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강 1 - 제1부 격랑시대
조정래 지음 / 해냄 / 2001년 11월
평점 :
절판


 『한강』을 다 읽었다. 추석 연휴를 이용해. 사실 5권을 읽었던 때가 군대 말년. 1년도 더 된 지난 일이니 기억이 얼마나 살아있을지 걱정했지만, 6권을 잡아들기가 무섭게 지난 기억은 오뉴월 땡볕의 잡초마냥 무서운 기세로 살아났다. 고작(?) 10권짜리 소설을 해치우는데 일년 하고도 반년이 걸린 셈이니 면구스럽기 그지없는 일이나, 여하튼 조정래 산맥(?)의 칠부능선을 넘었다는 것으로 소소한 자위를 하고 있다.

 새삼 데자뷰를 느꼈다. 『태백산맥』을 끝마쳤을 때가 떠올라서였다. 하대치의 실루엣을 머릿속에 그리며『태백산맥』의 마지막 장을 덮었을 때, 그건 감동과 존경이었다. 현대사의 소소한 사건까지 그려낸 집요함에 대한 감동과 소설 하나를 위해 10년을 투자할 수 있는 끈질김에 대한 존경이었다. 『한강』역시 마찬가지였다.

  사실 내심 걱정하기도 했었다. 5년이라는 짧은(?) 시간을 포착한 『태백산맥』과 달리, 『한강』은 20년 가까운 긴 시간의 배를 띄우고 있었던 탓이다. 네 배에 가까운 시간의 늘어짐은 자칫 짜임새의 긴박함을 덜하게 만들기 십상이라 생각했던 까닭이다. 허나 역시 기우였다. 문학 지식이 짧은 탓에 뭐라 정확하게 꼬집을 수는 없지만, 『한강』은 『태백산맥』과 전혀 다른 서술 기법으로 느슨한 구성을 피해갔다.

  이제 하나 남은 것은 『아리랑』. 자연스레 읽고 싶어진다. 염상진과 하대치의 투지, 유일민과 유일표의 절망을 맛본 후 『아리랑』에도 숨어있을 게 분명한 아무개의 '진실'을 호흡하고 싶은 것은 일종의 본능이어서다. 이전 두 책보다 두 권이나 많은 열두 권을 차분히 읽을 시간이 과연 언제 생길지 알 수 없는 탓에, 막연히 내년 설 연휴 역시 사상 유래없는 긴 연휴가 되길 기약할 뿐이다.

  이 정도 수작을 읽었다면 응당 차분히 뜯어보고 냉정히 톺아봐야 하겠으나, 능력이 부족한 탓에 인상깊었던 구절만 옮겨 놓고 끝낸다. 제대로 된 독후감은 차후에 쓰기로 하고.

 "사회와 정의와 명분과‥‥, 현실과 가정과 궁핍과‥‥, 그 갈등은 끊임없이 되풀이되고 있었다. 의지를 꿋꿋이 세우려고 하면서도 생활의 어려움에 부딪힐 때마다 마음은 흔들리고 허물어지려고 했다."(9권 304쪽)

 "난들 왜 갈등이나 회의가 없겠어. 성인이나 군자가 아니라 평범한 인간일 뿐인데. 허지만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은 자기 진실을 스스로 더렵혀서는 안 된다는 점이야. 자기 진실을 더럽히는 것은 자기 부정이고, 자기 부정은 인간이기를 포기해 버리는 마지막 행위니까. 우리가 권력의 억압에 고립되어 있는 것은 분명하지만 우리의 존재가 없어진 것은 아니야. 그리고, 우리가 했던 저항도 어디로 증발하거나 사라진 게 아니야."(9권 306쪽)

 "책은 백 번 읽는 것보다는 한 번 베끼는 게 낫다. 문학 공부하는 사람도 빼어난 단편 50편만 베껴보면 더 무슨 문학 강의 들을 필요가 없다. 그런데 그런 미련한 노력을 바치는 사람이 지극히 드물다."(10권 작가 후기 중에서)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