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가가 작품을 임할 때에는 최선을 다해야 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최선을 다해야 한다는 것은 언뜻 객관적인 기준처럼 보여도 주관적인 기준일 뿐이다. 각자가 가지고 있는 '기본'의 모델은 다르기 마련이고, 그러다보니 각자가 '도달해야만 한다고' 생각하는 목표점(혹은 커트라인)이 다른 상황이 생긴다. 물론 헐리우드를 주축으로 많이 애용되고 있는 '영웅의 여정' 어쩌고라든가 하는 '대중을 상대로 하는 스토리텔링의 기본'이 존재하기는 하지만, 그것이 정말로 지구상의 모든 이들에게 통용되는, 아니 통용되어야만 하는 '기본'인가에 대해서는 의문을 가져야만 한다고 생각한다.
신정원의 [차우]는 그런 영화이다. 헐리우드(로 대표되는)식 '기본'의 잣대를 가지고 영화를 판단하면 엉망도 이런 엉망일 수가 없는 영화이다. 그렇다고 비헐리우드 메이저영화의 잣대로 대표되는 'B급영화의 기본' 잣대를 들이대고 판단하자니 그또한 망설여지는 선택이다. 헐리우드씬에 비할 바는 아니지만 국내 사정을 생각해보면 나름대로 큰 예산이 들어간 영화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무엇으로 판단해야 할 것인가? 결국 개개인의 취향 문제에 맡길 수 밖에 없는 문제이지 않을까 한다. 물론 그 '개개인의 취향'이라는 것이 정말 '개개인이 가지고 있는 진심어린 취향'이라는 전제하에 말이다.
영화는 여기저기 나사가 빠진 미친 구석이 있다. 대부분의 개그씬들을 현장에서 바로바로 생각해내 집어넣은 것은 감독 본인이고 원래의 시나리오는 전혀 그런 것이 없는 진지한 웰메이드(를 지향하는) 영화라고 들었는데, 영화 보는 내내 "아-" 싶을 정도로 개그씬들은 특별한 영향을 주는 것 없이 뜬금없이 독단적으로 존재한다. 영화를 보기 시작한 초반 정도만 해도 봉준호식의 유머가 가미된 웰메이드 영화가 아닐까 싶지만, '개소리'까지 등장하기 시작하면 그야 말로 관객들은 혼란스러울 정도이다. 그것 뿐인가? 배우들이 연기하다가 어색해서 피식피식 할 정도이고, 덕구네의 이야기는 마치 현실세계에 억지로 끼어든 '헨젤과 그레텔' 같은, 다른 동화 속 이야기처럼 굴러간다(나무에 매달린 버섯 보고 있으면 마리오라도 사는게 아닐까 싶을 정도다).
영화를 다 보고난 후에도 사실 모르겠다. "이게 옳은 일일까? 투자자들도 제작자들도 울분을 터뜨릴테고 이게 망하면 차기작은 꿈도 못 꿀지도 모른다. 그리고 성공하면 성공한대로 또 한국식 억지 유머가 들어간 영화가 성공하는 한국식(?) 성공이라 비꼼 받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규범이 어떻고 기본이 어떻고를 떠나서 진실된 마음으로 생각해보면 영화 보는 내내 즐거웠다는 것 하나 만큼은 확실하게 이야기 할 수 있다. 물론 자신있는 범위는 '나'라는 개인에 국한된 것이지만 (상영 내내 다른 관객들도 즐거워하긴 했다) 그거면 충분하지 않은가? 설사 이런 감상글이 아니라 평론가가 쓰는 평이라고 해도 결국 '개인이 내는 의견'일 뿐인 것이니까 말이다(그리고 '한국식 억지유머'라고 쓰긴 했지만 적어도 기존에 성공한 다른 한국영화들처럼 억지신파조로 이끌어가지는 않는다. 말 그대로 개그와 현실을 확실하게 분리한 것인데, 오히려 이쪽이 개그로서는 정석이 아닐까 싶다).
이 영화가 성공했으면 좋겠다. 이런 본격(????) 코믹영화를 극장에서 많이 보지 못 해서 다른 경우를 잘 모르겠지만, 적어도 영화 보면서 이 정도까지 웃음이 터지고 모두가 즐거워하는 경우를 대구 지역에서 본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끝부분은 특히 빵 터진다). 이 영화가 부디 성공해서, 초등학생 아니 유치원생 때부터 모두가 이마에 내천(川)자를 그리고서는 진지하기를 강요하는 (그래서 [조폭마누라]나 [두사부일체]류의 신파조 코믹물을 양산하게 하는) 이 대한민국의 사회에서 신정원이라는 정신나간 것 같은 감독이 다시 한 번 이런 미친 것 같은 판타지(?) 영화를 만들어줬으면 좋겠다.
마지막으로 이 영화를 볼까말까 고민하는 사람이 있다면 감독의 전작인 [시실리2km]를 기준으로 생각해보면 될 것 같다. 물론 감독이 갑작스럽게 수정한 탓인지 전개 자체가 개그에 의해 많이 좌우되던 전작에 비해서는 많이 진지한 구석이 있는 영화지만, 적어도 전작의 개그들을 허심탄회 하게 받아들일 수 있었던 사람이라면 이번 영화도 정말 즐겁게 볼 수 있지 않을까한다. 웃기면 그냥 웃는 거지 괜히 제작자나 투자자 걱정은 해주지 말자. 어차피 내 일도 아닌데 이기적으로 즐기기만 하면 되는 거다.
신정원, 파이팅이다. 감독 이름도 얼마나 멋진가? 국정원이 아니라 신정원인 것이다. (ㅋㅋ)
ps. 한가지 아쉬운 점은 제작사는 아무래도 원금회수 이상의 것을 바라는 현실적인 마음 탓인지 관객만큼 허심탄회하고 솔직하게 영화를 대하지 못 하고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지구의 지켜라]의 경우를 교훈으로 삼아서, 부디 빠른 시일 내에 '웰메이드 졸라 진지한 스릴러'라고 뻥치는 '거짓예고편'은 내려줬으면 좋겠다(이건 '과대'광고가 아니라 '거짓'광고다).