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수영화 속의 두뇌전쟁사 1 - 백인SF에서 제국일본까지 괴수영화 속의 두뇌전쟁사 1
최석진 지음 / 그노시스 / 2011년 12월
평점 :
절판


글을 한두 해 써온 저자도 아니니, 온갖 드립과 잡지식이 사이사이 난무하는 글쓰기야 독특한 스타일이라고 봐야겠지만.. 편집이 너무 난삽해서 '아예 편집이라는 것 자체를 하지 않은 것'처럼 보인다. 내용 이전에 편집이 너무 난삽해서 접근을 어렵게 만들고 있다.


괄호의 사용이 너무 잦다. 문장 중간중간 괄호가 끼어드는 경우는 크게 세 가지이다.

(1) 한글표기된 단어의 원어표기를 보충하는 경우
(2) 단어나 문장의 의미에 대한 설명 및 해설
(3) 상대적으로 가벼운 드립성 의견 표출

(1)의 경우는 어쩔 수 없더라도 (2)와 (3)은 문장의 길이 자체가 길기 때문에 독서 자체를 저자 스스로 방해하는 수준이다. 이정도 길이의 보충들은 각주로 페이지 하단으로 빼놓거나 하는 것이 당연한데, 이 책에서는 전혀 그런 것들이 이루어지지 않아서 마치 저자가 작성한 원고를 그대로 실어놓은 듯한 인상이다.


생활 속에서 찾아볼 수 있는 각종 구조물이나 조각의 사진들을 저자의 위트있는 해석과 함께 곳곳에 실어놓은 것도 나름 재미는 있다. 하지만 이것 역시 너무 많아서 오히려 각각의 사진들이 힘을 잃고있다(심지어 몇몇은 기발함과도 거리가 멀고 본문의 내용에 힘을 실어주지도 못한다). 그냥 한 챕터당 한 장 정도의 사진만 실어서, 결말부에서 장 전체의 인상을 확고히 해주는 정도가 좋았을 것이다. 이런 식으로 사이사이에 강박적인 그림 삽입이 필요한건 출판물의 경우가 아니라, 소위 '스크롤의 압박'에 대한 피로부터 느끼는 인터넷환경의 경우이다. 책은 '짤방'이 필요없다. 

책을 처음 읽기 시작할 때, 일반적으로 본문이 끝난 뒤에 나오는 참고문헌과 작품목록이 목차와 본문의 사이에 위치한 걸 보고서는 '특이하구나' 생각했었는데.. 이런 식으로 저자의 말을 듣는걸 끊임없이 방해하는 본문의 편집을 보다보니, 그런 배치는 특이함을 의도한게 아니라 일반적인 편집순서를 몰라서 그랬나 싶은 생각마저 들었다.


마치 저자가 준비한 것을 모조리 다 싣기라도 한것처럼 본문까지 한켠으로 밀어내가며 과하게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사진들, 문장을 끊임없이 방해하며 기능의 구분 없이 본문을 차지하고 있는 각종 괄호 속 문장들, 심지어 괄호로도 통일되지 않은채 문장의 중간중간 별도의 다른 부호들로 삽입돼있는 문장들... 각 장(chapter)말미에 있는 '이 장의 핵심 키워드 : 정리' 박스들은 본문과 종이 한 페이지 이상(거의 두 페이지)의 거리를 두고 떨어져 있어서, 마치 다음 장(chpater)의 표지처럼 보일 정도이다.

이 모든, 그러니까 저자의 원고가 독자들에게 전달되는 것을 돕기는 커녕 방해하거나 방치돼있는 편집요소들을 살펴보다 보면, 이 책은 편집인과 편집이라는 필터를 전혀 거치지않은 것처럼 보인다. 마치 저자가 작성한 원고가 바로 인쇄소로 넘어가 바로 출판돼 시중에 깔린 것 같은 인상을 준다.

마치 자비출판물 처럼 보인다.


물론 설령 이 책이 자비출판이라 하더라도 그건 문제될 것 없다. 책등에 있는 삼족오를 활용한 위트 넘치는 로고처럼, 요소요소는 분명 흥미로운 책이다.

그러나 이 책이 평범하게 괴수영화의 역사적인 사실관계나 일반적인 분석을 늘어놓는 내용이 아니라, 특정한 타겟에 종구를 겨눈채 특이한 시각으로 괴수영화들을 분석해놓은, 일반적인 선입견으로 편하게 읽기는 힘든 내용인걸 생각해보면... 이러한 편집(혹은 편집이 없다는 점)은 저자의 의도에 다가가는 과정에 장애물이 하나 더 생긴 셈이라 안타깝다. 음식점 손님 입장에서는 입구가 일반적인 법칙을 따르지않고 특이하게 생겨서 통과하기도 힘든 와중에 거미줄까지 가득한 가게라면, 그 가게가 특별히 맛있거나 유명하지 않은 이상 그런 가게는 그냥 지나치는게 당연하기 때문이다.

전혀 예상치못한, 내용 이전에 물리적으로 초보적인 단계에서 실수가 많은 책이었다.


한국에 괴수영화 붐이 일어나고, 지금 나와있는 출간본의 내용을 한 권으로 합쳐서 전문편집인이 개입된 기초적인 편집 과정을 거쳐서 새로 개정판을 낸다면 지금보다는 훨씬 더 널리 알려지는 책이 되지 않을까 싶다. 하지만 괴수영화는 이른바 본토라고 불리는 곳들에서도 마이너한 시장이다. 그런고로.. 이 책이 제대로된 편집과정을 가쳐 개정판으로 재출간될 날은 오지않을 것 같다. 그래서 안타깝다.

(저자가 편집인으로서의 경력도 있어서 이런 상황에 의아할 수도 있지만.. 자기 책 자기가 편집까지 해서 내는 작가는 없을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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