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 땀, 리셋 - 게임 개발 속 숨은 영웅들의 이야기, 아마존 게임 분야 베스트셀러
제이슨 슈라이어 지음, 권혜정 옮김 / 한빛미디어 / 202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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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빛미디어의 '피, 땀, 리셋'. 개인적으로 자기계발 서적을 좋아하지 않는데, 이미 성공한 사람들의 뻔한 성공담을 다루고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성공을 이루기까지는 여러 가지 요인들이 복합적으로 작용을 하는데, 결국 당사자가 기억하는 몇 가지 습관과 실천이 성공 사유가 되어 독자들에게 너희들도 그렇게 하면 성공할 수 있어!라고 가르치는 내용들이 주를 이루는 책이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리고 당연하게도 그 정도를 따라 하는 것으로 성공은 따라오지 않는다. 


우리는 인생을 살면서 여러 가지 굴곡을 겪고 그때마다 맨땅에 부딪히듯이 실패를 거듭하고 해결해 나가고를 반복한다. 회사에 사수가 있다면 내가 사수가 한 실수를 겪지 않거나 보다 빨리 해결할 수 있듯이, 어떻게 하면 성공하는가? 보다 어떻게 하면 실패하지 않는지를 배우는 것이 직접적으로 인생에 더 도움이 된다. 이 책은 한빛미디어에서 이전에 나온 '피, 땀, 픽셀'과 제목의 라임은 같지만 결은 다르다. "그리하여 그들은 망했습니다."를 길게 풀어서 이야기해주는 책. 그 책이 바로 이 '피, 땀, 리셋'이다.



이 책의 부제는 게임 개발 속 숨은 영웅들의 이야기인데, 책을 읽어본 입장에서는 숨은 영웅은 없었고 눈물 젖은 월급날만 있었다.



아, 물론 성공을 위해서 이름 없이 스러져 간 개발자들을 숨겨진 영웅이라고 하는 거라면 맞는 말이겠다. 너무 슬픈 이야기가  아닌가. 깜찍한 픽셀아트가 그려진 귀여운 표지는 밝고 희망찬 내용을 담고 있을 것 같지만, 실상 내용은 파란색의 표지와 같이 새파랗게 질려 있다. 뭐지, 납량특집인가? 이런 꿈도 희망도 없는 이야기를 우리는 왜 보아야 하는가?


이것은 공감이다. 게임 업계에 이미 들어와 있는 사람에게는 웃픈 공감을 불러일으킨다. 


이것은 경고다. 아직 게임 업계에 들어오지 않은 사람에게 '단순히 게임을 좋아하는 마음'만으로는 이 업계에 발을 들이면 삶을 잃어버릴 수도 있다는 무서운 조언을 던진다.



게임 업계가 사람을 잘근잘근 씹어서 단물을 쏙 빨아먹고 뱉는다는 말에 '에이- 요즘에 그런 회사가 어디 있어.'라고 할 수 있지만, 게임 업계 사람들이 모인 커뮤니티의 게시판과 간간이 올라오는 뉴스만 보아도 아직은 잔재하고 있다.



다행히 지금 내가 몸담고 있는 회사는 타사에 비해서 부당하고 비인간적이지는 않지만, 정당하고 인격적이지만 하지는 않기 때문에 누군가는 이곳을 똥 밭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게임 제작사의 폐업은 구성원들에게 부당하고 비인간적인 처사로 느껴진다. 내가 아는 어떤 회사도 대표가 부동산 등으로 자신의 이익을 챙긴 후, 회사는 월급을 연체하고 결국 폐업했다. 게임이 출시를 하지 못했거나 출시한 게임이 돈을 벌지 못해서 그런 경우도 있지만, 경영진의 이해관계 등 게임과는 전혀 관계없는 경우도 있다. 대부분 회사의 구성원들은 회사가 어떻게 운영되고 있는지, 경영진이 어떤 결정을 할 것인지 예상조차 하지 못한다. 그저 오늘도 내 게임의 완성도를 올리기 위해 열심히 일하다가 어느 날 갑자기 외부 뉴스로 서비스 종료 소식을 듣게 되거나 하루아침에 다른 팀으로 이전하거나, 회사 밖으로 나가게 된다.



업계 사정은 서양이나 우리나라나 비슷하다. 게임 업계 밖에서 비슷한 일을 하면 돈을 더 많이 받는다. IT 개발자의 대우가 매우 좋고, 열정으로 다져진 게임 개발자의 실력이 뛰어난 만큼, 고연봉을 부르면서 업계의 인재들을 각 업계가 빼내어 간다. 그러다 보니 요즘엔 개발자 구하기가 너무 어려워졌고, 게임 업계의 개발자 대우가 전보다 훨씬 좋아졌다. (어디까지나 '전보다' 좋아진 것이다)


게임 업계를 버리고 다른 업계로 이직한 그들이 게임을 사랑하지 않게 된 것은 아니다. '게임'이 좋아서 불태웠던 열정만큼의 보답이 돌아오기는커녕, 그들의 자리마저 위협받았고 언제 사라질지 모르는 고용 불안감에 사랑했던 '게임'을 버리고 다른 업계로 기꺼이 이직을 해버리고 만 거겠지. 아래는 게임을 사랑한 개발자들이 삶을 잃어간 에피소드들을 세세하게 보여주고 있다. 보면서 진짜 꿈도 희망도 없다는 생각이 든다.



