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자본과 이데올로기
토마 피케티 지음, 안준범 옮김 / 문학동네 / 2020년 5월
평점 :
바보야 문제는 정치야 !
(It’s the politics, stupid.)
토마 피케티, 자본과 이데올로기, 문학동네
토마 피케티의 신작 [자본과 이데올로기]를 인내심으로 완독했다. 경제 전문가가 아닌 일반 독자로서의 어려움이 다소 있었으나 끝까지 읽을 수 있었다. 그 이유는 피케티의 매력 때문이다. 우선 피케티는 명료하고 단순하게 책을 썼고, 그가 말하고자 하는 논제를 정확한 통계와 수치, 역사를 통해 전개하기에 흥미진진했다.
피케티가 말하고자 하는 바는 분명하다. 현재의 세상은 경제적으로 불평등하다. 이러한 불평등의 세상이 된 이유는 정치적 합의에 따른 것이다. 우리는 불평등한 세상을 변화 시켜야 하며 그것은 깨어있는 지식인과 시민들의 연대와 적극적 정치참여(선거)다. 우리는 이러한 노력을 통해 보다 평등한 세상으로 바꿔갈 수 있다.
1. 우선 피케티가 제시하는 불평등의 역사를 생각해보자. 피케티는 프랑스에서의 앙시앙레짐, 즉 프랑스 혁명 전의 구 체제에서 시작한다. 피케티는 그 시대를 삼원사회라 규정한다. 즉 사제, 귀족, 제3신분으로 구성된 사회란 뜻이다. 시대별 변화의 추이는 있으나, 사제와 귀족은 전 인구의 3%정도였고, 나머지 97%는 노동자와 상인 등이다. 문제는 인구의 3%에 불과하는 전자가 국민소득의 총 50% 이상을 소유하고 있었다는 점이다. 피케티는 이것은 불평등이라 말한다.
그런데 이러한 불평등 체계가 별 저항 없이 존재하게 된 이유는, 이데올로기 즉 당시 종교와 정치가 주입한 생각들 때문이다. 사제와 귀족은 태어날 때부터 구별되었고, 나라 전체의 안보와 유지를 책임지고 있기 때문에 그들이 이에 합당한 보상을 받는 것이라는 이데올로기 때문이다. 이러한 생각에 별 이의가 없었다. 당연히 그들은 소득세, 상속세를 거의 내지 않았다.(약 1%)
2. 프랑스 혁명은 이러한 구조에 대한 반동이다. 이러한 불평등한 세상을 바로잡고자 하는 이데올로기의 전환이자 경제적 평등을 향한 시민의 운동이었다. 혁명에 성공한 자들은 무엇보다 우선적으로 사제와 귀족 계급의 재산을 몰수하고, 그들의 사법권을 박탈했다. 중앙집권적인 국가를 건설하고자 했고, 국가가 그 역할을 할 터였다. 그러나 혁명의 주체들은 준비가 되어있지 않았기에 우물쭈물했고, 곧 이어 공화정, 나폴레옹 체제의 군주정으로 후퇴하게 되었다.
새로운 정치 혁명으로 인해, 과거 사제, 귀족 계급은 신 부르주아 계급으로 탈바꿈했고, 조세 제도가 명확히 마련되지 않는 어수선한 상황에서 이들은 신흥 자산가들로 등장했다. 마침 산업혁명과 식민지 정복이라는 시대적 변화로 인해 막대한 자산이 몰렸고, 이러한 결과는 오히려 더욱 더 소유의 불평등 구조를 낳았다. 프랑스인들이 좋은 시대라 하는 ‘벨 에포크’는 실제로는 불평등이 더욱 심화되었던 시대다.
3. 19세기 전반에 걸쳐 유럽 대륙이 부를 축적한 이유는 다양하다. 우선 산업혁명이라는 경제 혁명으로 신흥 자산가들이 출현했고, 막강한 군사력으로 해외 식민지 건설을 했다. 영국, 프랑스, 네덜란드 등은 아프리카, 아시아, 중남미 식민지들로부터 막대한 금, 은, 각종 재화를 수탈했다. 이는 또한 식민지의 흑인 노예를 이용한 노동력 착취라는 배경이 뒷받침했다. 이들은 값싼 노동력으로 각종 재화(면화, 목재 등)를 유럽으로 가져갔고, 이를 재가공하여 식민지와 아시아 국가들에 되 팔았다. 또한 인도, 중국, 인도차이나 반도 등의 아시아권 식민지에서 동인도회사 등을 통해 불평등 무역조약을 맺어 막대한 부를 축적했다.
피케티는 19세기-20세기 초 유럽의 막대한 자산과 부는 불합리하고 불평등한 식민지 정책과 노예 소유로 인해 획득한 것임을 주장한다.
