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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꾸로 목사님 ㅣ 열린어린이 창작동화 10
로알드 달 지음, 쿠엔틴 블레이크 그림, 장미란 옮김 / 열린어린이 / 2009년 8월
평점 :
"목사님, 한 가지 헛갈리는 게 있어요.
성찬배가 왔을 때 포도주를 진짜로 마셔야 할지 어떨지 모르겠어요.
마신다면 얼마나 마셔야 하나요?
그러니까 한모금 꿀꺽 마셔야 하나요. 그냥 홀짝 마셔야 하나요?"
목사님이 큰 목소리로 말했어요.
"여러분, 절대로 꺽꿀 마셔선 안 됩니다!
모두가 꺽꿀꺽꿀 마신다면 네 사람도 지나지 않아서 잔은 텅 비게 될 테고,
나머지 사람들은 포도주를 맛도 보지 못하게 될 테니까요.
반드시 짝홀 마셔야 해요. 조금씩 짝홀요.
여러분 모두 반드시 짝홀, 짝홀, 짝홀 마셔야 합니다. 무슨 알인지 아시겠어요?" - 본문 18쪽
영어 울렁증이 있는 내가 유일하게 로알드 달의 작품들은
원서와 한글판을 한 권씩 즐겁게 모으고 있다.
역시! 유쾌한 글과 그림, 로알드 달과 퀜틴 블레이크의 멋진 만남이었다.
로알드 달의 유쾌하고 따뜻한 이야기가
환상의 짝궁 퀜틴 블레이크의 유머러스한 그림과 어우러져 있다.
영국의 작은 마을 니블스윅에 첫 부임지로 오게 된 로버트 리 목사님은
어린 시절 글을 잘 읽지 못하는 심한 난독증을 앓았으나
난독증 협회의 뛰어난 선생님들의 도움으로 보통 사람들처럼 읽고 쓸 수 있게 되었고,
성직자 교육과정에 들어가 목사님이 되겠다는 꿈도 이루었다.
그러나 니블스윅에서 모든 일은 혼자 책임져야 한다는 사실에
갑자기 불안해진 리 목사님은 여러가지 걱정에 휩싸여
한동안 잠들어 있던 난독증을 깨어나게 했다.
그 증세는 아주 희한하게 나타났는데, 무슨 말을 하려고 하면
자기도 모르게 가장 중요한 단어를 거꾸로 내뱉고 마는 것.
교회는 회교, 선생은 생선, 계시는 시계, 개(Dog)는 하느님(God)으로 말하는 식이다.
상황은 점점 나빠지고 마을 사람들은 리 목사님이 미쳤구나,
완전히 정신이 나갔구나, 굳게 믿게 된다.
그렇다고 착하고 다정한 리 목사님을 깊이 미워할 수는 없었다.
설교할 때에도 괴상한 말을 줄줄이 늘어놓는 리 목사님을
어리둥절하게 바라보던 마을 사람들은
이내 늘 지겹도록 듣던 말이 아닌 새롭고 익살스러운 말을 들어서
신선하고 재미있다고 여기게 된다.
이 부분이 특히 유쾌한 '반전'이었다.
마을 사람들이 거꾸로 말하는 리 목사님을 더 이상 미쳤다고 생각하지 않고,
젊은 괴짜 목사님이 엉뚱한 말로 우리를 즐겁게 해준다고 마음에 들어한 것.
마을의 친절한 의사 선생님은 간단한 치료 방법을 일러주기도 한다.
말할 때 거꾸로 걸으면 단어가 올바르게 나올 거라는
역시나 엉뚱한 치료법은 놀라운 효과를 발휘한다.
뒷걸음질 치며 고개를 돌려 뒤를 봐야 하는 불편함은
리 목사님이 스스로 뒷거울을 고무줄로 머리에 매달아 간단하게 해결한다.
마을 사람들도 곧 뒷걸음질로 걸으며 설교하는 리 목사님의 모습에 익숙해지고,
리 목사님은 평생 니블스윅의 괴짜이자 든든한 기둥으로 사랑받았다는 따뜻한 결말에 이른다.
장애를 꺼리거나 지적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마을 사람들의 모습도
자신의 장애를 감추거나 상황에 절망하지 않고
오히려 긍정적인 마음을 갖고 적극적이고 자연스럽게 행동한 리 목사님의 모습도
귀감이 되었고, 이야기와 그림 자체가 매우 유쾌해서 읽는 내내
마을 사람들 얘기대로 "솔직히 말하면 아주 즐거웠"고, 리 목사님이 마음에 들었다.
"로알드 달이 남긴 마지막 작품"이라는
뒷표지의 문구가 잠시 가슴을 시리게 했지만
앞으로도 오랫동안 많은 사람들을
즐거운 이야기 세상으로 이끌어줄 좋은 작품들을
남겨주었기에 감사하는 마음을 갖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