혹사당하는 뼈아픈 사실을 깨닫게 되고, 덜 힘들게 일하는 옆 사무실 직원은 연봉이 나보다 훨씬 높다.


아. 그런 생각을 했다. 나보다 더 편하게 적당히 일하는 사람의 연봉이 나랑 별 차이가 나지 않는다는 걸 알았을 때, 굳이 열심히 일할 필요가 있는가?라는 생각. 아. 그래서 회사가 연봉 공개를 사칙으로 막는가 보다.



게임 회사가 문을 닫았는데, 모회사는 문 닫은 사실도 입 싹 닫는 사건.



인디 게임 개발자로 5년 6개월을 살아왔는데, 사진의 굵은 글씨 부분은 진짜 너무 공감이 갔다. 접이식 의자에 외롭게 앉아 있는 사람. ㅎㅎㅎ...



회사에서 개발하는 게임을 아무리 열과 성을 다하고 내 삶을 갈아 넣어도 결국 그 게임은 내 게임이 되지 않는다. 내가 그 게임의 매출을 높이는데 직접적이고 큰 영향력을 끼친다고 하더라도 결국 매출이 내 수입에 영향을 주지 않는다는 점이 가장 끔찍. 어떻게 하면 내 게임이라고 느낄 수 있을까. 내 게임이 성공했을 때 내 삶이 성공한다면, 내가 금전적으로 더 여유 있어진다면 와닿지 않을까. 디즈니처럼. 디즈니 메이킹을 보다 보면 그들이 완성도에 열을 올렸던 만큼 그만한 보상을 받음을 알 수 있었다. 그리고 그렇기에 그들이 아무 걱정 없이 그저 작품을 위해 매달릴 수 있구나라는 생각도 했다. 게임 업계는 아직 멀었다.



한 사람의 존재감이 강해서 그 사람의 결정과 변덕에 장단을 맞출 수밖에 없는 게임 제작사에 가는 건 신중히 고민해 보라는 말. 스타트업 회사에 입사하면 이런 경험을 바로 겪을 수 있다. 스타트업 대표나 이사가 프로젝트의 방향을 마음대로 휘두르는 걸 볼 수 있다. 그가 유능해서가 아니라는 점이 포인트다.



내 경험에도 회사에서 갑자기 전체 회의를  소집하면, 좋은 일이 없었다. 뜬금없이 말이다.



연봉 협상에서 이기기 위해서는 내가 사랑하던 내 프로젝트, 내 자리, 회사를 그만둘 수도 있다는 각오를 해야 한다. 물론 성과가 받쳐주지 않으면 그냥 회사 밖으로 나가게 되겠지만. 나는 내 프로젝트를 너무 사랑해서 경영진에게 딜할 용기가 없었지만, 결국 내 의견이 받아들여지는 건 포기할 각오를 했을 때였다. ㅎㅎ..



프로젝트를 진행할 때는, 예상할 수 있는 리스크가 있는 선택지 A와 예상할 수 없는 리스크가 있는 선택지 B에서 나뉘게 된다. B의 리스크는 있을 수도 있고 없을 수도 있다. A보다는 B가 더 이익이 크다. 하지만, 리스크를 예상할 수 없다는 점이 가장 큰 리스크가 되기 때문에 나는 대부분의 상황에서 A를 선택한다.


게임을 좋아한다라는 마음만으로 이 업계에 오지 말자. 인생이 얼마나 생각하지 못한 방향으로 비극적으로 흘러갈지 최악의 수를 각오하고 오자.



그렇다. 이 책은 게임 제작사가 망했을 때 생기는 일을 이야기한다. 그들이 어떻게 망해가지는지. 어떤 이유 때문에 망해가는지. 그 징조는 무엇인지. 그러니 우리는 이들의 실패를 거울삼아 같은 실패의 길을 가지 않도록 해야 한다. 누구보다 빠르게 그 징조를 눈치채고 늪에서 발을 빼야 한다.



월화수목금금금. 크런치 모드 수당을 받는 거랑 별개로 수당을 받는 정도로는 정말 보상이 되지 않는다. 삶과 건강을 빼앗긴 것은  수당으로는 보답이 되지 않는다.



에필로그에서는 원격 근무를 하는 개발자를 늘리는 것이 개발자의 생존 확률을 높여줄 방법이라고 하지만, 아직은 코시국에도 원격 근무를 없애고 사무실 출근을 하려는 움직임이 더 많으니 갈 길이 멀다.


이미 게임 업계에 들어와 있는 사람에게는 씁쓸하고 웃픈 공감을, 오지 않았고 오려고 했던 사람에게는 피가 되고 살이 되는 경고를 해주는 책이다. 게임을 사랑하는 당신! 이 책을 읽고도 게임을 사랑하고 게임 업계를 각오한다면, 그 각오! 응원한다.


"한빛미디어 <나는 리뷰어다> 활동을 위해서 책을 제공받아 작성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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