4. 19세기 중 후반 영국, 미국, 프랑스 등지에서 노예 해방이 이루어졌다. 노예무역 철폐와 노예들의 자유를 보장했다. 그러나 피케티가 관찰한 바에 의하면, 어느 나라에서도 노예들에 대한 보상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다. 오히려 노예 소유주들에게 국가가 국채를 발행해서 거대한 보상을 실시하였다. 이러한 결과로 과거 노예 소유주들은 막대한 부를 획득함과 동시에 자립이 안 되었던 노예들을 다시 자발적 노예 노동자로 끌어들일 수 있었다.
프랑스는 아이티의 정치적 해방을 약속했으나 실제로 당시 국민소득의 300%에 달하는 배상액을 요구하였기에, 아이티는 또다시 경제적 예속 관계로 들어갈 수 밖에 없었다. 이에 반해 아이티의 노예소유주들은 인접한 쿠바 등지로 옮겨 그들의 자산을 유지할 수 있었고, 경제 보복(국경 봉쇄) 등을 통해 아이티를 압박했다.
5. 변화의 도화선은 20세기 초, 중반에 일어났다. 불평등의 증가에 대한 불만이 유럽에서 공산주의, 사민주의 형태의 이데올로기 운동으로 일어났고, 무엇보다 민족주의의 과도한 성장은 전쟁이라는 결과를 낳았다. 세계 1차 대전의 포화 속에 자산가들의 자산은 추락했고, 이어 1930년대의 세계 공황, 이어진 세계 2차 대전으로 인해 자산 추락은 불가피했다.
우선 전쟁 물자 조달을 위한 국채발행이 불가피했고, 자산가들은 국가를 위해 반강제적으로 해외 자산을 매각함으로 국채를 사들여야 했다. 또한 이 시기 국가는 기간산업을 국유화했다. 미국은 대공황을 극복하기 위해 뉴딜정책을 실행했고, 역시 막대한 국채 발행, 이것을 감당하기 위한 불가피한 증세가 이어졌다.
유럽과 미국에서 공히 소득에 대한 누진세가 실행되었고, 상속분에 대한 누진세가 신설되었다. 소득구간에 따라, 상위 10%의 고소득자에게 60-70%의 세금이 부과되었고, 이러한 세금으로 국가의 재건, 교육 투자, 연금, 보건 등의 국가 정책을 실시하였다. 따라서 전후 1950-1980년대의 유럽과 미국은 불평등의 수치가 역사적으로 가장 낮았다.
피케티는 이러한 변화의 동력의 이유를 시민들의 적극적 정치 참여를 들었다. 무엇보다 선거권의 확대가 이러한 정책을 유도했다는 것이다. 세계대전 전의 국가들에서 선거권은 부유한 자산가들과 귀족들에게만 있었다. 그러나 양차 대전 후 선거권은 모두에게 주어졌고, 이들은 자신들의 이익을 대변하는 사민당, 노동당, 민주당에 표를 던졌다.
6. 1980년대 이후 전반적이고 급격한 변화의 흐름이 다가왔다. 미국의 레이건, 영국의 대처를 중심으로 하는 보수의 반격이 시작되었다. 레이건의 공화당, 대처의 보수당은 우선 기업의 법인세를 인하했다. 그리고 국가 소유의 기업들을 민간에 매각했다. 또한 소위 신자유주의 정책을 받아들여 금융에 대한 제재를 완화했고, 국가 간 자본의 이동을 자유롭게 하는 정책을 주도했다.
때마침 과거 공산주의 국가들의 연쇄적 붕괴가 이어졌고, 탄력을 받은 영미의 정치지도자들은 자신들의 정책을 보란 듯 관철시켰다.
이로 인한 결과는 주지하듯, 역사상 유래 없는 불평등 구조를 낳았다. 전 세계 자산의 50% 이상을 부유한 1%가 소유하는 현실이다.
금융자본주의의 발달과 소위 닷 컴 기업의 등장으로 슈퍼 부자들(억만장자)이 등장했고, 각 기업들의 CEO의 연봉은 치솟았다. 한국의 대기업 총수들의 연봉은 많게는 200억, 작게는 50억에 이른다. 이는 대졸 신입사원 연봉의 700배에서 150배에 이르는 액수다. 물론 워렌 버핏 같은 투자계의 슈퍼 리치들도 등장하여 억만장자들의 자산은 헤아릴 수 없을 정도다.
7. 피케티가 말하는 핵심 논증은 이러하다. 이들 슈퍼 부자들이 등장한 이면에, 정치적 함의가 있다는 것이다. 무엇보다 이들을 옹호하는 성공 이데올로기가 존재한다. 이들은 성공의 아이콘, 신화로 등장하면서 자신들의 부를 부러움의 대상으로 만든다.
