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수의 일 (양장)
이현 지음 / 창비 / 202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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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마음은 얼어붙은 호수와 같아 나는 몹시 안전했다.


이런 첫 문장으로 시작한 《호수의 일》은 다음과 같은 마지막 페이지로 끝난다.


내 마음은 얼어붙은 호수와 같아 나는 몹시 안전했지만, 봄이 오는 일은 내가 어쩔 수 있는 게 아니었다.

마음은 호수와 같아.


'마음은 호수와 같아.'


책을 받았을 때 제목인 호수의 일이 무슨 뜻일까 궁금했다. 주인공의 이름이 호수일까 하는 생각도 했는데 책을 다 읽고 나니 알겠다. 마음은 호수와 같다. 얼어붙고, 녹고, 그 와중에 진창이 되기도 한다.


주인공 호정은 마음속에 타인을 쉽게 받아들일 수 없는 지점이 있는 아이다. 평범해 보이는 집안 환경, 무난한 교우 관계, 그럭저럭 3등급인 성적… 별반 특별할 것 없어 보이는 이 아이의 마음속을 들여다보면 실은 얼어붙은 호수와 폭발하는 호수와 진창, 얼음이 녹은 봄의 호수까지 끊임없는 마음의 일이 있다. 이현 작가의 《호수의 일》은 그 마음속에서 일어나는 일을 정말 섬세하게 펼쳐준다.


읽는 내내 다음 내용이 궁금했다. 호정처럼 남이 쉽게 디딜 수 없는 지점이 있는 아이인 은기의 사정은 무엇일까. 어떤 사건이 일어난 후 호정이 의사와 상담하며 말하는 형식인데 대체 이들에게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호정과 곽근 사이에서 있었던 '아무 일도 없었던' 일은 뭘까. 호정이 가족을 관찰하듯, 자신의 경계 밖에 두는 이 거리감의 연유는 뭘까 등등.


페이지가 넘어갈수록 하나하나 차곡차곡 드러나는 이야기와 쌓여가는 장면들이 좋았다. 책을 다 덮었을 때 정말로 얼어붙은 호수가 녹아가는 과정을 지켜본 것 같았다. 그때는 그게 고비인 줄 몰랐는데 지나고 보니 하나의 고비를 넘은 느낌. 이런 게 성장일 지도 모른다.


첫사랑의 조심스러운 설렘, 우정의 고비와 화해, 깊숙이 묻어 둔 가족의 일, 학교에서 아이들 사이에 일어나는 미묘한 학폭 아닌 학폭, 선악이 흑백으로 딱 떨어지지 않는 세상을 통과하며 느끼는 혼란까지. 나의 경험을 떠올리며 공감할 수 있는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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