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
막심 고리키 지음, 최윤락 옮김 / 열린책들 / 2000년 1월
평점 :
품절


 

 시간이 없어 즉흥적으로 적는다. 형편없는 글일 것임이 분명하다.

모든 존재가 그렇듯이 언어 역시 흔적을 남긴다. 특히나 모든 이의 공감을 살만한 보편적 의미를 지닌 언어는 더욱 깊고 넓은 흔적을 남길 것이다. ‘어머니’라는 단어가 그런 언어 범주에 속하는 대표적인 예일 것이다. ‘어머니’를 되 뇌일 때, ‘어머니’를 떠올릴 때 우리는 얼마나 많은 상념을 품게 되며 얼마나 다양한 감정을 가지게 되는가. ‘어머니’가 연상시키는 생각과 느낌은 일일이 열거하기 힘들 정도이다.

 막심 고리끼의 『어머니』는 ‘어머니’의 연상 작용의 폭을 한층 더 넓혀주는 소설이다. 막심 고리끼의 그것에는 이전에 우리가 숱하게 접하고 경험했던 것과는 또 다른 어머니가 등장한다. 막심 고리끼의 어머니는 혁명과 연대를 상징하는 인물이다. 물론 모든 어머니가 가슴 안에 품게 마련인 자식에 대한 무한한 사랑과 자식을 위한 강인함 역시 지니고 있지만, 이와 같은 이미지는 닐라노브가 그려내는 혁명적인 자취에 덮여 명료하게 드러나지 않는다.

 닐라노브는 극히 드물게도 변혁을 위한 자식의 열정에 감화되어 새로운 인생을 살게 된 인물이다. 흔히 사회 운동에 뛰어든 자식을 가진 부모는 자식의 설익은 열정과 치기를 나무라며 사회에 안착하기를 종용하기 마련이다. 그리고 그것을 경험과 성숙이라는 농익은 말로 감싸버려, 자식의 반항과 거부를 애써 억누르려고 한다. 물론 자식보다 수십 년의 인생을 더 산 부모의 생각이 자식의 그것보다 짧지 않을 것이며, 자식의 잘못을 지적하고 바로 잡는 것은 당연한 부모의 도리일 것이다. 허나 그렇다고 해서 사회 정의와 역사의 진리를 위한 젊은이의 고뇌에 싸인 몸부림을 무작정 부정만 하는 것이 정당화될 수는 없다. 자식이 옳다면, 역사의 도도한 흐름에 자식이 보다 근접해 있다면 자식일지라도 그를 배우고 돕는 것이 올바른 부모됨의 발로일 것이다. 닐라노브는 바로 그러한 부모의 대표 선수 격이다.

 닐라노브는 자신의 아들인 빠벨의 열정에 점차로 물들게 된다. 마치 맑은 물에 떨어뜨려진 잉크가 번지듯이. 서서히 그렇지만 막을 수 없도록. 그리고 닐라노브는 제 2의 빠벨, 아니 중년 여자로서는 최초의 혁명 전사가 되어 뜨거우나 불안하고, 강하나 여리기만 한 젊은 혁명 투사들의 든든한 버팀목으로 거듭나게 된다. 너무나 갑작스럽지만 너무나 자랑스러운 제 2의 인생을 살게 되는 것이다. 닐라노브의 인생을 보고 있노라면, 어머니의 강인함에서부터 불가측한 인생유전에 이르기까지 갖가지 감상이 떠오르게 된다.

 그러나 문학적으로나 미학적으로 볼 때 이 소설은 그다지 돋보이지 못한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동시대의 다른 소설과 비교해본다면, 서술 방법 등에서 그렇게 뒤처지는 것만도 아니다. 오늘의 시각으로 과거의 한계를 재단하는 몰지각함을 범해서는 안 될 것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