피케티는 이것은 잘못이라고 주장한다. 닷 컴 기업들의 고도성장은 자신들만의 아이디어나 노력이 아니라, 국가의 체계적이고 지속적인 지원과 특혜 속에 이루어졌다. 따라서 이들의 소득에 대해 강력한 누진세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아울러, 기업의 슈퍼 연봉도 철저히 1인 1주의 의결권으로 인한 결과임을 자각해야 한다. 자신들이 자신들의 연봉을 책정하고 이를 당연시한다. 피케티는 이것은 잘못이라고 말한다. 기업들의 성장 배경에도 분명히 국가의 지원, 세제 혜택, 무엇보다 수많은 노동자들의 노력, 그리고 국민들의 구매가 있어 가능했기에 이는 부당하다는 것이다. 누진세를 통한 사회 환원을 피케티가 주장하는 이유다.
8. 피케티는 1980년 이후의 역전 현상에 대한 중요한 변수로 고학력자들의 등장을 말한다. 피케티는 이를 브라만 좌파라 칭한다. 즉, 고학력을 바탕으로 과거 노동자의 정당인 미국의 민주당, 영국의 노동당을 장악한 이들은 자신들도 상당한 신흥 자산가가 되었기에, 당연히 자신들에게 손해가 되는 정책들을 펴지 않는다. 그들은 이제 노동자들이 아니라, 자신들과 소위 상인 우파(자산가)의 대변인이 되었다. 이로 인한 결과는 정치 불신이며 낮은 투표율이다. 물론 이러한 결과로 그들은 계속해서 자신들의 이해관계를 대변하는 정당으로 존속한다.
(한국의 상황도 동일하다고 여겨진다. 미래통합당은 말할 것도 없거니와 더불어민주당의 구성원들도 대부분 피케티가 말하는 고학력자들, 기득권자들로 구성되어 있다. 대부분 부동산 및 금융 자산을 소유한 이들이 조세 개혁이나 부동산 개혁 정책들을 제대로 펼 리 만무하다. 이래저래 정치 불신만이 쌓여간다.)
9. 피케티는 자산 축적의 편법적 도구인 역외 탈세 및 조세피난처에 대한 국제적 대응을 강력하게 촉구한다. 러시아, 중국, 중동 국가들의 조세피난처로의 자산 이탈은 천문학적이다. 국제조세정의 단체의 폭로에 의하면 러시아의 조세피난처에 감추어진 자산은 1000조가 넘는다. 과거 오바마 대통령의 강력한 요구에 의한 스위스 은행의 미국 자산 회귀를 예로 들면서 피케티는 국제적 공조만 있다면 이러한 역외 탈세의 징수 및 환원은 가능하다고 말한다. 문제는 정치적 이해관계다.
10. 피케티는 이러한 현 상황을 개선하기 위해 몇 가지 정책들을 주문한다. 우선, 자산과 소득에 대한 누진세다. 소득 구간별로 차등을 두는 누진세야말로 사회정의를 위한 첫걸음이다. 이러한 것도 역시 이데올로기 싸움이다. 능력주의 이데올로기 신봉자들은 자기가 쌓아올린 소득에 대한 조세는 불가능하다고 항변한다. 반대로 그들의 고소득 구조는 국민들의 구매와 국가의 지원 하에 이루어진 것이기에 일정 부분 국가에 환원하는 것이 옳다고 생각하면 불가능한 것이 아니다.
피케티가 주장하는 두 번째 해법은, 참여사회주의 형태의 정치구조다. 이는 공산주의와 자본주의의 단점을 보완할 수 있는 정치형태다. 북유럽 국가들, 스웨덴, 덴마크, 벨기에 등이 시도하는 정치구조다. 정치에 대한 시민들의 적극적 참여와 조세제도의 변화다. 물론 누진세의 수입원은 교육, 의료, 연금, 주거에 쓰이도록 해야 한다. 이러한 기본재화가 보장되는 국가가 정의롭다.
피케티의 세 번째 해법은, 이러한 정책들을 시행하기 위한 국제적 공조다. 무엇보다 역외 탈세 및 조세회피 등을 막기 위한 글로벌 세제의 규격화를 주장한다. 개 국가의 이익을 위한 세제 혜택 정책 등을 막자는 것이다. 이를 위해 국제적인 투명한 정보 교환이 필요하다.
11. 피케티의 마지막 말처럼, 이러한 시도가 성공할지 아닐지는 확실하게 전망할 수는 없다. 그러나 결국 역사는 가보지 않은 길에 대한 선택이었고, 가장 합리적인 최선을 선택하는 것 아니겠는가? 무엇보다 경제는 단순히 경제의 문제가 아니라 정치의 문제이며, 이데올로기의 문제, 즉 생각의 문제다. 우리가 생각을 바꾸고 적극적으로 참여하면 제도는 바뀔 것이며 사회는 정의를 향해 나아갈 것이다. 21세기 정치 민주화를 넘어 경제 민주화를 향해 깨어있는 시민들의 연대와 적극적 참여를 기대한다. 우리가 원하면 세상은 바뀔 것이다.
It’s the politics, stupid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