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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다 학교가 집이 되었다 - 제4회 창비×카카오페이지 영어덜트 소설상 우수상 수상작
김윤 지음 / 창비 / 2023년 11월
평점 :
제4회 창비X카카오페이지 영어덜트소설상 우수상 수상작, 김윤 작가의 <어쩌다 학교가 집이 되었다>가 출간되었다. 고3 준영이가 한밤중에 모두가 하교한 학교로 두번째 등교를 하며 벌어지는 일들을 긴장감 넘치고 재미있게 풀어놓았다. 어쩌다 학교가 집이 되었다는 이야기 속에 십대 후반의 아이들이 겪을 법한 수험생활의 숨막히는 부담감과 성장하며 나아가는 길 위에서 방황하는 시간이 담겨 있다.
어른들(부모)의 잘못으로 집에서 나올 수밖에 없었던 준영이가 학교에 숨어들어 지내기 시작한 여름 장마 때처럼 인생에는 그토록 눅눅하고 불편한 기간이 짧게도 길게도 있게 마련이다. 하필이면 고3 때 집을 잃는다는 것은 준영에게 어떤 의미였을까, 생각하기에 앞서 막막함이 확 다가왔다. 밤새 교실을 뒤지고 다니는 책도둑이 있다고, 학교에 버려진 아이가 있다고 떠도는 괴담의 주인공으로 산다는 게 고3 수험생활보다 더 힘들었을 것 같다.
그런데 준영이 전교회장을 통해 받게 된 열쇠로 혼자 드나들며 지내고 있던 학교 창고(준영의 학교집)에 남겨진 경고 "내 집에서 나가". 이 섬뜩한 낙서는 어쩌다 학교가 집이 된 아이가 준영 말고도 또 있다는 것인가. 학교 괴담의 진짜 주인공은 준영이 아닐지도 모른다. 이제 학교 창고조차 혼자만의 공간이 되어주지 않는데, 준영은 집으로 돌아가거나 새로운 집을 찾을 수 있을까?
집이 완전히 망했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은 준영이 급식실에 들어가던 순간 울린 사이렌 소리 때문이었다. 급식실 입구에서 학생증을 기계에 찍었는데, 전교생이 다 들을 만큼 큰소리로 사이렌이 울렸던 것이다. 준영은 창피하고 억울했다. 이미 집에 가스와 전기가 끊기고, 인터넷, 핸드폰까지 끊긴 뒤였기 때문에 급식도 못 먹게 되는 날이 올 수도 있다는 생각은 이미 하고 있었지만 이 정도로 요란하게 그날을 맞이할 줄 몰랐으니까.
담임선생님이 당장 밥 사먹을 돈을 주셨지만 전공을 빨리 정하라고 재촉하시고, 친한 친구 도빈은 학교를 그만두었다는 소식도 들었다. 학교에는 도빈과 함께 준영이 친하게 지내던 두홍이 있지만 틈만 나면 농구나 하러 가자고 조르는 두홍이 준영이는 조금 성가신 듯 보인다. 준영에겐 지금 중요한 게 농구도 공부도 아니고, 쪼개고 쪼개 써야 하는 비상금, 장학금을 받아야만 진학을 생각할 수 있는 대학 입시, 그리고 집 문제였다.
다른 애들도 같을까. 하긴, 비슷하겠지. 대학에 가려는 건 전부 마찬가지였고 그 생각이 계속해서 스스로를 떠미는 바람에, 지금도 톡방이든 SNS든 자기만 아는 커뮤니티 사이트든 화면 속에 숨어서 버티고 있었으니까. 다들 똑같다. 딱 시기에, 이유는 다르더라도 학교에서든 집에서든, 튕겨 나온다. 한 번쯤은.
(본문 39쪽)
집을 나가는 거야.
생각해보니 그날과 상황이 비슷하긴 했다. 다른 점이라면 컴퓨터가 없다는 것과 이번엔 정말 집에서 나가고 싶은 마음이 가득하다는 것. 나는 다시 현관문을 나설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다시 하지 않겠다던 두 번째 등교를 또 시작했다.
(본문 43쪽)
흩날리는 빗속을 우산도 쓰지 않고 도망치듯 집을 나온 준영은 학교 창고로 짐을 옮기고, 부서진 책상이나 의지가 아무렇게나 쌓여 있는 쓰레기장 같은 공간을 정리한다. 책걸상으로 가려진 작은 나무 문을 열어야 안전할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협소한 먼지구덩이에 불과하더라도 준영에겐 그 공간이 필요했다. 다행이 조그마한 환기구 창이 있었고, 생각보다 시원하고 아늑하게 느껴졌다.
준영이 어쩌다 집이 된 학교에서 만나는 사람들은 농구밖에 모르는 친구 두홍, 학교 창고의 열쇠를 건네줬지만 수상한 제안을 하는 전교회장 지혜, 집에서 나갈 거라고 노래를 부르는 후배 소미 같은 좀 이상하고 미친 것 같은 애들밖에 없지만 이 아이들이 준영에게, 준영 역시 이 친구들에게 나직하지만 꽤 단단한 울타리가 되어주는 이야기가 전개된다. 언제든 돌아갈 수 있는 집은 없지만 준영이 시나리오를 집필하며 미래를 향해 나아갈 수 있는 힘을 주는 건 이 이상한 친구들이었으니까. 그리고 무심한 듯 적절한 관심과 도움을 주시는 담임선생님도 준영이 가지 말아야 할 길로 일탈하거나 벼랑 끝에서 포기하지 않도록 해주셨다.
어딜 가나 그럼 가끔 그런 애들이 있다.
그냥 친해지고 싶은 애. 이성이든 동성이든 딱히 뭔가를 함께하는 게 아니어도 곁에 있고 싶고 같이 실없이 웃고 싶은 애. 등교할 때도 하교할 때도 늘 친구들과 하나로 된 그림자를 지고 가는 애. 영화를 같이 보고 밤새 떠들거나 그애가 있는 톡방에 들어가고, 서로 팔로우를 하고, 같은 소속이 되어 사소한 대화를 끊이지 않게 나누고 싶은 애.
너무 신경 쓰이는 애.
(본문 89쪽)
작가의 말을 읽어보면 김윤 작가 자신이 준영, 두홍, 지혜의 모습을 조금씩 가지고 있고, 작품 속에서 준영을 이끌어주던 선생님도 학창시절 은사님의 성품을 옮겨썼음을 짐작할 수 있었다. 고3이라는 현실적인 벽뿐만 아니라 경제적인 위기, 집 없는 어려움, 내적인 방황까지 뚫고 나아가야만 하는 인물들이 만만치 않은 갈등 끝에 성장에 이르는 이야기가 이 아이들의 부모 입장에서 읽어도 절실하게 와닿았다. 세대를 막론하고 공감대를 불러일으킬 수 있는 역량을 갖춘 좋은 작가와 작품을 만나 한층 더 뜻깊게 한해를 마무리할 수 있게 되어 기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