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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비야, 조선을 적셔라 ㅣ 숨 쉬는 역사 11
조경숙.이지수 지음, 원유미 그림 / 청어람주니어 / 2019년 11월
평점 :
청어람주니어의 <숨 쉬는 역사> 시리즈 새 책이 나왔습니다. 열 번째 책 《소년 검돌이, 조선을 깨우다》에 이은 열한 번째 책 《단비야, 조선을 적셔라》입니다.

표지를 보면 통통하고 발그레한 뺨이 어여쁜 여자아이의 얼굴과 함께 눈에 들어오는 것이 비가 내린 양을 재는 기구, 측우기입니다.
대부분의 백성들이 농사를 지어서 먹고살았던 조선시대의 정치, 사회, 기후, 발명품 등에 대한 이야기가 세종과 세자였던 문종, 그의 딸인 여섯 살 평창군주를 중심으로 펼쳐집니다. 도입부에서 세자빈 권씨의 복중 태아가 훗날 단종이라는 걸 짐작할 수 있습니다.
세종은 농업을 나라 산업의 근본으로 삼는 농본 정책으로 나라를 어질게 이끌었으나 날씨 예보가 발달하지 않았던 시대에 가뭄이나 홍수는 지금보다 훨씬 큰 재해일 수밖에 없었을 겁니다.
왕은 어떻게 하면 벼농사를 잘 지을 수 있을지 늘 깊이 고민했고, 가뭄이 길어지자 먹고 자는 것조차 줄이며 하늘에 간절한 뜻이 닿기를 바랐습니다.
세자 또한 아버지의 뜻을 잘 헤아려 실제로 농사를 짓는 농부의 경험을 높이 사고, 그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며 농사가 잘 되어 온 백성들이 잘 먹고 잘 살 수 있는 방법을 찾으려고 애썼지요.
(비가 내릴 때까지 정성을 다해 기우제를 지냈기 때문에) 기우제를 지내면 반드시 비가 온다고 믿었던 것처럼 그 시대의 단비 한 줄기는 얼마나 소중했을까요.
평창은 동생을 기다리는 여섯 살 아이답게 해맑고 영리했습니다. 세자인 아버지가 하는 일을 옆에서 지켜보고 싶어하고, 배우고 싶어했지요. 특히 비가 오면 부리나케 밖으로 나가 호미로 땅을 파고 빗물에 흙이 젖은 만큼 손가락 마디로 비가 얼마나 왔는지 가늠해 보는 데 열심이었습니다. 빗소리에 반색을 하며 우당탕탕 대청마루로 뛰어나가는 평창의 모습이 사랑스럽게 그려져 있지요.

그러나 해갈에는 거의 도움이 되지 않을 정도로 비가 적게 왔습니다. 왕은 나라와 백성 걱정에 밤잠을 못 이루고, 감선을 강행하며 하늘이 움직여 몇 방울의 비라도 더 내리기를 기원합니다.

'해갈 : 목마름을 해소한다는 뜻으로, 비가 내려 가뭄을 면함을 의미함', '감선 : 나라에 어려운 일이 일어났을 때 왕이 근신한다는 뜻으로 끼니 수나 음식 가짓수를 줄이던 일'처럼 어려운 말은 해당 페이지 하단에 풀이가 실려 있어 읽기에 도움이 됩니다.

왕실 가족으로서 어린 평창까지 할아버지 왕과 함께 하늘에 정성을 보이려는 노력으로 감선을 하게 되고, 평창의 아버지 세자는 대신들과 회의를 하며 가뭄 대책을 찾는 데 집중합니다. 가뭄이 길어지며 백성들의 고통이 커져만 가는데, 대신들은 하나같이 몇 년 전 가뭄 때 이미 시행했던 것들만 읊어대거나 명나라의 우수한 문물을 받아들여야 한다며 우리나라 농사 실정에는 맞지도 않는 대책들만 내놓습니다.
(본문 53-54쪽)
나라를 잘 다스리고자 하는 왕의 고뇌와 대신들의 탁상공론을 보면 다른 의미로 눈물겨웠습니다. 예나 지금이나 있는 일이지요.
정성을 다해 경회루 기우제 준비가 끝났습니다. 기우제를 준비하는 풍경과 기우제를 지내는 과정이 자세히 그려져 있습니다.
마침내 비가 많이 왔고, 세종은 한시름 놓고 온양온천으로 요양을 떠납니다. 나랏일에 시름이 끊이지 않아 몸과 마음이 많이 지쳐 있었던 왕의 행차를 준비하는 한편, 세자는 조선 제일의 대장장이의 손을 통해 비의 양을 정확히 측정할 수 있는 원통 모양의 물건을 만듭니다. 측우기가 처음 세상에 나오는 순간입니다.

세자는 평창군주에게 측우기를 맡기고, 온양으로 먼 길을 떠납니다. 평창군주는 초롱초롱한 눈빛으로 세자의 설명을 잘 듣고, 측우기의 이치를 배웁니다. 비가 온 양을 정확히 재는 법을 연습하며 자신이 처음 맡게 된 나랏일을 기꺼이 받아들입니다.
평창군주가 맡은 바 소임을 얼마나 똑부러지게 해낼지 짐작하는 건 어렵지 않겠지요? 세종이 온양에서 건강을 되찾아가던 중 한양에 흙비가 쏟아지는 변고가 생겼다고 어수선할 때 평창군주가 어떤 활약을 하는지, 나랏일을 잘해낸 공으로 왕이 내린 상 대신 평창군주가 청한 상이 무엇인지 책에서 확인해 보시길 바랍니다.
이 책은 측우기에 이어 개천이 홍수로 블어나는 물을 측정할 수 있는 큰 눈금자인 수표를 세우는 일까지 기록하고 마무리됩니다.
옛사람들의 이야기를 우리 곁에서 쉽고 재미있게 접할 수 있어서 학창시절 '국사'를 암기과목 이상으로 생각해본 적 없는, 단순한 어른인 저에게도 역사가 흥미롭게 다가옵니다. 이 책을 읽고 측우기에 대해 좀더 알아보다가 세종대왕박물관이 있다는 것도 알게 되었고, 꼭 한번 가보고 싶은 마음도 들었어요. 아직 글이 많은 책보다는 그림책을 즐겨보는 아홉 살 딸아이가 중간 학년에 올라가면 먼저 출간된 이 시리즈의 책들부터 한 권씩 함께 읽어보고 싶어졌습니다.
"예조 판서는 언제 논에 들어가 보았는가?" "예? 제가 어찌 논에를...... 논에는 나가 보지 못했사옵니다." 세자의 질문에 예조 판서는 당황하여 말을 더듬다가 기가 죽은 목소리로 말했다. "이론으로만 아는 것과 몸을 써서 직접 농사를 짓는 것은 엄연히 다른 것이오. 겉으로 보아 그럴듯하자고 그게 다 맞는 게 아니란 말입니다. 예조 판서는 나중에라도 직접 논에 나가 농부들의 말을 들어 보는 게 좋겠소." - P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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