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를 위한 노래
메리 올리버 지음, 민승남 옮김 / 미디어창비 / 202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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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면서 여러 개들과 함께 했던 시인 메리 올리버가 쓴 개에 대한 시와 한 편의 산문, 그리고 메리 올리버의 털복숭이 친구들의 삽화가 실린 책이다.


시를 읽으면서 산책 나온 강아지를 볼 때처럼 저절로 미소가 지어졌다. 강아지들을 '순수한 갈망덩어리'라 표현한 걸 보고 킥킥거렸고 '무언가를 추적하고 나서 보이던 위풍당당한 만족감'이라는 문장에서는 저절로 바깥 냄새를 잔뜩 묻힌 채 어깨를 펴고 돌아온 개의 모습이 떠올랐다.


개는 당신에게 와서 당신의 집에서 당신과 함께 살지만

그렇다고 당신이 개를 소유하는 건 아니야


라는 문장이나 '개는 확고해, 개는 옳아'라는 문장에서는 맞아, 맞아 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가장 인상 깊었던 문장은 눈밭을 뛰어다니는 작은 개(베어)를 묘사한 시 <폭설(베어)>에서 발견했다.



이리 뛰고 저리 뛰고, 잔뜩 흥분해서,

    멈추질 못하고, 뛰어오르며, 돌며

새하얀 눈 위에 살아 움직이는 커다란

    글자를 쓰지,

이 세상에서 몸이 누리는 기쁨을 표현하는

    긴 문장을 쓰지.



나 같으면 그냥 '우리 애 신났구나', '저거 어떻게 씻기냐', 웃고 말았을 거다. 하지만 개에 대한 지극한 사랑과 남다른 감수성, 사물을 보는 예리한 눈, 뛰어난 표현력을 가진 시인은 그 흔한 장면을 이렇게 잡아낸다. 눈밭에서 난리 난 강아지가 남긴 흔적에서 '새하얀 눈 위에 살아 움직이는 커다란 글자'를 보고 '이 세상에서 몸이 누리는 기쁨을 표현하는 긴 문장'이라고 하다니. 역시 시인들은 좀 다른가보다. 같은 세계를 봐도 대충 숭덩숭덩 지나가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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