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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기의 마지막 한 줄 ㅣ 청어람주니어 저학년 문고 22
이붕 지음, 송혜선 그림 / 청어람주니어 / 2019년 9월
평점 :

자명종처럼 매일 같은 시간에 잠을 깨우는 엄마의 목소리로 눈을 뜨며 하루의 오늘 하루가 시작됩니다. 하루는 출근 준비와 가족의 아침밥 준비를 동시에 하는 엄마에겐 5분도 긴 시간이라고, 엄마 기분이 좋아야 가족이 모두 행복하다는 걸 알 정도로 눈치가 있고, 빠릿하게 움직이는 열 살 남자아이입니다.
비록 어제 일기는 안 썼지만 엄마와 눈도 마주치지 않고 씩씩하게 '네!' 하며 이건 '진짜 거짓말'이 아니라 '살짝 거짓말'이라고 생각해요. 학교에 가자마자 아침 독서 시간에 '어제 일기'를 '오늘' 쓰겠다는 확실한 계획도 있으니까요.
그날 학교에서는 쓰레기더미에서 큰 돈을 주워 주인을 찾아 돌려준 환경미화원에 대한 뉴스가 화제에 올랐습니다. 화제의 주인공이 같은 동네에 사는 어르신이자 같은 학교에 다니고 있는 아이의 할아버지였거든요.
남의 돈을 줍는다면 어떻게 할 것인지 아이들의 의견이 분분한 가운데 하루도 그 이야기를 주제로 일기를 한 바닥 쓰고 마음이 편해졌지요.
학교가 끝나고 아이들은 각자의 학원 일정에 따라 바쁘게 움직입니다. 하루도 집에서 간식을 챙겨먹고, 학원으로 향합니다. 추운 날씨에 자전거를 타고 지름길을 무심코 달리던 하루는 그만 길에 세워둔 차에 부딪쳐서 넘어지고 말았어요. 다행히 하루가 크게 다친 곳은 없었지만 차는 심하게 찌그러진 곳이 보였습니다.

이때부터 다시 하루의 갈등이 시작됩니다. 차 주인을 기다릴지, 그냥 가 버릴지 고민하다가 그냥 가기로 마음을 굳혔을 때 친구 규범이와 마주치게 됐어요. 하루는 규범이에게 '비밀'을 지켜달라고 부탁을 합니다. 그후 아무 일 없이 시간이 흐르고, 비밀을 들키지 않자 하루는 규범이에게 고마운 마음이 생깁니다.
한편 엄마는 하루가 학원 가기 전에 따뜻한 음식을 먹고 가는 게 좋겠다며 학교 앞 분식집에 미리 계산을 하고 간식을 부탁합니다. 하루도 다른 친구들처럼 떡볶이, 김밥, 햄버거 등 먹고 싶은 것을 먹고 간식수첩에 적을 수 있게 되어 기뻤어요. 돈이 없어서 아무것도 사주지 못했던 규범이에게도 바나나우유 같은 간식을 사주며 비밀을 지켜준 보답을 하게 된 것도 나쁘지 않았고요.
하지만 규범이는 하루가 왜 먹을 걸 주는지 잘 몰랐어요. 하루가 규범이에게 한두번 햄치즈(햄버거)나 우유를 사주다보니 나중엔 당연하게 받았고, 먹을 것을 조금 사가는 날에는 왜 이것밖에 없느냐는 듯 타박을 하기도 했어요. 그래도 하루는 규범이와 점점 더 친해지는 것처럼 느껴졌고, 규범이와 함께 학원에 다니는 것도 즐거웠지요.
시간이 지날수록 하루는 무슨 일이 있었는지 잊고 지냈어요. 날마다 간식을 너무 많이 사가는 걸 의아하게 생각한 분식집 아주머니가 "무슨 일이 있으면 미리 말하렴. 작은 일도 속이려다 보면 점점 더 커지는 법이거든." 걱정해주시는데도 대수롭지 않게 넘어갔어요.

혼자 마음 속으로 도리질하며 안심하고 넘어간다고 있었던 일이 없어지지는 않는 법. 한 손에 올릴 수 있을 만큼 작게 뭉친 눈을 눈밭에 굴리면 이내 커다란 눈덩이가 되듯이 하루의 '살짝 거짓말'은 걷잡을 수 없이 불어납니다.
"끝까지 속이는 것은 나쁘지만 솔직한 게 좋다는 거, 너도 알지?" 언젠가 윗집 형이 하루에게 했던 말이예요. 아무리 솔직한 게 좋다고 해도 "앞으로는 거짓말을 절대로 하지 않기로 결심했다."고 일기에 마지막 한 줄로 적어 넣으면 거짓말이 눈 녹듯이 사라질까요?
'살짝 거짓말'이 자신까지 속이는 일이라는 걸 깨닫기까지 하루는 힘든 일을 많이 겪게 됩니다. 다행스럽게도 하루 곁에는 부모님, 분식집 아주머니, 환경미화원 할아버지처럼 양심을 지키고 살아가는 주변 어른들이 있었어요. 하루를 지켜보며 기다려주기도 했고요. 물론 양심을 잠깐 버리고, 다른 사람들을 속이려고 했던 어른도 있었어요. 하루는 이 모든 일을 겪으며 누구에게도 솔직하지 못했던 자신의 말과 행동을 돌아보게 됩니다.
이 책은 '거짓말은 나쁘다'에 단순하게 접근하지 않고, 솔직함이 마음을 가볍게 해준다는 이야기를 아이들의 생활 속에서 전해줍니다. 초등학교 3학년인 하루의 일상은 지극히 평범하지만 그 안에서 일어나는 크고 작은 사건들을 통해 그 또래 아이들의 마음을 짐작해볼 수도 있었습니다.
그림 한 바닥과 서너 줄의 글로, 늘 '오늘은'으로 시작되는, 초등학교 2학년 아이의 그림일기장을 떠올려 보기도 했어요. 학교에서 검사를 받지 않더라도 일기 쓰는 습관이 생기면 좋겠는데, 우리 아이는 선생님이 검사를 해도 일주일에 한 번 '주말 지낸 이야기' 숙제로만 일기를 쓴답니다. 일기의 마지막 한 줄엔 큰 깨달음이나 반성, 어떤 다짐도 없지만 꾸밈도 없지요.
'살짝 거짓말'이 눈덩이처럼 불어나며 마음이 무거워지는 과정, 솔직함의 중요성, 무엇보다 거짓말을 아무리 눈에 묻어버려도 눈이 녹으면 감출 수 없이 다 드러나게 되어 있다는 이야기를 아이들의 일상 속에서 자연스럽게 보여주는 책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