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의 생활사
차윤정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 2004년 3월
평점 :
품절


요즘 차윤정의 나무와 숲에 관한 이야기에 푹 빠져 있다. <나무의 죽음>, <신갈나무 투쟁기>에 이어 <숲의 생활사>를 읽었다. 대개는 한 저자의 책을 연속해서 읽는 일은 지루해지게 마련인데 그이의 이야기는 계속 빠져들게 하는 매력이 있다. 숲에 대해 따로 공부를 하고자 한 것도 아니었는데 이유가 무엇일까?

 

   그이의 나무와 숲에 관한 이야기를 읽다 보면 세상 모든 것들이 경이로워진다. 우리를 감싸고 있는 공기가, 무심히 내리쬐는 햇빛 한줌이, 이름 모르는 풀꽃 한 송이가, 나뭇잎을 간질이는 바람 한 점이 예사롭지 않는 것이 없다. 식물이라는 말에서 풍기는 수동적이고 정적인 느낌을 확 걷어가 버리기도 한다. 이 세상에 나 이외에 수없이 많은 생명체들이 존재하고 있음을 느끼게 된다. 생명 있는 것들에 대하여 저절로 경의를 표하고 싶어진다. 숲을 이루는 풀과 덤불과 나무 하나하나가 씨앗에서 싹을 틔워 잎을 피우고 줄기를 키워 열매를 맺는 일이 자연의 순리라고만 하기엔 아쉬운 무엇인가가 있다. 그 모든 것들이, 그 모든 일들이, 그 모든 순간이 치열하게 살아가는 일인 것이다. 이름도 없는 풀과 미생물에서부터 몇 백 년씩 살면서 거대한 몸짓을 키우는 나무에 이르기 까지 삶을 위한 투쟁 아닌 것이 없으면서도 공존의 세상을 이루는 숲!

 

   숲에게 사계절은 생활이다. 봄에는 생명 있는 것들이 기지개를 켜고 땅과 대기가 녹아 분주한 생활이 시작된다. 마른 대지를 날아온 바람이 대지의 따스한 열을 받아 부드럽게 부풀어 올라 씨앗도, 사람도 설레이며 바람이 난다 한다. 그 바람으로 은밀하게 피어나는 꽃들과 깨어나는 나무들. 식물에게 꽃을 피우는 일은 혁명과도 같은 사건이란다. 여름은 격정적인 성장의 계절이다. 여름의 숲은 뜨거운 열기만큼이나 강한 욕구와 치열함이 들끓는 곳이다. 공기와 빛과 물을 이용해 10톤 이상의 물질을 생산해 내고, 폭풍 속에서 세력이 재편되며, 때론 무모한 욕망으로 맞이하게 되는 죽음마저도 다른 생명을 품는 일이 된다. 가을은 겨울을 준비하라는 자연이 베풀어준 관용이라고 한다. 왕성한 생장을 도모했던 나무는 세포 속의 물질들을 분해하고 정리한다. 뜨거운 욕망을 부추기던 여름의 강렬한 햇빛에 비하여 집착이 사그라든 빛과 열은 숲을 가볍고 헐거운 공간으로 변화시킨다. 그리하여 우리는 무언가에 애정을 품게 되고 사색을 하게 한다고. 한편 치열했던 여름의 결실로 맺어진 열매들은 영토 확장의 꿈을 품고 새로운 시작을 위한 여행을 떠난다. 바람이 숲을 방랑하는 계절, 겨울에 나무는 전설의 기억을 간직하고 겨울을 난다. 봄이면 바람이 방문했던 기억과 산새들이 재잘거렸던 수다와 가슴을 울렸던 소쩍새의 전설을 기억하면서 다시금 봄을 준비한다.

  

   대상에 대한 따뜻하고 섬세한 시선으로 그려낸 <숲의 생활사>는 숲에 대한 이해뿐만 아니라 자연 현상에 대한 풍부한 감성과 통찰의 눈을 길러주는 책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꽃에 대해 다시금 생각하게 되었다. 식물에게 저마다의 꽃을 피워내는 일은 자신의 생명을 발현시키는 일이기도 하면서 또 다른 생명을 만들어내고 키우는 일이기도 하다는 것이다. 나는 살면서 어떤 꽃을 피워낼까? 내가 피워낸 꽃은 어떤 열매를 맺어낼 것이며, 다른 존재에게 무엇이 되어 줄 수 있을 것인가를 깊이 생각해 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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