 관계의 인물들이 세 노인의 죽음을 받아들이고, 애도하고, 자신의 삶을 되돌아보는 모습을 에쿠니 가오리의 장점인 과장되지 않은 소박한 묘사로 써냈습니다. 가족의 죽음에 몸부림치며 괴로워하거나, 고인과의 추억을 되새김질하며 삶과 죽음은 이런 거란다! 훈수 두지 않아 편안하게 읽을 수 있었습니다. 그저 누군가를 떠내보내고 담담히 살아가는 모습을 그려내 삶과 죽음에 대한 정의는 독자의 몫으로 남겨두었어요.

저는 원체 작가의 말이나, 옮긴이의 말을 읽지 않는 편이라 등장인물이 많아 읽는데 조금 고생을 했는데 신유희 님의 말처럼 세 노인을 주축으로 한 인물관계도를 그려보는 걸 추천합니다. 반복해서 읽지 않아도 그저 한번 적어보는 게 훨씬 도움이 될 테니까요.

이 책을 읽으니 수업 시간에 교과서 사이에 끼워 넣고 읽던 추억의 책들이 떠올랐습니다. 오랜만에 그 시절 저에게 에쿠니 가오리를 각인시킨 책들을 읽어봐야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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