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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자를 이으면 길이 된다 - 피해자에서 생존자, 그리고 감시자가 된 마녀 D의 사법연대기
D 지음, 김수정 외 감수 / 동녘 / 202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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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녀 님의 강의를 들은 적 있어요. 그때의 단호하고도 분명한 목소리를 잊을 수 없었는데 책에서 그걸 다시 만나 기뻐요. 연대자들의 이정표 같은 존재. 늘 응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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앙산한 저 나무에도 언젠가는 잎피 피갯지
김지현 지음, 김복동 그림 / 파시클 / 202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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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사람이 가고 없을 때, 인사할 수 없고, 말을 걸 수 없고, 손을 잡을 수 없고, 서로의 눈동자 속으로 제 모습을 내어줄 수 없을 때 남은 사람은 무얼 할 수 있을까. 알지만 모르는, 이제 여기 없는 소중한 한 사람을 기억하는 방식을 있는 힘껏 고민한 아름다운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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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가 매일 실패해도 함께 갈게 - 우울증을 이해하고 견디기 위한 엄마와 딸의 혈투
최지숙.김서현 지음 / 끌레마 / 202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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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의 삶을 있는 그대로 모조리 다 끌어안는 한 사람이 딸의 아픔 곁에 서고 걷는 일. 흔들리면서도 조금씩 앞으로 나아가는 일. 그 질기고도 숭고한 여정의 기록을 읽는 독자로서 할 수 있는 일은 함께 울고 웃는 일뿐이었지만, 언젠간 편지를 쓰고 싶어요. 두 사람을 온 마음으로 응원하고 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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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꽃은 가깝고 낯설다 에밀리 디킨슨 시선 4
에밀리 디킨슨 지음, 박혜란 옮김 / 파시클 / 202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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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낮은 목소리로 숲의 위로를 내려놓고 가는 듯한 문장들이 많아요.
숲속으로 숨 죽이며 들어가는 우리들의 실내화를 가만히 바라보면서 리듬을 맞추며 걷는 것 같기도 하고요.
잡념이 많을 때 명상처럼 읽어도 좋고, 본격적으로 각 잡고 앉아 식물들, 꽃 이름을 찾아봐가며 읽어도 좋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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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마와 고마워는 두 글자나 같네 걷는사람 시인선 13
김은지 지음 / 걷는사람 / 201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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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잘 쓰는 사람에 대한 얘기만 하면

그 아이 생각이 난다


그 아이의 눈동자와 머리카락이

얼마나 까맣게 빛났는지

나는 말하지 못한다


수학을 그토록 싫어했고

언어 영역을 얼마나 잘했는지

감정을 숨기지 못하던 표정을 기억하냐고

묻지 못한다


복통을 느끼면서 이미 쓴 이 글을 또 쓰고

몇 년 뒤에 꼭 같은 글을 쓸 뿐이다


전철을 타고 가다가 中간에 내려 심호흡을 하면서 생각한다


그 아이는

내가 아는

가장 시 잘 쓰는

사람


- 「내가 아는 가장 시 잘 쓰는 사람」 부분


시집의 가장 마지막에 놓인 이 시는 화자가 기억하는 시 잘 쓰는 한 친구에 대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그 아이가 탄 지하철은 ‘2월 18일 오전 9시 53분’에 화재 사고를 당했다. 대구 지하철 참사. 대규모의 인명피해를 낸 그 참사는 실제로 2003년에 일어났지만 시 속에 그 연도만큼은 표기되어 있지 않다. ‘2003년’이라고 하면 벌써 16년 전 일이구나, 하고 생각하게 되겠지만 연도의 자리가 공란일 경우, 매해 그날 그 시각을 기해 사건은 생생한 현재가 된다. 그것은 늘 가장 최근의 일이 되고야 마는 것이다. 아이를 기억하고 사랑하는 이들은 아이를 미루어 두고 앞으로 온전히 나아갈 수 없다.


“마냥 보고 있으면 안 되는”데도 도무지 눈을 뗄 수 없었던 장면처럼, “눈을 감고 있어도” “눈꺼풀에 남아” 있는 잔상(「잔상」 中)처럼 아이는 그렇게 남아 있을 것이다. 화자는 아이의 눈과 머리카락, 표정과 같은 그 모든 것에 대해 “말하지 못하고” “묻지 못한다”고 말한다. 죽음의 육중한 공백 앞에서 말과 소리란 얼마나 가벼운 것인지 시인은 잘 알고 있는 것 같다. 대신 시 속에서 화자는 이렇게 말한다. “복통을 느끼면서 이미 쓴 이 글을 또 쓰고/몇 년 뒤에 꼭 같은 글을 쓸 뿐”이라고. 그렇게 쓰인 글이 바로 이 시일 텐데, 시인은 이것이 되풀이된 글이며 언젠가 또다시 되풀이될 글이라고 말하는 듯하다. “2월 18일 오전 9시 53분”이 내년이면 또 어김없이 돌아오는 것처럼 말이다. 


이 시에서 화자가 건네받은 시적 순간은 어디쯤에 있을까. 있다면 그것은 “2월 18일 오전 9시 53분”과 관련이 있지 않을까. 아이라는 공백 주위에 좌표처럼 박힌 숫자들. 적어도 우리에게 시계가 있고 달력이 있고 문명이 잔존하는 동안이라면 아이에 대한 그 기억은 침묵의 온갖 틈새에 숨어있다 해마다, 때마다 우리를 찾아올 것이다. 누군가는 이미 쓴 글을 또 쓰고, 어디인가에선 아이가 썼던 시를 되뇔 것이며, 또 어느 누군가는 까만 빛이 도드라지는 눈동자와 머리카락을 흰 스케치북 위에 그리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이 장면들은 아이에 대해 이야기하고 발산하는 일과 상관이 없다. 이 고요하고 가만한 다정함의 회로는 아이를 귀 기울여 듣는 일, 바로 그것이다. 


누군가 낭독을 시작할 때 “그의 목소리가 너무 작아서 다들 더 조용히”(「경청」 中) 하는 것처럼, 너무 작아지다 못해 이제는 ‘없는’ 존재를 듣기 위해 우리 모두가 숨죽일 때, 그는 비로소 우리에게 말 걸어올 수 있지 않을까. 세계가 끝나갈 때조차 우리에게 마지막으로 남는 힘이 있다면 바로 이 ‘경청’의 힘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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